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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홍님의 서재
  • 빈곤 과정
  • 조문영
  • 21,600원 (10%1,200)
  • 2022-11-07
  • : 6,217

보통 '빈곤'에 관해 접근하는 책은 '사회학'의 관점에서 서술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먼저 현재 사회 현상을 설명하고, 이후 이론적인 설명을 내놓으며, 다음에는 사회과학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통계자료'가 각종 증거로 첨부된다. 그리고 통계의 해설과 함께 현재 사회 현상을 결부지어 문제를 부각한다. 마지막에 대안이나 해결책을 내놓을 경우 꽤나 훌륭한 마무리의 책이 되겠지만, 그렇지 못하고 사회문제만 부각시킨 채 끝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근데 이 책, 조금 많이 다르다.

이 책의 저자가 '인류학자'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빈곤에 관한 사회학, 경제학 좀 나아가자면 역사학적 접근의 책은 꽤나 읽어봤어도 '인류학'의 관점은 꽤나 생소하게 다가왔다. 그 점이 이 책의 첫째 매력이다.


이 책은 무수히 말하는 통계나 자료와는 좀 거리가 있다. 우리는 뭔가 방대한 자료를 이용해 저 멀리 관찰자가 되어 빈곤을 바라보는 경우가 많은데, 덕분에 우리는 '빈곤의 문제'를 무미건조하게 사고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은 '빈곤의 인류학'을 다루기  때문에 빈곤 문제에 대해서 보다 미시적이고 매우 밀접한 접근을 한다. 즉 인류학의 핵심이라 부를 수 있는 '현장 연구'가 중점이다.


따라서 이 책은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노동의 배신》과 같은 현장 르포르타주의 형식처럼 한 사회, 한 집단 혹은 개인의 생활에 녹아들어가 빈곤의 현실과 직접 '마주한다.'는 특징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학자이지 기자가 아니다. 다분히 사회고발적 측면을 띠는 바버라 에런라이크나 나오미 클라인의 색채와는 다르다. 기자의 격앙된 어조는 지양되고 학자 특유의 차분함과 고찰이 담뿍 들어가 있다.


이 책은 한국과 중국을 오간다. 이유는 저자 자체가 중국 연구의 권위자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래서 초반에는 좀 생뚱맞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아마 이 책을 짚은 대다수가 우리나라의 현실, 즉 한국의 빈곤 과정을 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지면은 적지 않은 부분에서 중국을 조망하고 있다. 특히 중국 빈부격차의 상징인 '농민공'의 이야기가 많다. 조선족이나 중국 이민을 선택했다 빈곤층으로 추락한 예시들도 있기 때문에, 중간 지점에서 아마 책을 덮고 싶은 욕망이 생길지도 모른다.


왜 우리가 중국에 대해서 알아야할까? 중국의 빈곤이 우리와 무슨 상관인가? 심지어 그들의 경제체제와 문화는 한국과 전혀 다른데 말이다. 이런 의구심을 가지고 중반을 견뎌내면 저자가 본격적으로 말하고자 싶었던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이 책은 시점이 자주 교차하는데.

첫째는 앞서 말한 '중국의 빈곤'에 대한 현장 조사이고, 둘때는 한국의 빈곤 상황이다. 셋째는 한국의 빈곤 활동가와 젊은 세대 중심의 빈곤 구호 자원봉사단에 대한 이야기. 넷째는 이론적 측면에서 신자유주의나 '마주침'에 관한 철학적 사고가 존재한다.


여기서 뇌릿 속에 깊이 박혀 들어오는 것은 셋째와 넷째이다.

그리고 첫째와 둘째. 즉 중국과 한국에 관한 현장 탐구는 바로 이 셋째와 넷째에 대해 이야기 하기 위한 일종의 빌드업과 같은 장치였다.


특히 우리는 이 책에서 '마주침'이란 단어에 주목하게 되는데.

이는 한국의 젊은 세대, 혹은 빈곤에 관심을 가지고 빈곤에 접근하는 사람들에 대해 큰 의의를 전달해주기 때문이다.


일찍이 조지 오웰은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의 사회주의 에세이에서, 얼마나 많은 진보적 사고의 지성인들이 현실을 알지 못한 채, 입으로만 떠들어대는 가에 대해 비판한 적이 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실제 노동현실과 빈곤을 마주한 순간, 그들이 겪는 당황스러움, 심지어 신념이 경멸로 바뀌거나 완전히 돌아서 보수주의자가 되는 것에 관해 비판한다.


즉, 우리는 현실을 마주하기 전에는 보통 자신의 환경, 자신의 사고라는 틀과 우리에 갇혀 빈곤을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이것은 엄연히 빈곤의 타자화이며, 자신은 그곳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쉽게 훑어볼 수 있는 일종의 기만이다. 

그리고 아무리 빈곤에 이야기 한다 하더라도 현장을 마주하지 않는다면, 대부분 자신의 상황이나 상태에 빗대어 빈곤을 이야기하는 모순에 빠지기도 한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을 아주 정확하게 짚어내고, 인류학 특유의 현장 체험을 통해 아주 생생하게 독자에게 전달한다.

특히 이것이 20대 자원봉사자들과 빈곤 활동가들의 마주침, 그리고 그들이 실제 빈곤 현장에서 겪는 경험과 충격, 혼란의 과정에서 거의 뿜어져 나오다시피 한다.

