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화양이라는 도시가 있다.
그
도시의 화양맨션.
개를
수십마리 키우고 있는 개장수는 아침부터 몸이 좋지 않았다.
수많은
개 중 누렁이는 남자의 손목을 물었다.
남자는
개를 우리에서 끌어내 창고 바닥에 패대기치고 배가 터지도록 걷어찼다.
누렁이는
피를 흘리고 창자를 쏟아내며 죽었다.
그 후 남자는 눈이 빨개졌다. 그리고 피를 토했다.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소설
28에서
다루고 있는 ‘인수공통전염병’
발병은
그렇게 시작됐다.
‘메르스
진원지 '평택성모병원'
38일
만에 재개원’
며칠
전 뉴스 자막으로 저 소식을 목격과 동시에 소설 28을
그제야 읽어냈다.
메르스
발병 후 소설 28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았는데 실제 소설의 내용은 닮은 듯 달랐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오랜만에 개운했다.
뭔가
미뤘던 숙제를 해낸 느낌이랄까,
정말
궁금했던 이야기의 결말을 알고 난 후의 쾌감이랄까.
책을
덮고 오래도록 움직일 수 없었다.
허탈하기도
했고,
착잡하기도
했다.
극한
상황에서 끝까지 지켜내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스스로의 물음에 선뜻 답을 할 수 없었다.
이
책은 빨간 눈으로 발병한지 3~4일만에
죽어나가는 참혹한 상황속에서 인간이 바라보는 세상과 ‘링고’
라는
늑대개의 시선도 동일하게 묘사해 입체적으로 작품을 읽게 만든다.
구급대원,
군인,
공무원,
이웃,
부모,
자식
누구하나 피하지 못하고 죽어나자빠지는 아비규환 속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아픔은 물론,
정부의
무능,
탁상공론으로
이어지는 늑장대응 등을 아프게 꼬집으며 “당신이라면
이 상황 속에서 무엇을 하겠는가”를
집요하게 물어대는 소설이다.
버림받은
강아지들의 안식처 ‘드림랜드’의
주인 서재형,
한진일보
기자 김윤주,
구급대원
한기준,
간호사
노수진,
국립화양의료원
감염내과 과장 박남철,
그의
아들이며 중대에서 기르는 개들을 모조리 죽여 소방공익요원으로 전환된 박동해.
이들의
가족과 동료의 이야기가 씨줄과 날줄처럼 촘촘히 엮이며 인간애에 대해 말하고 있다.
등장인물
각각의 에피소드를 다루면서 가족의 이야기를 하는데 하나같이 지키지 못하고 끝내 지킬 수 없는 현실을 처참하도록 현실감있게
그려냈다.
그
과정에서 개들을 살처분하는 장면을 몇 년 전 구제역의 악몽을,
화양이란
도시를 봉쇄하며 탈출하려는 자와 살아남은 자들의 울부짖음을 외면하는 정부의 태도에서는 1980년의
광주를 떠올릴 수밖에 없도록 구성됐다.
그렇지만
책을 읽으면서 난 의외로 극한상황에서 비열해지는 인간들에 주목했다.
김윤주를
챙겨주는 척하면서 집안에 수많은 비상식품을 비축해둔 경원매일 기자 문대성,
빨간
눈 환자들이 몰려드는 상황에서 후배의 오프를 가로채는 김유미,
아들
박동해의 상처를 보듬지 못하는 무용과 교수 이금희,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러 온 노수진을 욕보인 복면사내 셋...
거기엔
정의도,
사랑도,
의리도
없이 짐승같은 인간들이 숨을 쉬고 있다는 게 소름끼치도록 현실적이다.
지켜야
할 것을 버리고,
갖지
말아야 할 것을 갖는 이들
.
이
책을 통해 그래도 세상이 아름답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의 비뚤어진 욕망이 생생하게 와닿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설 28은
언제가 됐든 읽어야 할 소설이다.
우리가
이토록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인지,
우리가
진정 지켜야 할 가치는 무엇인지 거칠지만 확실하게 각인시켜 주는 작품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