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밤, 불이 꺼진 방 안에서 문득 귓속에서 들려오는 소리.
“삐—”, “웅—”, 혹은 매미가 울 듯한 그 작은 소음.
처음에는 스치듯 지나가는 감각이라 여긴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고 몇 주가 지나면, 그 소리는 더 이상 단순한 소음이 아니다. 그것은 나를 둘러싼 침묵을 깨뜨리는 이방인이 되고, 잠들기 직전의 평온을 훔쳐 가는 침입자로 변한다. 책은 닫히고, 생각은 흐트러지며, 무엇보다 “혹시 내 몸이 나를 배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불안이 스며든다.
김영호의 《이명은 어떻게 사라지는가》는 바로 그 불안의 한가운데에서 시작한다. 제목만 보면 이명을 단번에 지워 주는 치료 비법을 약속하는 책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이 건네는 진짜 이야기는 훨씬 더 깊고, 더 인간적이다. 이명은 단순히 귀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는 병리적 현상이 아니라, 귀와 뇌, 감정과 기억, 주의와 공포가 서로 얽혀 만들어 내는 복합적인 ‘경험’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 책은 이렇게 말한다.
이명은 소리 자체보다,
그 소리를 얼마나 위험하고 중요한 것으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더 크게, 더 아프게 울린다.
——이명은 ‘소리’이면서, 동시에 ‘해석’이다——
책은 이명을 외부에 실재하는 소리가 없는데도 귀나 머릿속에서 소리, 혹은 소리와 유사한 감각을 느끼는 현상으로 설명한다. 사람마다 그 소리는 다르다. 어떤 이에게는 날카로운 비명이고, 어떤 이에게는 낮은 웅웅거림이며, 어떤 이에게는 바람 소리나 매미의 울음처럼 느껴진다. 스트레스와 심리적 충격이 그 소리를 불러내거나, 이미 존재하는 소리를 더 선명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도 덧붙인다.
여기서 저자의 시선은 흥미롭다. 우리는 이명이 들리면 거의 본능적으로 귀를 의심한다. 물론 난청, 중이염, 혈관의 이상처럼 실제 검사가 필요한 원인이 분명히 존재한다. 갑자기 시작된 이명, 한쪽 귀의 청력 저하, 맥박에 맞춰 두근거리는 소리라면 이비인후과 진료를 미뤄서는 안 된다.
그러나 검사 결과 특별한 위험이 발견되지 않았는데도 소리는 계속될 수 있다. 그때 책은 우리의 뇌를 응시한다. 뇌는 본디 세상의 모든 소리를 동등하게 듣지 않는다. 냉장고의 낮은 진동, 시계의 초침, 멀리서 들려오는 자동차 소리처럼 늘 존재하는 자극은 시간이 지나면 의식의 가장자리로 밀려난다. 뇌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것’을 걸러 내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명을 들은 뒤 “왜 들리지?”, “절대 사라지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며 반복해서 확인하기 시작하면, 뇌는 그 소리를 중요한 경고 신호로 재분류한다. 그러면 소리는 더 선명해지고, 더 거슬리고, 더 자주 의식의 중심으로 뛰어든다. 이 책이 말하는 이명의 고통은 바로 이 과정—소리가 아니라, 소리에 대한 해석과 주의가 만들어 내는 악순환—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왜 밤은 더 크게 들리는가——
이명 환자들이 흔히 겪는 어려움은 단순한 청각의 문제가 아니다. 소리가 존재한다는 사실보다, 그 소리를 향한 불안과 감시의 시선이 고통을 키운다.
밤이 되면 이명이 더 크게 들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로 소리가 갑자기 커진 것이 아니라, 낮 동안 우리를 둘러싸던 생활의 소음이 사라지고, 이명만이 홀로 남게 되기 때문이다. 그 순간 “또 들린다”는 생각이 스며들고, 잠들어야 한다는 압박이 더해지면 이명은 단순한 소음을 넘어 위협적인 존재로 변모한다.
이 과정은 거의 자동적으로 반복된다.
이명이 들린다.
혹시 심각한 문제는 아닐까 걱정한다.
소리가 들리는지 계속 확인한다.
뇌가 이명을 더 중요한 자극으로 인식한다.
이명이 더 크게, 더 자주 느껴진다.
불안과 피로가 커지고, 다시 이명에 더 민감해진다.
이 책의 미덕은 이 악순환을 환자의 ‘의지 부족’이나 ‘지나친 예민함’으로 몰아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신경 쓰지 마세요”라는 말은 이명 환자에게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신경을 쓰지 않으려 할수록 오히려 더 집요하게 신경이 쓰이기 때문이다. 필요한 것은 억지로 참거나 무시하려는 태도가 아니라, 이 소리를 위험 신호로 해석하지 않도록 뇌의 반응 방식을 천천히, 부드럽게 바꾸는 과정이다.
