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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늘맞이
사토코님을 '넣어'둔다느니, 크게 '울렸다'느니, '거풍'에 들어간다느니, 온갖 작은따옴표('')로 장식된 낯선 용어들을 쓰면서도 불친절하게 아무 설명도 없이 이야기를 꾸려나가다니. 이런 불친절함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 독자들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저는 이런 불친절함을 썩 좋아하는 편입니다. 나가노 마모루의 <F.S.S.>와 권교정의 <매지션>을 좋아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에요. 첫 번째 독서는 난무하는 작은따옴표에 당황스럽기 짝이 없지만, 독서가 거듭되고 시리즈가 쌓이다 보면, 굳이 작가 설정집 같은 게 없더라도 맥락 속에서 상당 부분 꽤 정확한 뜻을 뽑아낼 수 있지요. 독서를 마치고 권말에 수록된 설정집을 통해 과연 내가 추론한 게 얼마나 옳은가 하나하나씩 맞춰보는 것도 꽤 쏠쏠한 놀이입니다. 틀리는 경우도 많지요. 그러나 아주 어쩌다 가끔은 독자 스스로 상상한 바가 훨씬 낭만적이고 재미있을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굳이 중학교 중간-기말고사를 치는 것처럼 째째하고 빡빡하게 굴 필요는 없다는 거죠. 정작 중요한 건, 작가와 독자 사이의 게임을 얼마나 신나게 즐길 수 있느냐는 겁니다. 물론 <빛의 제국> 하루타 일족이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민들레 공책>은 앞서 언급한 두 작품에 비해 쓰이는 용어가 압도적으로 적은 편이니, 사실 그렇게 머리 아플 일은 없어요.

일단 <빛의 제국>을 괜찮게 본 독자도, 또 이야기에 완결성이 너무 없다고 툴툴거리던 독자도 <민들레 공책>은 무난하게 즐길 수 있을 거예요. 도코노 일족의 조심스럽고 살가운 삶은 여전하고, 이번엔 이야기도 비교적 뚜렷하니까요. 다만, 염려되는 바가 아주 없는 건 아닙니다. 저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아무래도 시대적 배경이 메이지 유신 이후 정신없이 근대화 과정을 밟아가던 때인지라, 이 시대의 일본에 유난히 촉각을 곤두세우는 한국 독자들에겐, 그 방향성이 어찌되었든, 일말의 정치적 발언도 왠지 위험해 보이거든요. 그러니까 이건 그냥 결론이라도 말하는 게 편하겠지요. 그동안 온다 리쿠의 소설을 줄기차게 읽어오신 분들은 충분히 지레짐작하시겠지만, 원래 온다 리쿠는 이런 거창한 문제에 별 관심이 없었잖아요. 이번에도 근대화란 일련의 움직임은 <민들레 공책>에서 평화롭게 잘 살고 있던 마키무라 촌락 사람들의 삶을 위협하는 '시끄럽고 수상쩍은' 것 정도로, 왠지 시니컬한 시각으로 비춰질 뿐이에요. 우리는 그 결과까지 알고 있지요. 결국 본토에 핵폭탄 두 발 투하된 게 전부. 네, 정말이지 <민들레 공책>에서 언급되는 것처럼, 정치가들이 '좌우지간 큰 목소리로' '늘 호통만 치'며 강조해대는 건 '진절머리가 날' 뿐더러, 결국 누구 건강에도 좋지 않아요.

잡소리가 너무 길었나 모르겠지만, 요는, 그저 안심이란 거죠. 개인적으론 <빛의 제국> 연작 시리즈 중에서 하루타 일족 이야기를 워낙 좋아하는 편이었고요. 또 <빛의 제국>과 함께 책장에 꽂아두니, 참 예쁘더군요. 새삼스럽지만, 장정은 정말 괜찮게 해서 나와주는 것 같아요. 비싸진 책값은 살짝 차치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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