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어린이 책은 어른들에게도 감동을 준다. <정의로운 은재>는 어린이에게도 좋은 책이지만 어른들과도 함께 읽고 싶은 책이다.
정의를 심판하는 투명 양동이, 골목이 열리면서 나타난 고양이, 전래동화 속 주인공들, 좀비가 된 소년, 신종 바이러스 시대, 사회적 상황과 가족 간의 갈등 문제까지 소재와 이야기의 시도가 모두 흥미롭다. 현실과 환상이 겹쳐지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인가 했더니 6편의 이야기들이 던져주는 각각의 문제의식은 진지하다. 그리고 그 문제들을 고민하고 탐구하는 우리의 어린이들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우리가 서로를 구원하는 이야기들이기도 하다. 전형적인 교훈이나 정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통해 질문을 주고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들이라서 더 좋았다.
하루에 세 번, 은재와 승연이가 투명 양동이를 쓸 수 있는 횟수다. 물론 아무한테나 쏟아붓거나 장난치는 데 쓸 수 없고, 반드시 정의를 위해 써야 한다.
둘은 이 이상한 능력을 얻기 전에 먼저 메신저로 계약서를 받았다. 장장 50페이지짜리 계약서에는 어떤 상황에 양동이를 쓸 수 있는지 아주 길고 자세하게 적혀 있었다.
'물을 맞는 대상이 반드시 시야에 있어야 한다. 양동이는 그 대상이 정의롭지 않은 일, '잘못'을 했을 경우에만 작동한다. 그 잘못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 법과 규칙을 위반하는 행위, 악의를 담은 행동 또는 말, 훔치거나 부수거나 망가뜨리거나, 때리거나 괴롭히거나 욕하거나 거짓말하거나......'
정의로운 은재, 13쪽.
상처 주는 사람과 상처 받는 사람이 어디에나 있어 은재는 좀 놀랐다. 어떻게 된 게 양동이가 모자라지 않은 날이 없었다. 은재 세 번, 승연이 세 번을 다 쓰고 난 뒤에도 양동이가 필요한 상황이 자꾸 닥쳐왔다. 둘은 하루에 세 번이 너무 적다고 툴툴거리고, 가끔은 길길이 뛰었다. 그렇게 놓친 양동이 후보를 다음 날 운동장에서 주시한 적도 있었다. 오늘은 포악한 짓을 하면 쓴 맛을...... 아니, 찬물을 톡톡히 부어 주리라 벼르면서 말이다. 하지만 어제 나빴던 아이가 오늘도 나쁘리란 법은 없어서, 아무 꼬투리도 잡지 못하고 씁쓸하게 돌아섰다.
정의로운 은재, 23쪽.
그리고 어린이들은 무지하고 무력한 존재가 아니다. 상처를 치유하면서 스스로 삶의 진실을 찾고 가능성을 만들어 간다. 위기 속에서 어린이들은 방법을 찾을 것이다. 그리고 어린이들이 스스로 자라는 마법을 지켜보는 어른들에게는 때때로 안도와 기쁨이 찾아온다.
그런데 호랑이가 홍이에게서 받은 떡보자기를 길동이 앞에 가만히 내려놓았어. 예전에 호랑이네 할머니가 그랬거든. 마음이 괴로울 때는 배 속이 더 든든해야 한다고. 그래야 힘을 내서 괴로움을 떨칠 수 있다고. 호랑이 생각에 지금 마음이 괴로운 이는 길동이였어. 그러니 이 떡은 누가 뭐래도 길동이가 먹어야 할 것 같았지. 호랑이가 길동이에게 어서 먹으라고 눈짓을 했어.
그날 밤, 홍이와 길동이, 57쪽.
삶이 언제나 즐겁고 아름다울 수만은 없고 세상은 위험한 것들로 가득하다. 불안 속에서 우리를 지켜주는 것은 무엇일까. 아무에게도 나쁜 마음을 보이지 않고, 사랑하는 존재들의 손을 잡고 함께 있는 오늘 하루가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지. 그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된 어린이들은 조금 더 행복할 수 있을 텐데.
<정의로운 은재>는 우리가 사랑과 우정의 힘으로 어둠 속에서도 희망을 찾고 조금 더 따뜻하고 빛나는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래서 어린이들은 좋은 이야기가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믿게 될 것이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무수한 별들이 밤하늘에 반짝이고 있었다. 이제 나와는 상관없어질 아름다운 광경. 이 거대한 우주의 수많은 생명체 중 나의 존재가 지워져 간다는 생각에 슬퍼졌다. 내가 사라진다고 해도 우주는 팽창하고 은하는 반짝일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니 별들이 더 아름다웠다. 왜 이전에는 하늘을 올려다 볼 생각을 안 했을까? 왜 다이빙대에서 돌아섰을까? 왜 친구들과 다투었을까? 왜 사랑한다는 말을 아꼈을까? 왜 나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에야, 세상의 아름다움을 더 자세히 발견했을까.
바이, 바이, 1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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