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주는 이야기
테일 2026/09/21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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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내주는 이야기
- 김민경(앨리슨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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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 - 2026-09-09
: 2,280
" 우리는 흔히 일를 모았다가 한꺼번에 끝내는 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을 뇌는 가급적 에너지를 아끼려는 본능이 있어서 '컵 하나 씻으려고 물 틀고 세제 묻히느니, 나중에 그릇이 많이 모였을 때 한 번에 씻는게 훨씬 효율적이야'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하지만 컵 하나를 바로 씻는 사람의 인생에는 '괴로운 대청소'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5초짜리 가벼운 정리만 반복하면서 쾌적한 마음만을 유지할 뿐이다. 99"
외출 후 바로 씻는 사람, 식사 후 바로 설거지를 하는 사람, 여행 다녀와서 바로 짐 정리하는 사람을 두고 3대 독한 사람 분류라는 말이 있다. 그 중 하나 바로 컵을 닦는 독한 사람이 되라고 말하는 책을 보고 불신의 눈을 거둘 수가 없었다. 안그래도 '1년을 3개월 단위로 나눠서 정리한다(29)'는 내용을 읽을 때도 일정표를 일요일부터 일주일 단위로 적었다는데에서 벽을 느꼈는데(주간계획은 월요일부터가 편하니까), 읽으면서 정말 나를 설득할 수 있겠느냐는 의심이 계속되었다. 픽사같은 곳에서 일하니까 가능한 것 아니야? 문화가 달라서 가능한 것 아니야? 딴지를 걸 마음이 가득했다. 쉬운 독자가 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 청킹의 작동 원리는 하나다. 끝이 보이는 단위로 문제를 쪼개면 뇌는 움직인다. 다만 누가 그 단위를 만드느냐가 차이일 뿐이다. 디즈니랜드에서는 전문 설계자가 방문객을 위해 대신 해줬지만, 우리의 일상에서는 청킹의 설계자가 바로 우리 자신이어야만 한다. 33"
처음엔 새해 결심이 3일만에 끝난다면 3일마다 새롭게 결심하세요!같은 조언처럼 신뢰가 덜 가고, 일상속에서 그리 효과적인 방법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끝/목표로 가는 과정을 쪼개놓는 것으로 청킹을 생각한다면 '5분만 더'도 청킹일까? 궁금해지면서 마음이 열렸다. 조금 더 넓게 적용한다면 아침에 알람을 맞춰놓고 5분만 더 자겠다며 일어나는 시간을 지연시키는 행위, 어둠의 청킹에 이미 익숙해있구나 깨달았다. 어쨌든 아침에 일어난다는 거대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일종의 보상을 조금씩 끌어다쓰는 셈이니까. 고도로 발달한 게으름은 정교한 청킹과 다름없는 법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그제야 공감이 되고 인정이 됐다.
책을 읽으면서 "완벽을 위해 애쓰지 말라. 113" 우리의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으니, 모든 일에 전부를 쏟아내려고 하기보다 중요한 일을 선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조언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실제로 '완벽'에 대한 생각을 바꿔 좀 더 나은 방식으로 달라진 것이 있는데, 책에서도 나온 외국어 학습(41)이다. 완벽한 문법을 사용해야지,하는 순간 공부는 끝난다. 발화도 문장도 사라지고 쏘리, 아이 캔트 스피크 잉글리쉬만 남는다. 그러나 그저 뜻을 전하기만 하겠다는 단순한 목표로 바꾸면 완벽하지 않은 문장이어도 괜찮고, 짧은 단어의 나열이어도 그게 불완전하지만 의미를 전달하는 말이 된다. 이 시도가 반복되면 가끔 운이 좋으면 별다른 문제가 없는 완전한 문장의 형태도 될 수 있다. '완벽한 문법에 얽매이지 않고 의미 전달이라는 간단한 목표에 집중하기'를 우연한 기회에 경험하게 되고, 오히려 가진 것에 비해 더 효과적인 소통을 할 수 있게 된 탓에 책의 내용을 더 신뢰하게 되었다.
이어서 아주 공감했던 내용이 게임에 대한 것이었다. 사실 오랫동안 게임을 하지 않았는데, 기록을 갱신해야 한다는 점, 타인과 경쟁해서 이겨야 한다는 점, 원하는만큼 좋은 실력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 압박이 되어 자연스럽게 안하게 되었다. 게임을 '잘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과제처럼, 일처럼 여겨지는게 싫었다. 경쟁과 기록에 연연하지 않고 혼자 뭔가를 키우거나 스도쿠처럼 풀어나가는 게임을 하게 되니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한번에 완벽하게 성공해야 한다는 신기루(116)를 쫓지않고 실패를 연습으로 털어내고 끝이라는 목표에 집중하니 게임을 조금 더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좋은 기록을 내고 높은 성적을 얻은 것은 아니지만, 어찌어찌 그래도 다음 판으로 넘어갈 수 있게 되었구나를 받아들이게 되었더니 여유가 생겼다.
이런 변화가 도움이 된 것은 의외의 분야였는데, 그동안 살을 빼겠다는 목표를 수없이 많이 세웠고 또 그 이상으로 실패했다. 때로는 별 생각없이 있었으나 결과적으로는 전보다 더 살이 쪄서 실패였다. 이번 도전(?)에서는 조금 방식을 바꿨는데 무엇을 먹을지, 얼마나 덜 먹을지, 얼마나 운동을 할지 목표치를 정해두기를 포기했다. 대신 오직 하나 게임하는 시간을 정하기로 했다. '무엇을(비전 54)' 위한 행동을 하는게 아니라 운동하는 동안 게임(즉각적인 보상 60)을 할 수 있도록 했더니 게임하는 동안 운동하는 시간이 금새 지나가 있었다. 그리고 비교적 꾸준히 운동이 이어지고 있다. 이 점도 새롭게 바꿔 도전해보고 있는 방식과 연관되어 있어 흥미롭게 읽었다.
이 밖에도 '유용한 피드백은 정교한 질문에서 시작된다. 166' 는 내용을 읽으면서 AI를 이용하기 위한 프롬프트를 어떻게 짜느냐에 따라 결과물이 다르게 나온다는 요즘 '일 잘하는 사람'들의 조언이 떠올랐다.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피드백을 해야 한다는 것,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단계별로 과정을 나눠 개선해나가며 완성해야 한다는 점 등이 비슷하게 느껴졌다. 당연하겠지만, 결국 사람도 AI 프로그램과 똑같이 스스로에게 어떤 명령값을 내리느냐에 따라 결과물이 다르게 나오겠구나 싶었다. 후반부로 가면 더욱 픽사에서의 경험담에 집중된 내용을 만나게 되는 점이 몰랐던 세계, 픽사에서는 어떻게 일을 하는가에 대한 궁금증을 채워주는 점은 좋았지만 보편의 경험으로 확장하기엔 조금 아쉬운 점도 있었다.
어떤 말을 해주고싶은지 전부 공감하지는 못해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큰 변화, 놀라운 전환을 얻어가지는 못했지만 책을 읽기 전에 혼자 생각하고 도전해보던 것들에 대해 조금 더 확신을 가지게 되기도 하고 공감과 지지를 얻은 느낌을 받은 점이 좋았다. 다른 독자들도 자신의 상황과 목표에 맞게 책에서 얻어낸 생각과 방식을 적용해보면 좋겠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진짜 컵 하나 씻으려고 물 틀고 세제 묻히는 건 좀 낭비같다. 아무래도 설거지는 모아뒀다가 식기세척기에게 시키는게 내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 더 낫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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