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공을 말할 때 흔히 낚시로 세월을 낚는 ‘낚시꾼’으로 상기된다. 그러나 그는 단순한 낙시꾼이 아닌 동양 최고의 전략가이자 책사이다. 자료를 찾아 보면 그는 전략가이자 제나라의 초대 군주이다. 쉽게 말해 주나라 재상으로 왕을 도와 상나라를 뒤집어엎고, 그 포상으로 제나라 땅을 맡아 본인이 국군(國君)이 되어 일종의 제후 국군이 된 인물이다. 언뜻 보기에는 유유자적하며 낚시를 즐기던 자였다. 그러나 그가 재상에 오른것이 대략 72세~80세 사이 쯤 되었으니, 그는 단순한 낚시꾼이 아니라 '기다림과 때를 아는 사람'이었다.
당시 시대 상황을 보면 중국 고대 주(周)나라가 세워지기 전, 세상은 은(殷)나라 말기의 혼란으로 백성들의 삶이 피폐한 상태였다. 그러나 훗날 나라를 바로 세울 큰 인물이 세상 어딘가에 숨어 있다는 믿음이 사람들 입에서 전해졌다. 그 무렵 강태공은 뛰어난 학식과 정치적 식견을 지녔지만 세상에 자신의 뜻을 펼칠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리하여 그는 조급하게 권세를 좇지 않고 스스로를 갈고닦으며 올바른 임금을 기다리기로 결심한 것이다. 사람들은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벼슬길을 포기한 채 강가를 떠도는 늙은이로만 여겼다. 그러나 강태공은 자신의 재능을 아무에게나 바칠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기다렸고 인내했다. 책을 보면서 그의 숨겨진 일화를 보게 된다. 그가 강가에서 띄운 것은 곧은 낚싯바늘이었다고 한다. 미끼도 없었다. 물고기를 잡을 생각이 아예 없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는 무엇을 잡으려고 했는가. 바로 그는 시대를 잡으려 했다. 자기를 알아볼 사람이 올 때까지, 자신을 헐값에 팔지 않겠다는 결의, 굽실거리며 유세객처럼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지 않겠다는 자존. 소모품이 되지 않겠다는 냉철한 통찰로서 그는 때를 기다렸다. 그래서 그가 기다린 것은 무기력이 아닌 전략이었다. p.08
강태공의 병법서 『육도六韜』를 보면 명확히 그걸 알게 된다. "사나운 새가 사냥감을 칠 때는 낮게 날며 날개를 거두고, 맹수가 먹이를 덮치기 전에는 반드시 귀를 내리고 엎드린다." 즉 가장 사나운 공격은 조용한 자세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냥할 능력이 없으면서도 날개부터 펼치며 허세를 부린다. 내실을 다지기 전에 제후들의 연회를 전전하며 알량한 지식을 뽐내고, 세상을 꿰뚫는 안목을 갖추기도 전에 유세객을 자처하며 입방아를 찧는다. 실력을 증명할 진짜 기회가 오기 전에 자신의 얄팍한 패부터 사방에 전시를 한다. 그러나 이렇게 나아 간다면 마지막 판에 가장 큰 것을 가져 올 수 없다. 실제 강태공이 위수(渭水)에서 낚시한 세월은 무려 십수년이라 전해진다. 누군가에게는 한 늙은이가 한가롭게 보내며 세월을 낚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특히 그의 아내에게는 사람 같지 않는 변변찮는 한심한 노인네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시간 동안 천하의 지도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즉 상나라의 약점을, 주변 제후들의 마음을, 백성들의 굶주림과 원망을, 군대의 배치와 보급의 흐름을 읽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무엇도 발설치 않고, 자랑하지도 않았다. 그저 곧은 낚시 바늘을 강물에 드리우고 앉아 있었다.
참으로 대단한 인물이며 범상치 않는 인물이다. 책을 읽으면서 연신 고개가 끄덕여지고, 숙여진다. 그에 관한 일화나 사고(思考)는 과히 내가 배워야 할 자세며, 마음 가짐이었다. 그는 이미 재상이 될 인물이었다. 시대가 요구했고, 그가 준비했다. 여기서 독자인 나는 얼마나 준비를 하며, 때를 기다리고 있는지 묻게 된다. 아니 때를 기다리며 전략적으로 준비한다는 것이 힘겹다. 빨리 결과를 내고 싶은 마음에 조급함도 생긴다. 그러나 강태공을 통해 명확히 배우게 된다. 전략적 대기를 하며, 무언가를 속에서 준비하는 것이다. 매가 하늘에 그냥 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매를 모르고 하는 소리이듯이, 정확하게 바람의 방향을 읽고, 들판의 그림자를 측정하고, 토끼의 호흡까지도 가늠하는 자세를 가져보도록 할 것이다. 외부로 드러나는 행동의 부재가 내부의 무위를 뜻하는 것이 아니듯 강태공처럼 낚시대를 드리운 채 가장 격렬하게 사고하듯 독자 또한 준비할 것이다. 문왕이 위수에 나타났을 때 강태공을 알아 본 것은 그가 단순히 늙어간 존재가 아니라 준비된 존재였기 때문이다. 기회란 준비된자에 온다는 단순한 진리를 한 수 배우고 간다.
