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라는 길을 걸어 가면서 삶은 과연 나에게 무엇을 의미하며, 왜 우리는 존재하는가에 대해 질문을 하게 된다. 폴 고갱의 작품 가운데 최대 야심작이자 정신적 유언장인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라는 작품 제목은 결코 고갱만의 고심은 아닐 것이다. 인생의 많은 난제 앞에 우리는 사실 길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살고는 있지만 겨우 버티면서 살기도 하며, 행복하다고 하지만, 성공을 이루었다고 하지만 그것이 결코 만족스럽지 않는 삶인 경우가 많다.
파우스트를 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인 괴테의 말을 들어보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에 한 치의 후회도 없지만 나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내 인생이 온통 고통과 괴로움뿐이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75년이라는 세월 동안 진정한 기쁨을 누린 시간은 고작 4주도 안 되는 것 같다. 나에게 인생은 마치 산비탈에서 굴어 떨어지는 거대한 돌과 같아서, 그 돌이 저 아래 바닥에 닿지 않도록 막으려고 쉼 없이 온갖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만 같다." p. 58
그리고 코르도바 우마이야 왕조의 초대 칼리프인 아브드 알흐라만 3세는 50여 년 재위 기간 동안 왕조를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최고의 전성기로 성장시킨 장본인이다. 그는 부와 권력, 즐거움을 마음껏 누렸으며, 모든 삶의 안락함은 언제나 명령만 하면 충분하게 누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정말 온전히 기뻐한 날은 겨우 14일이라고 고백했다.(p. 59) 성경에 나오는 인물 가운데 가장 큰 부와 권력을 누린 그 또한 <전도서>에서 "모든 것이 헛되고 사람이 죽는 날이 태어난 날보다 더 낫다"고 말했다. 그리고 “고통이 존재의 특징”(p. 92)이라는 붓다의 말처럼,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어쩌면 계속 고통과 괴로움을 경험하며 살고, 끝을 맺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모든 버거운 삶에 무언가가 필요하다. 철학은 삶의 대한 목마름으로 인해 생긴거라 생각이 된다. 즉 왜 인간은 고통스럽고, 행복하지 않은지? 어떤 삶이 가장 좋은 삶인지를 계속 묻는 가운데 삶의 이유를 찾는 학문이 바로 철학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 우리가 철학을 공부하는 이유라면 우리의 삶을 좀 더 즐겁게 최대한의 행복을 많이 만들어 내기 위해서이다. 그렇다고 철학을 한 사람이 과연 행복을 찾았는가 할 때 그것은 또 아니다. 최근 '삶을 긍정하는 생성의 철학'으로 유명세를 떨치던 질 들뢰즈라는 철학자가 1995년, 자신의 아파트에서 투신자살로 생을 마무리한 것을 들었다. 물론 그의 자살에는 그 자신만의 이유가 있다. 그러나 철학자들은 어쩌면 말과 삶이 다른 괴짜들이 아닌가 싶다. 이율배반적으로 살고는 그것 또한 대단한 이유라고 갖다 붙이는 자들 말이다.
이 책을 읽는 다는 것은 그저 삶을 지탱하기 위한 작은 몸부림이다. 세상이 나를 무너뜨리려고 하는데 다른 사람은 어떻게 삶을 지탱하고 사는지 알고 싶어서이다. 그래서 그 통찰을 얻고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다. 기존에 읽었던 많은 철학책이 위로가 되어 주었기에 이 책 또한 위로를 받고, 깨우치고, 살기 위해서 집어 들었다.
철학은 2500년 동안 쌓여온 인생 역사서라고 한다. 철학자들이 남긴 말들은 자기 성찰의 산물로서 단순한 고뇌가 아니다. 그건 자신들의 뒤를 이어 살아갈 이들을 위한 당부로서 고뇌에 대한 지혜를 후대들에게 전해 준다. 한 마디로 나처럼 힘들지 말라는 조언이다. 샤피라에 의하면 이 마음을 사랑이라 부른다고 한다.
우리가 지나간 자리는 다른 사람에게 삶의 지도가 될 것이다. 그래서 삶의 문제 앞에서 선배 인생들이 걸어간 길을 철학자의 지혜로 본다면 좀 더 삶이 쉬워지지 않을까?
