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프로자의 개념과 문학적 논픽션의 지평
문학적 논픽션의 독창적인 하위 장르인 ‘조프로자(zoöproza, 동물 산문)’는 비인간 동물을 단순한 생물학적 관찰 대상이나 인간 서사를 돋보이게 하는 알레고리로 축소하지 않는다. 대신 동물을 인간과 대등한 역사적·지정학적 주체로 격상시켜 양자 간의 도덕적·철학적 관계를 탐구하는 글쓰기 방식이다.
네덜란드의 저명한 언론인이자 열대 농공학자인 프랑크 베스테르만(Frank Westerman)은 그의 저서 《공존한다는 착각》(원제: Zeven Dieren bijten terug, 2024)에서 이 조프로자의 정수를 보여준다. 베스테르만은 16세기 네덜란드 탐험대의 극지 원정 기록과 오늘날 기후 위기의 최전선인 북극권의 생태학적 격변을 교차시키며, 인류가 구축해 온 ‘공존’이라는 개념 뒤에 숨겨진 정복과 통제의 이데올로기를 정밀하게 고발한다.
이 저술은 인간 역시 생태계 안에서 다른 종들과 동일하게 연약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자각을 촉구하며, 자연에 투영된 인간 중심주의적 오독을 해체하는 탁월한 인문학적 성찰을 제공한다.
빌럼 바렌츠의 북극 원정과 보터란트의 메타포
빌럼 바렌츠(Willem Barentsz)가 이끈 16세기 네덜란드 탐험대의 북동항로 개척 시도는 지구 소빙기(14세기 초~19세기 중반)의 가혹한 기후 조건 속에서 전개되었다. 이 시기 네덜란드 선원들은 극지방이라는 이질적인 공간과 조우하며 수많은 인지적 혼란을 겪었다.
그 대표적인 현상이 바로 ‘보터란트(Boterland, 버터의 땅)’이다. 보터란트는 안개와 구름이 수평선 너머로 마치 견고한 육지처럼 보이는 시각적 착시 현상을 뜻하며, 배가 가까이 접근하면 버터가 뜨거운 열에 녹아내리듯 순식간에 사라지고 차가운 물줄기만 남는 현상을 가리키는 항해 용어였다.
이러한 형태의 착시는 북극 탐험 역사 전반에서 반복적으로 관찰된다. 1580년 영국의 탐험가 아서 펫(Arthur Pet)이 조지(George)호를 타고 북위 72도 인근에서 발견했다고 보고한 신기루 속 영토, 즉 ‘윌로비의 땅(Willoughby's Land)’이 대표적이다. 당시 선원들은 육지에 가까워졌다고 확신하며 필사적으로 노를 저었으나, 구름이 걷힌 후 마주한 실상은 인간이 발 디딜 수 없는 거대하고 황량한 빙하와 단지 오리들만이 가득한 얼어붙은 해안이었다.
훗날 게리트 더 페이르(Gerrit de Veer)가 번역한 펫의 항해일지에는 선원들이 무봉(無峰)의 안개와 구름을 영토로 착각하고 헤매던 허망함이 조롱 섞인 투로 기록되어 있다. 베스테르만은 이 보터란트 현상을 인간이 기술과 도덕적 우위로 대자연을 완벽히 정복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문명적 허상에 대한 강력한 은유로 치환한다.
바렌츠 역시 과거의 실패를 딛고 1596년 세 번째 원정에 나섰으나 '보터란트'의 지리적 덫을 피해 갈 수 없었다. 그들이 타고 간 백조호(Witte Swaen)는 1596년 6월 노르웨이 북위 71도의 노르카프를 지나 해가 지지 않는 백야의 세계로 진입했다.
당시 더 페이르의 일지에는 백야가 "마치 신들이 빛나는 공을 서로에게 부드럽게 넘겨주고 받으며 즐기는 여름날의 공놀이" 같다는 활기찬 감상이 기록되어 있었으나, 탐험대의 환희는 오래가지 못했다. 7월에 접어들며 백조 형상의 거대한 유빙들이 서로 맞물려 단단하고 통과 불가능한 해빙을 형성했고, 빽빽한 장벽에 가로막힌 원정대는 결국 서쪽으로 항로를 우회해야 했다.
이처럼 낯선 세계로의 진입은 선원들에게 외계 행성에 도달한 듯한 신비와 공포를 안겼으며, 이들이 작성한 초기의 지도와 도감에는 극지 동물이 온몸이 비늘로 덮이고 물갈퀴가 달린 기묘한 바다 괴물로 묘사되어 인간 중심적 편견과 인지적 한계를 날카롭게 대변한다.
