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는 세계를 대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novelleco 2026/10/02 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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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살리는 음식들
- 선재
- 20,700원 (10%↓
1,150) - 2026-06-25
: 8,750
요리는 재료를 음식으로 바꾸는 일이다. 그러나 그 변화가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묻는다면, 나는 칼이나 불보다 먼저 요리사의 시선을 떠올린다. 같은 쑥을 보고도 누군가는 향이 강한 식재료를 보고, 누군가는 봄을 견디고 올라온 생명을 본다.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손질하는 방식도, 완성하려는 맛도 달라진다.
《나를 살리는 음식들》은 사찰음식을 통해 그 시선의 문제를 깊이 생각하게 한다. 이 책에서 음식은 취향의 표현이나 건강을 위한 수단에 머물지 않는다. 자연과 타인에게 빚지고 살아가는 인간이, 매일의 식탁에서 그 관계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관한 질문이 된다.
## 맛은 더하기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요리사는 맛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그래서 때로는 부족한 인상을 양념으로 채우고, 더 강한 자극으로 기억에 남으려 한다. 하지만 이 책의 사찰음식은 반대 방향을 보여 준다. 덜어 낸 자리에서 재료의 향이 드러나고, 조용한 맛을 알아차리기 위해 먹는 사람의 감각도 달라져야 한다.
여기서 절제는 포기가 아니다. 무엇이든 더할 수 있지만 더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 재료가 가진 맛을 내 솜씨보다 앞에 놓는 것이다. 그것은 요리사의 존재감을 지우는 일이 아니라, 요리사의 판단을 더 섬세하게 드러내는 일이다. 좋은 요리에는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하는 일을 구별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 한 접시가 품은 관계
책에서 가장 마음에 남는 것은 새싹을 씻는 장면이다. 물살에 새싹이 다치지 않도록 그릇에 물을 떠 살살 씻고, 떨어진 흙과 벌레는 다시 밭으로 돌려보내라는 가르침. 음식이 되기 전의 재료뿐 아니라, 그 곁에 있던 작은 생명까지 살피는 손길이다.
요리사의 손은 재료를 자르고 익히며 다른 형태로 만든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너무 쉽게 재료를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대상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이 장면은 요리란 자연을 지배해 접시에 올리는 일이 아니라, 자연에서 받은 것을 어떻게 다룰지 매번 결정하는 일임을 일깨운다. 한 끼는 요리사 혼자 이룬 성취가 아니다. 흙과 물, 계절과 시간이 이미 오래전부터 그 음식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기억하는 요리사는 재료를 낭비하지 않으려 한다. 절약이 비용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먼저 관계를 잊지 않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 기다림도 조리의 일부다
발효 음식에 관한 대목을 읽으며 시간 역시 재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리사는 불의 세기와 조리 시간을 조절할 수 있지만, 발효를 마음대로 앞당길 수는 없다. 기다리는 동안 음식은 변하고, 요리사는 그 변화를 살피며 적절한 순간을 판단한다.
빠르게 완성하는 능력만이 실력은 아니다. 아직 손대지 말아야 할 때를 아는 것, 변화를 재촉하지 않는 것 또한 요리의 기술이다. 책 속 발효는 내게 그런 겸손을 가르쳤다. 요리사는 모든 맛의 창조자가 아니라, 재료와 시간이 만나는 과정을 돕는 사람일 수 있다.
## 누구를 살리는 음식인가
제목의 ‘살리는’이라는 말은 쉽게 소비해서는 안 될 표현이다. 모든 음식이 병을 낫게 할 수는 없고, 정성껏 만들었다고 해서 누구에게나 맞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요리사라면 그 말 앞에서 더 조심스러워져야 한다. 먹는 사람마다 몸의 상태와 필요한 맛, 식사의 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이 책에서 읽은 ‘살리는 음식’은 특별한 효능을 약속하는 음식이 아니다. 재료를 함부로 대하지 않고, 먹는 사람에게 내 취향을 강요하지 않으며, 한 끼를 먹은 뒤의 편안함까지 생각하는 음식이다. 그것은 완벽한 식단의 이름이 아니라 요리사가 지켜야 할 방향에 가깝다.
나는 철학이 있는 셰프가 되고 싶다. 철학을 말로 설명하는 셰프보다, 매일 반복하는 선택으로 드러내는 셰프가 되고 싶다. 새싹을 씻는 손의 힘, 양념을 멈추는 순간, 장이 익기를 기다리는 인내, 접시를 내기 전 먹을 사람을 떠올리는 짧은 시간에 그 철학이 있어야 한다.
《나를 살리는 음식들》은 내게 좋은 요리의 답을 하나로 정해 주지 않았다. 대신 요리를 시작할 때마다 되돌아갈 질문을 남겼다. **이 음식은 무엇을 살리고, 나는 무엇을 소홀히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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