그리고 '마주침'이란 단어가 곧 우리가 빈곤을 사고하는 과정의 '변화'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아주 명확하게 보여준다.


여기서 우리는 대학생 사회봉사자들의 사고과정의 변화를 지켜보는 점이 상당히 흥미롭다. 

사실 이들이 빈곤 문제에 관여하게 된 계기는 대부분 '자기 자신의 상황'과 관련한다. 청년 빈곤! 청년 문제! 사실 무시하기 어려운 지점이다. 덕분에 많은 청년들이 실제로 우울증에 시달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함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자원봉사의 시작도 보통 이런 것의 해결책인 경우가 많다. 즉, '지금 내가 뭘하고 있는가'에 대한 자아성찰적 자문인 경우나 흔히 '스펙쌓기'란 개념의 취업 준비를 위함인 경우다.


그래서 대학생들은 자신의 불안한 처지에만 갇혀 있다가, 실제로 만나보는 '빈곤 환경'에 대해 엄청난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흔히 신자유주의가 만든 사고적 틀. 예를 들어 '공정의 개념'과 같은 사고방식에 갇혀 있다 빈곤 활동가들의 '상호부조, 상호의존'과 같은 활동방식에 정체성이 그야말로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즉, 이 엇박자. '마주침이 만들어낸 엇박자'를 통해서 현실의 문제를 직시하게 되고, 거기서 사고를 다듬으면서 우리는 비로소 빈곤의 현실에 대해 제대로 접근하게 된다. 마침내 엇박자가 손뼉을 맞대는 소리르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책이 대학생들이 흔히 빠져있는 '정체성 정치'나 '페미니즘'이 가지는 사고방식의 한계를 짚어내는 것도 흥미롭다. 단순한 사상이 직면한 현실과 마주쳤을 때 그것이 오히려 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방해 요소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사실 페미니즘이나 정체성 정치란 사회학의 한 조류. 즉 마지막에 뻗쳐나와 있는 '나무의 가지'와 같다. 그렇기 때문에 매우 협소한 범위의 학문이고, 이것을 기초로 삼아 사회 현상을 바라보게 된다면 아주 좁고 편협한 시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한계를 보여줄 수 밖에 없다.


페미니즘을 알기 전에 인권 운동을, 인권 운동을 알기 전에 민주주의를, 민주주의를 알기 전에 사회구조와 인간역학의 문제를 알아야 하는데. 이러한 뿌리나 핵심을 싸그리 무시한 채, 가장 마지막 단계인 '정체성 정치'로 사회를 바라본다는 것은 사실 각종 모순과 위험성을 낳을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이 책에서 페미니즘으로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진 한 여대생이, '남성 노숙자'와 마주쳤을 때의 나타나는 편견, 그리고 충격. 그것에 대한 극복의 문제가 정말 인상적이다.


즉, 페미니즘에서 봤을 때, 언제나 권력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어야 할 대상의 '남성'이, 매우 취약하고 연약한 '빈곤'의 모습으로 다가왔을 때 겪는 사고적 혼란의 문제. 그리고 그들이 단순히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접근했을 때 이들을 '처리'해야 할 방법에 대해서는 그저 위협적일지도 모르는 빈곤 대상에 대해 지켜야 할 '나의 안전'이란 매우 협소하고 단편적인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확실한 모순이다.


바로 이 마주침의 순간에서, 비로소 교실에서만 배운 '페미니즘'의 편협성이 드러나고 여대생은 새로운 사고와 접근을 깨닫게 된다. 남성도 취약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빈곤의 문제에서 필요한 것은 구분짓고 분류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서로 다른 배경과 환경의 사람들끼리 '연대'를 한다는 것임을 말이다.



이 책은 인류학이지만, 그 어떤 책보다 '사회학적 상상력'이 풍부하다. 

나는 언제나 사회학의 가장 중요한 책으로 찰스 라이트 밀즈의 《사회학적 상상력》을 꼽는다. 

어쩌면 무의미해 보이고, 전혀 상관 없을 것 같은 것 속에서도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단순히 개인이었을 경우 무력했던 우리가 동떨어진 무엇인가를 계기로 이어져 있음을 알고 연대할 때, 비로소 사회는 변화하기 시작한다는 사실. 그것을 상상하게끔 사고력 운동을 하는 것이 '사회학적 상상력'이다.


그러나 정작 요즘 나오는 사회학 서적들은 지나치게 단편적이다. 사회학적 상상력은 소실된 상태로 사회의 단면만을 보여주는 책들이 너절할 정도로 많다. 특히 정체성 정치와 관련한 책들은 정말이지 편협함의 극치를 보여주곤 한다. 


그런데 이 '사회학적 상상력'이 가장 풍부한 책이 등장했는데, 그것이 인류학 서적이라니 참으로 놀랍기 그지없다. 사회학 서적들은 이 책을 보면서 반성해야 한다.


사회학 교수들은, 혹은 사회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이 넘나드는 방식에 대해 새롭게 바라보아야 한다. 중국에서 한국으로, 20대 대학생에서 빈곤 활동가로, 단편적 빈곤의 문제에서 현실의 충격으로. 이 책이 보여주는 다양성은 '사회학적 상상력'이 어떻게 활용되어야 하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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