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쿤과 칼 포퍼의 철학적 대립을 단순한 학술 논쟁을 넘어 사회정치적 맥락에서 재해석한 도발적인 책이다.
1965년 런던 정경대에서 열린 두 학자의 토론은 대개 패러다임을 중시한 쿤의 판정승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풀러는 쿤이 과학의 개방성을 옹호하기는커녕 권위주의적이고 냉전기 기득권의 자율권을 지키는 데 급급했다고 평가한다.
반대로 포퍼는 과학의 비판 정신과 열린 사회를 지키려 한 '진정한 진보적 지식인'으로 묘사하며, 쿤의 '정상과학' 이론은 오히려 비판적 사고를 거세하는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
풀러는 포퍼를 이상화하고 쿤을 지나치게 폄하하는 경향이 있다. 쿤이 과학 공동체의 사회적 책임을 도외시했다는 비판은 타당할 수 있으나, 쿤의 저작을 냉전 시대의 산물로만 축소 해석한 것은 과학철학적 맥락을 무시하는 측면이 있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는 과학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가(서술적)"를 기술한 책이고, 포퍼의 철학은 과학이 "어떠해야 하는가(규범적)"를 다룬 성격이 짙다. 풀러는 이 둘을 동일한 선상에 놓고 비교하며 쿤의 이론에만 가혹한 규범적 잣대를 들이댄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책의 구성은 과학철학의 본질적인 문제(반증주의 vs 패러다임)를 설명하는 구조라기보다는 저자의 지적 편력과 다양한 역사적 일화를 넘나드는 백과사전식 나열에 가까워, 집중적인 학술적 논의의 흐름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많다.
요약하면, 이 책은 쿤의 학문적 권위에 가려져 있던 포퍼를 재조명했다는 참신함은 있으나, 학술적 객관성을 잃은 감정적 비판과 산만한 구성 때문에 비평서라기보다 선동적인 팸플릿에 가깝다는 평가가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