특히 또 한 가지 이 책에서 배우는 대목은 "엎드러진 물 앞에서 등을 돌리는" 사건이다. 그는 위수 강가에서 문왕의 수레에 올라 타면서, 단 한 번도 강물 쪽을 돌아보지 않았다. 가난과 설움 속에서 지내던 그 위수의 자리를, 자신을 알아주지 않던 세상에 대한 원망도, 끝내 떠나간 아내에 대한 감정도, 백정으로 살았던 조가의 새벽도, 주막을 접고 떠나야 했던 맹진의 황혼도, 모두 강물위에 떠 내려 보내고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은 떠나는 순간 한 번쯤은 돌아본다. 그래서 과거를 반추하며 설움에 복받치거나, 다른 선택을 했었다면 어땠을까하는 미련을 가진다.
그런데 강태공은 "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의 마음으로 살았다. 엎으러진 물은 다시 그릇에 담을 수 없다는 말이다. 이것은 훗날 강태공이 제나라 제후가 된 후, 가난을 견디지 못하고 떠난 아내가 자신을 찾아오자, 그 앞에서 물을 부으며 단호히 선을 그으면서 한 말이다. "이 물을 다시 동이에 담을 수 있다면 당신을 받아주겠소." 이는 단순한 매정함이 아니라, 끝난 인연과 헛된 미련을 베어내는 단호함이었다. 강태공은 아내가 떠난 뒤의 그 모습을 절대로 그리워하거나 그녀의 뒷모스을 향해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고 한다. 즉 그녀를 그리워하지도, 미워하지도, 자책하지도 않고 그저 자신의 일을 했다. 위수의 강물에 곧은 바늘을 드리우고, 책을 펴고, 천하의 판을 그렸다는 것이다.
함께 했던 정이 있었고, 미안함도 있었을 것인데 강태공은 너무나 차가울 정도로 금을 그었다. 이것은 과거에 사로잡히지 않고 현재의 일에만 집중하며 앞만 보겠다는 것이다. 특히나 강태공은 엎어 버린 것이 물이 아니라 그가 칠십년을 견딘 시간, 새벽 도축장의 피비린내, 주막에서 외상값을 받지 못하고 돌아오던 밤, 그리고 그 모든 시간을 함께 견디지 못한 한 사람에 대한 정직한 평가로서 아내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이유라면 가장 어려울 때 등을 돌린 사람은 또 다시 어려움을 겪게 되면 또 다시 등을 돌리는 법이다. 그래서 그는 길게 말하지 않고, 또한 따지거나 원망하지 않고 그저 물을 엎었다. 인연을 끝내는 일이란 단호해야 한다. 다시금 마음을 주게 되면 모든 것이 흔들리게 되고, 현재의 일도 그르치게 된다. 사람을 잃어 본 적이 있다. 그때의 시간을 돌아보면서 여러 생각이 든다. "그때 그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 사람의 말을 더 귀담아 듣고 내 원칙을 접었다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까?" 혹은 "그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다면, 그 시험을 한 번 더 봤더라면, 그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이라는 가정을 해본다.
그런데 강태공은 한 번 금이 간 신뢰를 결코 되돌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한 벙은 상나라의 폭군 주왕 밑에서 관직 생활을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그 조직이 구제 불능임을 간파한 순간, 주저 없이 등을 돌렸다. 미련이라는 낡은 족쇄에 얽매이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이미 쏟은 정성과 세월이 아까워 그 자리를 맴도는 심리, 어긋난 관계, 끝난 꿈에 매여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책을 통해 강태공이 살아간 삶의 흔적 속에서 삶의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참으로 그는 오랜 무명의 시간을 견뎠고, 스스로를 단련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문왕을 만나 천하의 흐름을 바꾸는 인물이 되었다. 이 책은 크게 두 가지만 붙들면 된다. 그건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 찾아온다는 것과, 이미 지나간 과거는 과감히 버려야 한다는 결단이다. 요즘 광고에 새로운 인물이 자주 보인다. 드라마 김부장에서 박진철 역으로 배우 윤경호의 광고이다. 15년의 무명생활은 그에게 큰 산과 같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 지겨움과 알아주지 못하는 그 시간, 생활고를 견녀냈다. 그리고 드디어 그를 알아봐 주는 드라마를 통해 확실히 대중에게 그의 얼굴을 알렸다. 그는 준비된 기회적 전략가였다. 독자 또한 현재의 괴로움과 성과가 없는 삶에 마음의 큰 짐이 있다. 그러나 강태공을 통해 내면을 다지고, 더욱더 준비된 자로서 오늘의 할 일을 하려고 한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미래가 있음을 보며 마음의 희망을 품어 본다.
-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