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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자책] 원더보이
  • 김연수
  • 10,200원 (510)
  • 2012-05-02
  • : 459

처음에는 ‘80년대의 암울한 상황을 환상과 노스탤지어와 패러디의 색채로 미화한 소설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다 읽고 나면 그렇지만은 않다고 느꼈다. 환상의 색채가 있어도 끔찍한 상황은 끔찍하다.

이 소설은 국가 권력에게 짓밟히는 개인의 모습을,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어 보여주고 있다. 그 희생자 중 한 명이 희선(강토)의 연인이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만든 ‘유치한’ 암호 때문에 안기부에 잡혀간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원주율을 외우고 1976년의 서울 거리를 머릿속에 그려내는 놀라운 기억력의 소유자다. 그런 능력도 조금이라도 운동가를 더 많이 잡아 내려는 안기부에 이용된다. 그 놀라운 기억력 때문에 관련된 많은 사람들이 잡혀 가서 고문당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아름다운 추억과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거대한 권력은 무참하게 짓밟는다.

후반부 ‘1980년, 우리 기억의 서울’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순간이 정말 덧없이 바뀌어 버린다는 사실로 안타깝게 한다.

 

1천 65억 명. 지구가 생긴 뒤 지금까지 살았던 호모 사피엔스의 숫자다. 넓은 우주의 한쪽 귀퉁이에 있는 지구. 나라는 한 사람은 그 지구의 바글바글한 사람들 중에서도 1천 65억분의 1밖에 안 된다. 그야말로 먼지 중의 먼지다. 그러나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하는 순간, 그 사람은 1천 65억 명 가운데 선택받은 특별한 사람이다.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때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국가가 우리를 부품 취급하고 거대한 톱니바퀴가 우리를 짓밟으려 하더라도, 우리는 1천 65억 명 가운데 선택 받은 특별한 존재다.

 

주인공의 어머니는 북한에 있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때쯤엔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도 만나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라는 내용을 담는다. 그 뒤로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남북은 갈라져 있다.

그러나 소설은 희망으로 끝을 맺는다.

 

이제 우리가 살아갈 세상은 완전히 다를 거라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거라고.

 

그것은 우리의 행동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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