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날 지하철에서 한 여자를 보았다. 30대 초반쯤 됐을까.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있었는데, 화면을 보는 게 아니었다. 그냥 '들고' 있었다. 역에서 내려 걸으면서도, 계단을 오르면서도, 환승 통로를 지나면서도. 가방에 넣으려다 어느샌가 다시 꺼냈다. 뭔가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손에 있어야 한다는 듯이. 이상한 사람이 아니었다. 23"
시작하는 문장을 읽자마자 단어 하나하나가 나를 찔러왔다. 책을 읽는 순간에도 기억에 남을만한 문장을 따로 정리해두기 위해 스마트폰 화면을 옆에 켜두고 있었다. 사실 거의 모든 순간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있거나, 종종 화면을 켜서 의미없이 한번 둘러보거나, 스마트폰을 하고 있다. 이상한 사람은 아니지만 스마트폰을 손에서 떼지 않고 있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술과 담배, 약물, 도박 같은 심각한 것에 중독되지 않았다고 해서 방심한 채로 있을 수는 없었다. "이 책이 술과 약물만이 아니라 당신의 손 안에 있는 '그것'에 대한 이야기 전반을 다루(34)"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새삼스럽다. 꼽아보면 스마트폰, 커피, 당분, 탄수화물, 활자, 그리고 미처 스스로도 눈치채지 못한 사소한 습관 같은 것들도 중독으로 이름붙일 수 있는 것들이 더 있을 것이다. 커피를 마시는 것을 습관으로 슬쩍 옮겨보려해도 건강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 하루이틀 커피를 마시지 않았을 때 두통을 느끼거나, 피로감을 줄이기 위해서 더 많은 양의 카페인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 의존에 가깝게 보였다. 몰입과 중독은 다르다고 하지만 몰입이라고 믿고 있는 중독인 것은 아닌지 잘 구분짓기도 어렵다.
'왜 우리는 멈추지 못할까'는 내가, 우리가 중독되어 있는 모든 것들. 채워지지 않는 욕구를 대신 보상해주고, 감각을 마비시키며, 시간을 지탱해주는 모든 쾌락들, 술, 음식, 게임, 스마트폰, 일, 관계, 카페인 같은 이름의 대체품들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계를 다시 연결짓고 회복에 이르기까지 어떤 과정이 필요한지, "연결되고 싶다는 인간의 가장 간절하고 근본적인 욕구(49)"에서 비롯된 공백을 제대로 바라보고 채워나가는 길을 틔워준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 최근 어려운 일을 겪었을 때 터놓고 이야기할 곳이 없어 AI를 이용해 상담했다는 말을 했다. 이야기를 나눌 상대가 되어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아쉬운 마음과 함께 AI가 정말 좋은 대화 상대가 되어줄 수 있었을까 의문이 남기도 했다. 요즘은 단순히 정보를 얻거나 상담을 AI로 대체하는 것 뿐 아니라, '콜 포비아(전화 통화에 대한 불안 93)'를 AI가 대신 전화를 받아 누가 어떤 용건으로 전화했는지 확인하고 통화 여부를 결정하는 '통화 스크리닝'으로 확장되었다. 불예측성이 주는 불안을 기술이 해결하는 동안 사람은 어떻게 자신의 내면을 성장시킬 수 있을까.
5장에서 다루는 반복과 보상 회로에 대한 내용은 스스로 고민하고 있던 문제 행동이 그대로 나와 있어 공감하며 읽었다. 매일 밤 잠들기 전에 스마트폰으로 의미없는 검색을 하고,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충동구매하거나, 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고 시간을 보내는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 수면 지연 행동이 다음 날의 피로를 가중시켜 일상생활에 부담을 주는 요인이 되는 것까지 사례로 나온 지훈의 상황과 닮아있었다. 피곤했던 하루를 마감하기 전 조금만 놀고 싶다는 마음, 불편한 대면을 피하고 싶다는 회피 앞에서 저자는 "모든 것이 빠르고 편리해지는 세상일수록 우리는 일부러 불편함을 선택해야 한다. 89"고 말한다.
쉽고 빠르고 달콤한 보상에 배부르게 되면 몸도, 뇌도 그대로 굳어진다. 자극만을 좇느라 일상의 다른 관계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니 이와 반대로 느리고 불편할지라도 바른 자세를 유지하고, 카페인, 당분을 절제하고, 운동하고, 명상하는 지난한 시간들을 거쳐야 한다. 익숙하고 편리한 것에 매몰된 사고와 감각은 반복으로 깔린 고속도로를 내달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한다. 회복을 위한 절제와 노력은 타인과 연결될 수 있는 새롭고 건강한 길을 내준다.
책은 중독과 개인 뿐 아니라 가족 관계 안에서의 구조화 된 역할분담과 고통을 짚어나간다. 상담을 통해 당사자만 치료하면 해결될 것이라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가족 모두가 각자의 고통을 경험하고 있으며, 오랫동안 가족 구성원 안에서 고정된 역할을 반복하며 중독 상황을 유지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고 있음을 지적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사람이 회복하기 시작하면, 개인의 습관보다 관계의 균형이 가장 먼저 흔들(159)"리는 어려움을 겪게 된다고 한다.
우리가 무언가에 중독되고, 의존하게 되는 것과 회복에 이르기 위한 노력이 쉽게 실패하게 되는 이유는 자기 자신에게 지나치게 관대하기 때문이라는 공통점에서 시작된다는 생각을 했다. 불편함, 이전과는 다른 상태, 불안을 견디지 못해 쉬운 자극을 선택하고 '끊기'를 실패하게 되는 것을 참 많이 경험해왔음 역시 깨닫는다. "자신을 포기하는 사람은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고, 자신을 이해하는 사람은 새롭게 조정할 수 있다. 회복은 의지의 승리가 아니라 반복이 만든 재학습의 결과이다. 뇌는 배운다. 131"
이때 어떻게 흔들림을 극복해야 하는가를 오디세우스의 여정 중 세이렌의 노래를 견디겠다고 스스로를 배의 기둥에 묶는 부분을 예로 들어 설명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유혹 앞에서 자신이 약해질 순간을 예상하고 대비한 오디세우스의 자세가 "흔들리기 전에 누구에게 연락할 것인지, 무엇을 피할 것인지 무너질 때 누가 나를 붙들어줄 것인지 정해두는 회복의 구조(220)"를 보여준다. 과정에서 흔들릴 수 있으나 이에 어떻게 대비하고 이어나가는가를 회복의 중요한 바탕으로 강조한다.
책은 천천히 독자를 인도한다. 각 장의 첫 시작에는 앞선 장에서 읽은 내용에 대한 정리와 함께 새로 읽게 될 장에서 어떤 내용을 접하게 될 것인지 소개하며 시작한다. 생각이 많아져 주의가 흐트러지거나 잠시 시간을 두고 다시 책을 읽게 됐을때 이런 짧은 안내가 부담을 줄이고 계속 읽어나가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책을 읽으며 직접 해볼 수 있는 <성인 애착 유형 검사 111>, <가족 역할 자가 진단 190>, <회복 구조 자가 점검 250>등의 검사와 "실제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남긴 부록 256"으로 실용성도 챙겨 도움이 될만하다.
무엇에 의존하고 있었는지, 왜 그런 행동을 반복하는지 자신에 대해 살펴볼 수 있는 책이자, 중독을 함께 극복해나가기 위한 밑받침이 되어줄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