——진단의 신중함, 그리고 균형—-
이명은 눈에 보이지 않고, 기계로 완벽하게 측정하기 어려운 증상이다. 그래서 “검사 결과는 괜찮다”는 말과 “환자는 너무 괴롭다”는 사실이 동시에 성립할 수 있다. 책은 청력검사, 병력 청취, 이명 설문, 귀와 신경계의 진찰을 종합해 상태를 살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이명의 양상에 따라 접근이 달라질 수 있음을 강조한다. 심장 박동과 비슷하게 두근거리는 박동성 이명, 갑자기 청력이 떨어지면서 시작된 이명, 한쪽 귀에서만 유난히 심하게 들리는 이명, 어지럼과 두통·균형 이상이 함께 나타나는 경우, 큰 소음에 노출된 뒤 생긴 이명, 우울과 불안·불면으로 일상생활이 크게 무너진 경우—이런 상황에서는 단순히 “스트레스성”이라고 넘기기보다 정확한 진찰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책의 가장 신뢰할 만한 태도라고 느껴졌다. 이명을 무조건 마음의 문제로 환원하지도 않고, 반대로 모든 이명을 귀의 구조적 이상으로만 설명하지도 않는다. 필요한 검사는 제대로 받고, 위험한 원인은 놓치지 않되, 그다음에는 삶의 질을 회복하는 치료로 넘어가야 한다는 균형감이 있다.
——치료의 목표는 ‘소멸’이 아니라 ‘관계의 전환’—-
많은 사람이 이명 치료라고 하면 “삐 소리를 완전히 없애는 것”을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이 책은 치료의 목표를 조금 다르게 제시한다.
그 목표는 이명을 완전히 지우는 것만이 아니라,
이명이 내 삶의 중심이 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명 때문에 잠을 못 자고, 사람을 만나기 싫고, 일을 못 하고, 계속 귀를 확인하는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 다시 말해, 소리는 남아 있더라도 그것이 더 이상 공포나 위협의 대상이 아니게 만드는 것이 중요한 치료 목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에서 소개하는 방법들은 다양하다. 이명 재훈련 치료는 상담과 소리 치료를 함께 하며 뇌가 이명을 배경 소리로 받아들이도록 돕는다. 소리 치료와 차폐는 백색소음이나 자연음으로 조용함을 줄여 이명을 덜 도드라지게 한다. 보청기는 난청이 있을 때 외부 소리를 다시 들려주어 이명의 존재감을 상대적으로 낮춘다. 인지행동치료는 “이명 때문에 인생이 끝났다”는 식의 파국적 사고와 공포 반응을 다룬다. 약물은 이명 자체보다 불면·불안·우울이 동반됐을 때 보조적으로 고려되고, 수술이나 시술은 혈관성 문제나 구조적 이상이 분명한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논의된다.
특히 난청을 동반한 이명에서 보청기를 중요한 선택지로 보는 시각이 인상적이다. 보청기는 단순히 소리를 증폭하는 기기가 아니라, 잘 안 들리던 바깥 세계를 다시 열어 주어 이명을 상대적으로 덜 부각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반면 약물에 대해서는 비교적 신중하다. 원인이 뚜렷하지 않은 일반적인 이명을 약만으로 확실하게 없애는 치료는 아직 확립되지 않았다고 본다.
이런 태도는 오히려 믿음직하다. 너무 쉽게 “이 약을 먹으면 낫는다”거나 “이 기기를 쓰면 해결된다”고 약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책을 덮고 나서]
《이명은 어떻게 사라지는가》는 이명을 완전히 없애는 마법 같은 해법을 약속하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그래서 더 현실적이고, 더 인간적이다.
이 책은 이명을 앓는 사람에게 “당장 소리를 없애지 못해도 삶을 되찾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건넨다. 귀에서 들리는 소리가 사라지는 것만이 회복은 아니다. 그 소리를 계속 감시하지 않아도 되고, 밤에 덜 두려워해도 되고, 잠을 자고, 일을 하고, 대화를 나누고, 다시 일상의 작은 즐거움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그것 역시 분명한 회복이다.
이명은 누구에게나 불안한 증상이다. 특히 갑작스러운 청력 저하, 한쪽 귀의 뚜렷한 변화, 맥박에 맞춘 소리, 심한 어지럼이나 신경학적 이상이 동반된다면 먼저 이비인후과에서 정확한 진료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검사를 거친 뒤에도 이명이 남는다면, 이 책이 말하듯 소리를 없애려는 싸움만 계속하기보다 그 소리와 맺는 관계를 바꾸는 일도 치료의 중요한 일부가 될 수 있다.
이명 때문에 세상이 점점 좁아진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이명은 어떻게 사라지는가》는 조용하지만 현실적인 위로를 건넨다. “삐” 소리를 없애는 법만 알려 주기보다, 그 소리에 빼앗긴 일상을 다시 되찾는 길을 함께 고민하게 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충분히 읽어볼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