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살아가면서 다양한 환경과 사람과 책을 만나게 된다. 이 책은 그런 책 가운데 하나이다. 이때의 나 자신은 조금은 센치한 상태였다. 그래서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철학책과는 다른 자기 개발서와는 다른 책을 읽어보고 싶었다. 그런 기회에 이 책을 선택했던 것인데 소위 덜컹 서평단에 선정이 되어서 그냥 가볍게 읽어보기 위해 책을 신청하게 되었다. 그런데 대게 이런 책은 관심도가 높지 않다. 그러나 저러나 책이 집으로 도착하여 읽게 되었다.
일단 이 책을 서평단으로 신청한 이유는 아래의 글귀에서였다.
“우리는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한다. 이것이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각자가 지닌 숙명과 사명이다. 깨어남이라는 것은 지금 삶을 통해서 알아야 할 것들의 메시지를 아는 것이다. 우리가 왜 아득바득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아무리 속을 채워도 배고프고 아무리 마셔도 목마른 이유는 육체의 짧은 삶이 아닌, 그 이면의 다른 무엇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하지 않을까? 우리 모두는 삶은 그냥 태어났기에 사는 것이 아니라, 삶에는 목적과 사명이 있다는 것, 그리고 삶은 깨달음과 지혜를 얻기 위한 과정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제는 각자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지금 현재에 최선을 다하며 교정해야 할 때다.”
이 문구가 센치해진 마음을 파고들어 서평단 신청으로 나아가게 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불편한 글귀가 자꾸 거슬리게 다가 왔다. 자칭 재림 예수라고 일컫는 '슈카이브'에 대한 언급이다. 아시는 분은 알겠지만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자칭 예수가 50명이 넘는다는 자료가 있다. 그 중에 또 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자칭 예수는 저자와 같은 사람에게 영향을 주어 한국영성책쓰기 코칭협회라는 모임을 통해 이와 같은 책을 쓰도록 하고 있다.
일부 사람들이 새로운 영성적 가르침에 매료되고, 글쓰기에 대한 코칭을 받아 에세이 형식을 빌려 이상한 가르침을 전하고자 하는 거 같다. 일단 저자는 대순진리회와 같은 곳에 혹하고 빠지는 미약한 심령이다. 이곳에서 퇴직금을 다 갖다 바치며 잃을 정도로 귀가 얇은 사람이다. 잘못된 사이비에 빠져 전도한다며, 일체의 교통비도 없이 겨우 끼니를 때우며 종일 그들에게 종교적 착취를 당하며 수고하는 시간을 겪기도 했다.
읽으면서 바로 드는 생각은 이 책 저자의 불안정함이며, 무언가에 홀린듯 보이지 않는 깨달음의 허상을 쫓아가는 느낌이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일 수 있지만, 이 책은 그렇게 건강하지 않는 책이다.
물론 인간은 삶의 진실을 알고 싶다. 왜 우리는 태어났고, 왜 우리는 삶의 다양한 상황과 형편에서 태어나 이렇게 살아가야만 하는지 궁금해 한다. 때론 마음에 눈물이 흘러 진정 그 삶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 온갖 철학책과 종교서적을 뒤적이기도 한다. 그리고 의지가 되는 대상에게 마음을 두며 일시적인 평안을 누리기도 한다.
그러나 저자는 처음 대순진리회에 빠져 사물을 바로 보지 못하듯 지금 또한 자칭 재림 예수라고 일컫는 '슈카이브'를 통해 혼돈된 깨달음에 미혹되고 있다고 본다.
깨어남과 깨달음, 카르마, 영혼의 자유를 위한 에고 내려 놓기와 같은 것은 가르침들이 어떤 상황에서는 대단히 매력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가르침은 삶을 직시하지 못하게 하고, 현실을 탈피하게 하며, 허상을 쫓게 하여 삶의 무대에 적응을 못하게 한다. 이 세상은 그저 탈피하기 위한 수단이며, 영혼이 머무는 학교로서 존재한다고 하여, 삶의 현실을 깡그리 무시하게 만들어 삶의 부적응자로 살게끔 한다.