바다코끼리와 프레이야: 16세기식 정복과 21세기식 안락사가 공유하는 가짜 공존
인류가 바다코끼리(Walrus)라는 종과 맺어온 파괴적 조우의 역사는 착취적 정복관과 세련되게 포장된 현대의 '관리주의적 배제'가 본질적으로 동일한 뿌리를 두고 있음을 폭로한다. 1594년 첫 원정 당시, 중국과의 북동항로 무역을 추진하던 네덜란드의 무역상 얀 하위헌 판 린스호텐(Jan Huygen van Linschoten)은 바다코끼리를 대단히 실용주의적인 시각에서 관찰했다. 그는 바다코끼리를 물범과 외형이 비슷하나 덩치가 프리슬란트의 말보다 거대하고, 입에는 러시아인들이 귀중하게 취급하는 두 개의 코끼리 상아가 뻗어 있으며 귀가 없는 고가의 무역품으로만 묘사했다.
이러한 상업적 가치 환산은 즉각적이고 잔혹한 유혈 사냥으로 이어졌다. 노바야제믈랴 제도 북단에서 약 200마리의 바다코끼리 무리와 조우한 탐험대는 사냥 과정에서 엄청난 체력적 한계를 겪었다. 대여섯 명의 선원들이 큰 바다코끼리 한 마리를 작살로 꿰뚫고 소형 선박에 줄을 연결해 끄는 사투는 무려 한 시간 반 동안 계속되었으나, 선원들에게는 극도의 긴장감 탓에 겨우 30분처럼 느껴졌다.
반격에 나선 바다코끼리가 날카로운 상아로 배 뒤쪽 갑판을 물어뜯으며 뒤집으려 하자 바다는 피로 물들었고 선원들은 공포에 떨어야 했다. 오라녜 제도에서 더 페이르는 동물의 옆통수를 무거운 둔기로 내리치는 것이 유일한 처치법이라 기록했으나, 도끼와 단검, 창을 휘두르던 원정대는 가죽의 견고함 탓에 단 한 마리도 살상하지 못한 채 단지 상아 하나만을 부러뜨려 가져오는 데 그쳤다. 바렌츠는 귀환 후 이 박제 전리품을 암스테르담의 연례 시장에 전시하며 제국주의적 성공의 지표로 선전했다.
이 역사적 사냥사는 2021년 여름, 네덜란드 테르스헬링섬(Terschelling) 해변에 나타난 바다코끼리 '프레이야(Freya)'의 현대적 비극과 정확하게 오버랩된다. 테르스헬링은 다름 아닌 빌럼 바렌츠의 고향으로, 여객선 선장 파울 브링크만(Paul Brinkman)이 단단한 피부와 빳빳한 수염을 지닌 이 암컷 개체가 물범이 아닌 바다코끼리임을 최초로 규명했다.
북유럽 여신의 이름을 부여받은 프레이야는 덴헬더(Den Helder)의 해군 기지에서 바다코끼리(발루스)급 잠수함 갑판 위로 정박하고, 노르웨이 오슬로 오페라하우스 지붕 위를 뒹굴며 선박을 전복시키는 천진난만한 장난으로 수많은 언론과 대중에게 웃음을 안기며 일시적인 환대를 누렸다 .
그러나 프레이야가 인간 도심의 경계를 넘나들고 선박 소유주들과의 마찰 및 잠재적인 안전 위험 요소로 부각되자, 노르웨이 어업당국은 "동물 복지도 존중하지만 인간의 생명과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명목하에 2022년 8월 14일 프레이야를 전격 안락사시켰다. 이 비정한 조치는 즉각 유럽 전역에 분노의 물결을 일으켰다.
노르웨이 의회의 녹색환경당이 공식 항의서를 제출했고, 1,258명의 민간 활동가들이 힘을 모아 20만 크로네의 모금액으로 오슬로 해변에 프레이야의 영구적인 동상을 건립했다. 프레이야의 사례는 인류가 내세우는 ‘인도주의적 공존’의 허구성을 적나라하게 증명한다. 16세기에는 야만적인 폭력과 총칼로 동물을 지배했다면, 21세기에는 공공의 질서와 안전 관리라는 고도로 정제된 제도적 폭력을 통해 문명의 영역을 침범하는 야생 개체를 손쉽게 배제하고 말살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