저자는 이스라엘의 수학자이자 철학자, 유럽이 사랑하는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인기 연사인 하임 샤피라는 굴직한 인물이다. 다른 책에서는 이스라엘 최고 랍비로 불리워진다. 이것은 그가 다른 사람 보다 지혜에 관해서는 스승이라는 것이다. 책에는 장자부터 아리스토텔레스, 에피쿠로스, 소크라테스, 체호프, 괴테, 톨스토이, 길가메시 서사시와 성경,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에픽테토스와 아우렐리우스까지, 온 나라를 두루 섭렵하며 불멸의 문장과 지혜를 깡그리 모았다.
그래서 읽는 재미는 물론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삶이 무수히 던지는 큰 질문들 속에 자신이 비틀거린다면 다른 말은 필요 없고 지금 이 철학 여행에 동참하여 그저 읽고 가만히 생각하기를 바란다. 그러면 나에게 책이 말을 걸어 올것이고, 해답도 줄 것이다.
어쩌면 오늘 나에게 필요한 말은 무엇일까하며 눈을 감고 원하는 곳에 책을 펴고 읽어보면 그날 나에게 주는 선물 같은 메시지가 눈에 띌 것이다. 책을 읽으며 실제 해보았다. 그랬더니 셰익스피어 햄릿에 나오는 글귀가 보였다. "좋고 나쁜 것은 모두 생각하기에 달려 있다."
지금 나에게 겪는 문제를 쉽게 보라는 메시지로 들리며, 좋은 관점으로 생각하라는 것이다. 그 뒷장을 펴보니 페이지 278페이지에서 이런 글귀가 함께 눈에 들어 온다. "길 위의 장애물은 곧 길이 된다.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다니 얼마나 불행한가'라고 말하지 말고 이렇게 말하라. '이런 일이 일어났지만 이겨낼 수 있었으니 얼마나 운이 좋은가'하고 말하라는 것이다."
이 얼마나 깔끔한 안내자인가? 이 책은 다시 말하지만 길을 잃어버린 방랑자에게 이 길도 있고, 저 길도 있으니 책을 읽다가 나를 멈추게 하는 곳에서 잠시 머물고 생각하다가 마음에 새긴 후에 그리고 생각을 정리하며 길을 나서라고 종용해 주는 책이다. 그렇다. 이 책은 철학의 아포리즘aphorism이다. 압축된 경험된 진리가 이 책을 엮어나가고 있다. 숨쉬고 싶다면 이 책을 통해 숨을 쉬어 보라. 무릎을 치며 맞다 이거구나! 하는 통쾌한 삶의 진리를 만나고 싶다면 이 책으로 달려오길 바란다. 이것이 독자가 생각하는 이 책의 정의이다.
이 책의 한 문장
죽을 때 후회하는 다섯 가지 가운데 하나: 나는 인생을 살아갈수록 우리의 자유가 애처로울 정도로 제한되어 있다고 믿는다. 젊을 때만 해도 내가 자유로운 인간이고 모든 선택은 온전히 내 선택이라고 믿었다. 열심히 노력한다면 어떤 길이든 갈 수 있고 어떤 꿈이든 이룰 수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얼마나 치기 어린 생각이었는지 깨닫는다. 인간은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복잡한 존재이고 우리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도 많다. “인간은 자연의 법칙에만 따라 움직이는 피아노 건반이 아니다”라는 도스토옙스키의 말에 동의하지만, 우리가 감정과 생각, 선택, 그리고 가장 중요한 행동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은 오만하다.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스스로 선택하는가? 생각을 선택할 수 있는가? 이런 생각들은 나를 슬프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큰 위로를 준다. 왜냐하면 우리의 선택은 실수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수는 나라는 사람의 일부다. 큰 실수는 우리가 깨닫지 못했던 꿈에 대해, 하거나 하지 않았던 선택에 대해 후회하고 슬퍼하는 것이다. p. 80-90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에 대한 논쟁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어라.
선과 악에 관해서는, 용감하고 지혜롭고 절제적이고 정의로운 사람이 되도록 도와주는 것이라면 선이고, 방해하는 것은 악이다. p.277
-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