물론 우리는 수박 겉핥기식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진짜 ‘나’를 알고, ‘나’를 찾지 못하곤 한다. 그러다 보니 외부의 것들에만 관심 있고, 그것들로 채우기 위해 앞만 보고, 멀리 바라본다. 그렇게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요시하며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동안 스스로 틀 안에 갇혀 자신을 깨우지 못한 자신을 질책하며, 이제는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자신을 내려놓도록 하는데는 많은 도움을 주는 이점은 있다. 그래서 참된 자아가 드러나 더 넓은 우주를 보게 하는 의식의 깨어남을 경험한다. 그러나 비단 이 책이 위험하다는 것은 그런 깨달음은 이미 철학자들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말해져 왔고, 일부 종교들에 의해서 내적인 삶을 살도록 하는 건전한 종교가 '그러한 것에 대해' 이미 가르쳐 왔다. 즉 조금만 귀를 기울이면 이러한 가르침을 주는 건전한 종교와 책, 철학적 가르침이 우리들 가운데 많이 쏟아 졌다. 그러면 문제는 뭔가? 그것은 '슈카이브'라는 자칭 재림 예수라는 자의 가르침을 맹목적으로 믿어 마치 자신들이 깨어난 것처럼 생각하게 되고, 교주를 추종함으로 개인의 주관적 판단과 이성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극단적으로는 교주의 가르침이 마치 신성불가침의 말처럼 들려 전혀 상식적이지도 않는 일을 하라고 할 때에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물질과 육체, 영혼이 가스라이팅되어 모든 것이 탈탈 털리는 상황을 결국 겪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가 말하기를 "우리는 살면서 숱한 선택의 기회를 만나게 된다. 무엇을 먹어야 할지, 차는 무엇을 마실지, 퇴근하고 누구를 만나 수다를 떨 것인지 등 매 순간, 매일매일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이렇게 평생을 살아가고 죽는 순간까지도 선택해야 할 것, 결정해야 할 것들을 놓고 고민하다가 아쉬움과 미련, 후회를 두고 죽음을 맞이한다. 그런데 선택이란 무엇일까? 신은 왜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줘서 선택하게 만든 것일까? 선택하지 않았을 때의 손해와 선택했을 때의 이익, 이것들을 계산하는 분별심에 집착하는 에고의 욕망이 우리의 영혼의 소리를 막고, 우리의 영혼을 슬프게 하는 것이다. 이제는 자신의 내면의 영혼 소리에 귀 기울여라! 누구든지 들을 수 있고, 결국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깨어남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라고 말하며 '선택'의 영역을 결국 나쁜 쪽으로 말하고 있다.
그런데 말이다. 결국 인간은 선택하는 것의 종이 된다. 즉 순간순간을 선택하면서 사는 거다. 이러한 선택은 어떤 이익에 집착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분별심에 집착하여 사물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분별을 통해 옳고 그름을 알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잘못 선택한 자신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데 그 이유는 인간 자신이 그것을 선택하며 따랐기 때문이다. 결과는 원인에 의해 얻어진 것이기에 이런식의 가르침을 주는 깨어남의 진리는 자칫 허상에 머무는 삶이 된다.
그러기에 이 책의 저자도, 이 책을 혹 읽는 자도 이곳의 가르침을 통해 삶을 직시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더 이상 자칭 재림 예수라하는 '슈카이브'의 지도나 가르침으로 달려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르침에 대한 깨달음으로만 그쳐라. 슈카이브는 재림 예수가 아니다.
이 책이 또 하나의 미혹의 책이 되지 않았으면 하여 서평을 빌어 몇자 적어 봤다. 이미 자료를 찾아 보니 실화탐사에서 289회차에 사이비 슈카이브에 대해 다뤘다. 사이비의 가장 큰 문제는 가족과의 관계를 끊어버리게 하고, 가진 돈을 다 사이비에 바치게 하며, 불안을 조성하여 삶을 파괴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빠진 자들은 대부분 정상적인 현실을 살지 못한다. 허황된 가르침 가운데 하나만 언급하면 비싼 돈을 주고 한 강의를 듣고 그 교주로부터 허락이 떨어지면 빛의 일꾼 명단에 오를 수 있고, 종말이 오는 날 우주함대를 타고 새나라에 갈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고 한다.
딱 봐도 무언가 잘못된 것임을 알 것이다. 여기에 빠진자들은 빨리 서둘러 나오기 바란다!!(서평을 쓰기에 부적합한 책이나 올바른 종교로 권면하고자 이렇게나마 글을 올리는 바이다)
-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