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황으로 알아보는 자신만의
인생을 세우는 지배의 법칙
진시황제는 13세에 왕이 되었다. 그리고 중국 최초의 통일 제국을 건설한 위대한 설계자다. 진나라의 제 31대 군주이며 초대 황제이다. 화려한 이력은 그의 삶을 이미 금수저의 반열에 올리며 크나큰 어려움 없이 자란 인물로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적국 조나라에서 볼모의 아들로 태어나 멸시와 불안 속에서 유년을 보냈으며, 어머니의 추문, 자신을 암살하려는 끊임없이 자객들의 위협 속에서 매일 밤 칼자루를 쥔 채로 잠들수 밖에 없는 불안한 존재였다. 이러한 위태로움이 있는 그였지만 세상을 원망하는 대신 자신을 단단한 무기로 벼려냈다. 그런데 놀랍게도 두려움은 이미 오래전, 그가 열세 살이 되기도 전에 다 써버린 감정이었다고 한다. 열세 살에 왕위에 올랐으나 어머니의 정부 노애의 반란을 가차 없이 진압하였고, 친자식처럼 길러주었다는 권신 여불위가 권력의 그늘아래 그를 길들이려 했지만 그 또한 제거하며 권력의 주도권을 완전히 장악했다. 핏줄이라는 이름, 은혜라는 이름, 모정이라는 이름, 보통의 인간이라면 한 번쯤은 흔들렸을 그 이름들 앞에서, 그는 한치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에게 인연이란 결국 자신의 영토를 갉아먹는 자와 지키는 자, 둘 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최근 눈에 띄는 명언을 보았다. 법륜 스님이 한 말이다. "함부로 인연을 맺지 말라. 그대의 모든 불행은 진실 없는 사람을 진심으로 대한 벌이오." 진시황이 살아간 삶을 두고 지나치게 냉혹하다 비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우선 그는 잔혹한 폭군으로 기록되었다. 그가 실용서를 제외한 옛 제후국들의 기록을 불태우고, 자신을 기만하던 방사(方士)와 일부 유생을 가차 없이 생매장했으며, 장성 축조를 위해 막대한 인력을 동원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흔들림 없는 확고한 규율이 없었다면 춘추전국의 500년 난세는 결코 종식되지 않았을 거라는 말을 마음 깊이 새긴다. 세상의 무질서와 타인의 얄팍한 잣대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스스로 단단한 규칙 위에 서야 한다는 말 또한 흘려듣지 않을 것이다.
모든 일에는 명암(明暗)이 있다. 진시황이라고 좋은 점만 있겠는가? 나쁜 점만 있겠는가?
이 책은 진시황을 미화하거나 옹호하기 위한 책이 아닌 그가 자신을 다루었던 엄격하고도 철저한 방식, 자신의 삶을 하나의 제국처럼 설계하고 운영했던 그 방법론에서, 흔들리는 우리가 건져낼 수 있는 무엇이 있다면 그것을 건져내자는 책이다.
프롤로그에 말하듯이 세상은 친절해 보이지만 결코 친절하지 않다. 내가 흔들리면 누군가는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와 나의 자리를 차지한다. 내가 결정을 미루면 누군가가 대신 결정해 주게 된다. 내가 기준을 갖지 못하면 누군가의 기준이 나의 삶 전체를 도배하게 된다. 즉 지배하지 않으면 지배당한다는 말이다. 이 말은 잔인하지만, 잔인하기 때문에 진실에 가깝다. 요즘들어 그러한 세상을 체험하게 된다. 마키아벨리가 쓴 「군주론」이 마음 깊이 이해가 된다. 그건 군주가 권력을 얻고 유지하려면 때로는 권모술수를 써야 하며, 사악한 행위도 서슴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 말이다. 한 마디로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것인데, 이게 군중이 갖는 무지함 때문이다. 이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지만 조선 제3대 왕인 태종(太宗)이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우기 위해 때론 정몽주도 제거해야 했고, 또한 함께 혁명을 꿈꾸며 고려의 반대파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뜻을 함께했던 가장 강력한 정치적 동지였던 정도전도 결국 목을 베어 버렸다. 그리하여 피의 숙청 속에 태종 이방원은 500년 조선조 국가 운영의 밑그림을 완성한 군왕이 되었던 것이다.
