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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님의 서재
  • 심장 듣기
  • 유지영
  • 15,120원 (10%↓840)
  • 2026-08-10
  • : 870

 
" 눈을 맞추고,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때로는 속눈썹 개수를 셀 수 있을 정도로 상대에게 애정을 품는 일. 나에게 잘 듣는 일이란 구체적으로는 그런 것이다. 쓸모를 증명할 수 없으나 그 증명할 수 없음으로 인해 무가치해지지는 않는 일. 그것은 잠시나마 '나'를 넓혀가는 일이다. 내가 나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걸 아는 일이다. 116" 

'심장 듣기'를 앞에 두고 열심히 들었다. 당신이 누구인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나는 무엇을 들어야 하는지 좀처럼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그저 열심히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괜찮은 독자가 될 수 있을 것만 같기도 했다. 그가 자신의 내면에서, 또 이웃에서, 세상에서 들어온 이야기는 내밀하고, 익숙하고, 낯설고, 어려운 일들이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함께 듣는 동안 내게도 뭔가 채워지는 것들이 있는 기분이 들었다. 

임보 중이었던 밤이를 입양해 온 이야기는 언뜻 흔하디 흔한 이야기면서 매번 특별하게 여겨지는 구원 서사다. 12키로 까지 클 것으로 예상된다던 6킬로그램의 밤이가 21키로의 중형, 아마도 진도비빔일 강아지로 성장하게 되면서 보호자인 그가 겪는 산책길 시비 경험담은 너무나 예상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중대형견 보호자들은, 특히 진도의 핏줄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거기다 여성이라면 더욱더 수많은 시비와 싸움에 휘말린다. 
" 날 건드리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라는 아주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서 있을 때는 아무도 괜한 시비를 걸지 않았다. 반면 아침저녁마다 하는 산책을 그런 마음으로 할 수는 없었다. 169"
내 개는 안물지만 나는 뭅니다 싶은 전투력과 산책 상황을 영상으로 기록해놓을 수 있는 장비를 갖추고, 입마개와 중대형견 분류 조항 등을 눈만 마주쳐도 쏟아낼 수 있을 정도의 준비를 한 채 하루에도 몇 번씩 내 강아지의 행복한 산책을 위해 집을 나서는 보호자들이 많다. 산책 뿐이랴 애견동반시설 등에서도 중대형견 특히 진도의 핏줄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이용이 불가하다는 거절을 당하기도 한다.
이 남일같지 않은 분투에 웃기도 하고 공연히 혼자 더 화도 내다가, 입양한지 몇 년이 지났어도 강아지를 이해하는데 실패하고 언젠가 더이상 사랑하지 않게 되는 날이 올까봐 두렵다(40)고 고백하는 두려움에 깊이 공감하기도 했다. 반려동물을 버리는 것은 그들을 집으로 들였었던 사람들이라는 사실, 그 무거움을 견디지 못하고 버린 사람들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러니 부디 이해할 수 없는 그 간극마저도 오래도록 사랑하는 반려인이 되길. 

" 나는 2021년의 미얀마를, 2022년의 우크라이나를, 2023년의 팔레스타인을 떠올렸다. '그런 일은 일어나서는 안 된다'라는 건 대체 누가 결정하는 거야? 76" 

123의 밤을 듣는 일은 새삼스러웠다. 불행하게도 텔레비전을 보던 어느 평범한 밤에 갑자기 쏟아져나온 속보를 무방비하게 목격할 수 밖에 없던 충격과 무력함이 다시 찾아왔다. 미처 준비도 각오도 없이 현장으로 가야만 했던 저자의 생생한 그날밤을 들으며 이것 역시 상처로 남았구나 깨달았다. 그 밤을 지나왔으면서 어떻게 아직도 그 짓을 저지른 사람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을까.
왜 시간과 이익은 모든 잘못을 덮어버리는데 충실히 쓰일까. 비단 그 밤 뿐 아니라 아주 오래도록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81번째 광복절을 앞두고 터져나왔다. '세월이 자신들의 편'이었다던 매국 집안이 쌓아올린 부와 명성을 자랑하던 부조리 앞에 다시금 터져나온 분노가 길게 이어지는 요즘이다. 둘 사이에서 닮은 점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를 옹호하고 덮어두자고 말하는 사람들 역시 같은 이익을 바라고 있다. 
온갖 정당화와 거센 몰이 앞에서 때로는 무력하고 이대로 저들이 원하는대로 세상이 굳어질 것만 같은 두려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는 "주워야 할 말은 주워서 '기억'하기 위해(103)" 애쓰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린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하기 위해 "그저 잠시 귀를 기울이고, 몸을 기울이고, 그곳에 나의 몸을 존재하게(97)"함으로써 힘을 보탤 수 있다고 말한다. 그 안에서 나와 타인과 사회를 연결하기 위한 사랑을 느꼈다고. 

" 대체 그것들은 다 무엇이었을까? 나는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할 수 있는 사랑이라 생각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에, 심지어 자신에게 그다지 호의적이도 않았을 사회에 내놓을 수 있는 최대한의 사랑이라고. 79" 

이야기를 듣는 동안 저자와 겹쳐졌다가 다시 나로 떨어져나오기를 반복했다. 열심히 듣다보면 내가 말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은 소리들이 있었다. 저자 역시 말하거나 듣는 일을 오갔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심장을 듣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궁금했었는데, 의미를 파악하려 애쓰지 않아도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우리 사이에 공감하고 나눈 것이 분명히 있었다는 것, 당신이 확장되어 나와 연결되는 특별한 시간을 공유할 수 있었다는 것이 인상적인 듣기였다. 


* 152 백화점에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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