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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네클라이네 님의 서재
  • 한자의 기원
  • 시라카와 시즈카
  • 16,200원 (10%900)
  • 2009-02-23
  • : 377

시라카와 시즈카(白川靜)의 저서 <한자의 기원>은 갑골문과 금문에 대한 방대한 실증을 바탕으로, 고대 한자가 단순한 기호나 표의문자를 넘어 주술적·종교적 의미를 담은 상형문자였음을 밝혀낸 현대 문자학의 고전이다. 


저자는 은나라의 갑골문이 점을 친 내용인 복사(卜辭)를 기록한 것에서 출발하여, 한자가 신(神)과 인간이 소통하기 위한 매개체이자 주술·종교적 의례를 형상화한 것이라 주장한다. 


또한 한자는 단순한 사물의 모양을 본뜬 것을 넘어, 고대인들의 삶, 신앙, 생산, 전쟁 등 생활 풍습과 사유 체계를 그대로 내포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허신의 <설문해자> 같은 전통적인 훈고학적 해석에서 벗어나, 고대 문헌과 출토 유물의 자형을 독창적으로 연결하여 한자의 본래 의미를 추적한다. 


설문해자에서는 '口'를 인간의 입으로 보았다. 그러나 시라카와는 이를 신에게 바치는 축문(기도문)을 담는 그릇인 '사이(𠮛)'로 재해석하는 독창적 시각을 제시한다.


나아가서 고대 한자에는 전쟁, 형벌, 인신공양 등 주술적 방어와 공격의 의미가 담겨 있음을 증명하는데, 예컨대 길할 길(吉)은 축문 그릇 위에 무기를 놓아 악령을 막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결국 한자는 단순한 소통 도구가 아니라, 신의 뜻을 묻고 재앙을 물리치기 위한 '주술적 도구'였음을 밝힌다. 
이 책의 의의를 든다면 한자 연구를 단순한 언어학에서 '고대 문화 인류학'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점이다. 글자 하나하나에 숨겨진 고대인의 삶과 공포를 생생하게 복원하는 통찰이 흥미롭다. 
다만 저자는 모든 글자를 주술과 연결하려는 지나친 '주술 과잉주의' 경향이 있다. 추론에 의존한 부분이 많아, 현대 중국 문자학계에서는 그의 과감한 가설을 완벽한 실증으로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래도 좋다. 설문해자와 같은 틀에 박힌 관념론으로 고대 문자를 해석하는 답답한 한계에 안주하는 학계의 관행을 과감히 벗어나서, 새로운 시각과 통찰로 접근하는 석학이 많아질수록 고대의 수수께끼를 풀어내는 열쇠가 다양해지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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