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우리나라 기독교의 보수적 근원
특히 대형교회, 전광훈이나 조용기와 같은 권위주의적 목사 중심의 교회가 보수주의의 첨병인 이유를 설명한다.
사실 기독교 자체가 라인홀트 니부어를 필두로 한 해방신학 시점을 제외한다면 진보적 위치를 차지한 적이 없긴 하다.
따라서 기독교가 보수적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단연 한국사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세계적 현상에 가깝다.
기독교의 창시자인 마틴 루터만 보더라도, 매우 혁신적인 개혁가 같은 느낌이 강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역시 체제의 변호자였다. 루터가 독일 농민 봉기 시절 보여줬던 모습은 많은 비평가들에게 있어서도 보수적이고 권위적이어서 지금까지도 그의 평가에 상당한 흠집으로 남아있다. (대표적으로 니체와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가 루터의 체제 변호적 모습을 비판했다.)
결국, 기독교는 애초에 그 기원부터가 체제에 보수주의적이었다.
그러나 유독 한국 교회가 보수적 성향이 강하게 나타나는 이유는 초기 선교 단계에서 미국에서도 가장 근본주의 성향이 강한 선교단체가 평안도 근처에 자리를 잡았고,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개신교 지파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6.25를 기점으로 대다수의 근본주의 기독교 계열이 남한으로 내려옴에 따라 자연스레 진보적 이념에 대해 적대감을 넘어 혐오감 수준에 이르는 감정을 지니게 되었고, 이들이 그 유명한 반공 서북주의 단체들의 효시가 된다.
애초에 시작부터가 보수적이고 근본주의적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 특징이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한국 교회의 역사란 그야말로 체제 순응주의 그 자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정부 체제의 방향이 무엇을 향하는가에 따라 교회의 방향도 바뀌었다.
권위주의 정부 시절 교회는 가장 권위적인 목사의 힘을 빌려 성장했고, 개발도상국 답게 성장과 구원에 초점을 맞췄다.
여기서 저자가 가장 중요하게 바라보는 점이 대형교회의 두가지 구분이다.
즉, 개발독재 시절의 권위주의형 대형 교회를 '선발 대형교회'라 지정하고, 민주주의 이후 성장한 대형교회를 '후발 대형교회'라 지칭하는데. 둘은 확실한 차이가 있다.
선발 대형교회에서 중요한 것은 권위자의 힘이 중요하다면.
후발 대형교회에서는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교육받고 지식있는 소위 '주권신자'를 붙잡는 테마가 중요했다.
특히 개발독재 중심주의 시절 민중이 정부의 요구에 거의 반강제적으로 호응 했던 것처럼, 선발 대형교회는 카리스마적 존재가 신도들을 이끌며 쭈욱 빨아들이고 성장하는 형태였다면.
후발 대형교회는 중산층에 자리 잡은 신도들이 자신들의 가치를 반영하는 곳을 찾기 위해 교회를 떠나면서, 성장이 정체되는 시기와 관련한다.
따라서 후발 대형교회는 신자유주의의 원칙에 따라 '주권신자'를 붙잡기 위한 무한경쟁체제에 돌입했고, 여기서 성공한 사례들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사실 후발 대형교회의 대한 이야기도 따지고보면, 사회체제에 순응하여 변화하는 과정을 적나라히 보여주는 것 같다.
즉, IMF 이후 신자유주의가 자리 잡으면서 신자유주의가 요구하는 요소들을 교회가 그대로 흡수하게 되었다. 특히 노무현 - 이명박 정권으로 이어지는 신자유주의의 가치는 '웰빙'이란 단어로 자주 묘사되는데, 교회가 이 개념을 차용하여 자신의 신도를 그 사회에 순응하게끔 만든다.
이후 서술은 대부분 교회의 '웰빙' 전략이 무엇인지에 대해, 가족, 선교, 청년모임 등과 같이 대형교회의 세부조직들의 활동과 행태를 살펴가며 세부적으로 파악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
결국 우리나라 기독교가 보수적 행태를 보이는 것은
정말 자연스러운 사회 체제(혹은 정부의 지침)의 방향에 녹아들고 순응하면서 변화하는 모습과 관련한다.
그리고 이 과정 자체는 사실 종교와 가장 거리가 멀어야 할 세속주의가 중심에 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제목만 보면 굉장히 도발적인 이야기로 가득할 것 같지만
실상 내용은 그렇게까지 날카롭진 않다. 그저 사회에 따라 변화하는 한국 교회의 변천사를 보는 느낌이다.
오히려 본문 보다는, 이후에 서술되는 보론들
'전광훈 현상'이나 '신천지 현상'에 대한 서술에서 저자의 날카로운 비판과 시선이 번뜩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