진시황은 인간의 선의를 믿지 않은 사람이다. 그는 사람이 좋은 마음을 먹어 좋은 일을 한다고 보지 않았다. 사람은 룰이 있을 때 룰대로 움직이고, 룰이 없으면 본능대로 무너진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법을 세웠고, 그 법에 예외를 두지 않은 것이다. 자신의 어머니에게도, 자신을 키워준 스승에게도, 자신과 함께 천하를 도모한 공신에게도 말이다. 이 단호함은 잔인함의 다른 이름이 아니라, 자신이 만든 세계를 단 한 치도 양보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이 책은 다섯 개의 키워드로 진시황을 다시 읽어준다.
1장 통일: 내 삶의 영토를 온전히 장악하라.
2장 도량형: 흩어진 잣대를 부수고 기준을 독점하라.
3장 만리장성: 타인이 침범할 수 없는 성벽을 쌓아라.
4장 법가: 무자비한 규율이 가장 강력한 무기다.
5장: 천하제일: 세상의 꼭대기에서 나만의 역사를 쓰다.
한 단락, 단락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러나 핵심은 단순하다. 내 삶의 영토를 하나로 묶고, 내 잣대를 하나로 세우며, 나를 지킬 성벽을 쌓고, 흔들리지 않을 규율을 만들어, 끝내 내 이름을 내 삶의 가장 높은 자리에 새기는 일에 관한 것이다. 즉 진시황은 낡은 호칭인 '왕'이라는 호칭을 버리고 '황제'라는 새로운 단어를 만들었다. 나아가 도량형과 화폐, 문자, 수레의 규격까지 하나로 통일해 자신만의 질서를 구축했다. 따라서 이 책은 이러한 그의 결단력과 통치 철학을 통해, 타인의 기준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원칙을 세우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지금 내 삶에 결정자는 누구인가? 타인인가 아니면 나라는 주체자인가? 오늘자 뉴스에 ‘헬리콥터 부모’에 관한 기사를 보았다. 기가 막혔다. 왜냐하면 최근 수도권 한 제조 중견기업의 신입사원 면접날. 한 지원자의 어머니가 회사로 찾아왔다. 그 여성은 면접장으로 들어가는 면접관들의 손을 잇따라 붙잡고는 “우리 아이가 낯을 가리니 압박 질문은 줄이고 부드럽게 해달라”고 당부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과는 무관하게 최종 합격하여 부서 배치를 마친 상황에 얼마 뒤 인사팀에 다시 그 어머니의 전화가 걸려왔다. “우리 아이 부서는 업무 강도가 너무 높아 보이니 다른 팀으로 바꿔달라”는 요청이었다. 또 다른 중견기업의 인사팀장은 얼마 전 ‘대리 퇴사 통보’를 받았다. 무단결근한 신입사원의 모친이 이튿날 전화해 “우리 애가 어제 퇴근하고 회사가 삭막해 다니기 싫다고 울었다”며 “오늘부터 출근 안 하니 사직 처리하고 우리 아이 자리에 둔 텀블러와 카디건은 착불 택배로 보내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자녀들은 자신의 생각을 부모에게 언급하여 원하는 것을 얻었지만 결코 이 자녀는 자신의 삶의 결정자로서 온전히 살아가지 못하는 자라고 본다.
『지배할 것인가 평생 지배당할 것인가』는 결국 인생의 주도권을 내가 가지고 있는가를 묻고 있다. 남이 만든 규칙 속에서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 규칙을 만드는 사람이 될 것인지는 이 책을 읽고 대답해 보면 좋겠다. 세상의 평판에 혹 흔들려 무언가를 결정하지 못하는 자인가? 타인의 척도에 영토를 내어주는 나약함을 가진 자인가? 또는 낡은 관성에 묶여 결단을 유예하는 비겁함을 가졌는가? 이러한 상태라면 일단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겠다. 다만 자신을 정확하게 마주 보는 일이 필요하다고 알려준다. 정확하게 보아야, 정확하게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이 한 가지만을 얻게 된다면 아마도 그는 천하를 얻은 진시황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그건 바로 「지배할 것인가, 평생 지배당할 것인가」를 분명히 하고, 이제 내가 삶의 자리를 주체적으로 가져 온전한 나로 살자는 것이다. 헤르만 헤세가 쓴 '데미안'의 한 문장이 생각난다.
나는 내 속에서 스스로 솟아나는 것,
바로 그것을 살아보려 했다.
그것이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