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리뷰] 대도시의 사랑법
동동 2019/07/04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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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도시의 사랑법
- 박상영
- 13,500원 (10%↓
750) - 2019-06-28
: 23,419
1. 「대도시의 사랑법」이 피부를 묘사한 부분을 읽다보면 "언어는 살갗과 같다"라는 롤랑 바르트의 문장이 떠오른다. 후텁지근한 클럽에서 바짝 가까워진 채로 서로의 체온을 나누길 원하는 '나'의 욕망으로 은유 되는 발단, 둘만 남은 방 안에서 서로의 살냄새를 맡으며 깊어지는 관계로 은유 되는 전개, 에어컨 바람에 건조하고 차갑게 매마른 피부로 은유 되는 결말. ‘나’와 규호의 연애는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언어와 살갗에 차집합이 있다면, 살갗은 마찰할 때 뜨거워지지만, 언어는 마찰할 때 차갑게 식는다. 그리고 대도시의 우리들은 이 발단-전개-결말을, 가열과 냉각을 평생에 걸쳐 반복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떻게 권태에 빠지지 않는가? 매번 똑같이 반복되는 연애, 똑같은 데이트 코스 속 어디에서 권태가 아닌 환상에 빠질 동력을 얻는가? 내게는 박상영 작가의 작품이 자꾸만 ‘희망’을 말하는듯하다. 박상영 작가의 전작 「햄릿 어떠세요?」의 아이돌 데뷔에 실패한 주인공 ‘나’는 모든 것에 무감각해져 포기와 체념으로 도피했지만, 결국 그는 아이돌 데뷔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그저 심심해서 만난 곰곰을 오필리아처럼 사랑한다. 그리고 규호가 공연장을 찾아간 날 ‘나’는 나에게 관심이 없을 거라고 체념하면서도 ‘주책맞게’ 웃지 않았던가? 이 때 “가면 아래 가려진 진실보다 가면에 더 많은 진실이 담겨 있다”라는 슬라보예 지젝의 문장도 떠오른다. 냉소와 체념은 더 나은 현재와 미래를 지향하는 수많은 태도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리고 냉소주의와 실패주의라는 가면은, 그 자체만으로 희망을 내재한다. 무거운 현실과 멜랑콜리에서 ‘짧은 농담’으로 회피해버릴 수 있었던 이유는 이 반복되는 패턴 끝에(혹은 속에) 뭔가 있으리라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냉소와 무기력, 포기와 체념 속에서 없던 빛을 만들어내는 자기최면, 즉 희망이야말로 ‘대도시의 생존법’이자 ‘대도시의 사랑법’이다.
2. 「대도시의 사랑법」이 에이즈를 그려낸 방식은 그의 전작 「중국산 모조 비아그라와 제제, 어디에도 고이지 못하는 소변과 짧은 농담」의 주인공 ‘박 감독’이 지향하던 ‘투명할 정도로 정치적인 목적을 드러내’지도, ‘훈장처럼 전시하지도’, ‘대상화해 신파로 소모하지도’ 않는 퀴어영화의 경지에 도달한다. 정치적인 메세지가 직접적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언제든지 정치적으로 읽힐 준비가 되어있다. ‘사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 그랬던가? 누군가 춤추고, 연애하고, 여행하고, 출근한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그래서 괴담처럼 여겨졌던 삶이 이제는 연애소설, 일상소설로도 읽힐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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