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한 마음에 이름 붙이기
테일 2026/08/12 22:12
테일님을
차단하시겠습니까?
차단하면 사용자의 모든 글을
볼 수 없습니다.
- 모호한 마음에 이름 붙이기
- 노은정
- 16,920원 (10%↓
940) - 2026-07-30
: 2,510
"원하는 대상에게 원하는 것을 채울 수 없을 때 나의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복잡하게 뒤엉킨 슬프고 아프고 이상한 것들이 있다. 6"
병원 로비에서 삼십분이 넘게 사소한 일로 부모님과 언쟁을 했던 날이다. 시간이 갈수록 부모님의 고집이 쎄지는 것 같고, 더 합리적이고 편리한 방법을 제시해도 쉽게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아 사소한 일을 가지고 다툼과 설득이라는 오랜 시간이 필요해진다. 불필요하게 짊어지고 있는 습관같은 것들, 쌓고 묵혀둔 오래된 물건들을 정리해야할 때라고 말하는데도 익숙하다는 이유로 거부하는 통에 대화를 하다하다 결국은 서로 왜 이해를 하지 못하냐며 마음이 상했다. 답답함이 나를 화나게 만든다고 생각했는데, 답답하다와 화난다로 일축하기엔 돌아서 남은 감정이 슬펐다. 그때, 집어든 '모호한 마음에 이름 붙이기'에서 만난 문장이 바로 이것이었다. "복잡하게 뒤엉킨 슬프고 아프고 이상한 것들" 일렁이는 마음을 다독이며 읽어보았다.
"살면서 처음 경험하는 양가감정은 대부분 부모와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88"고 한다. 과연,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이 바로 부모님과 있었던 일이었다. 분명 걱정과 애정으로 시작한 대화가 짜증과 다툼으로 번져가는 동안 "사랑과 미움, 기대와 실망, 고마움과 짜증 같은 상반된 감정이 동시에 86" 느껴져 의도대로 되지 않음에, 오히려 압박을 주고받는 상황을 만들었음에 후회가 되고 더는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아지기도 했다. 이런 마음을 잘 다룰 수 있어야 더욱 성숙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하는데, 그 순간에 단순하게 솟아오르는 감정을 누르고 자신의 마음이 어떤 갈래를 가지고 있는지 들여다보고 정리하기는 정말 쉽지 않다.
솔직하자면 어떤 부정적인 상황에 대한 글을 읽을 때마다 공통적으로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자기 얘기만 늘어놓는 사람, 과장이 섞인 듯한 우연한 행운의 연속, 다른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자신에 대해 말하면서 아무것도 한게 없는데 좋아해줘서 감사하다는 겸손이 어쩐지 어색하게 느껴지던 사람이었다. 그는 학교 다닐 때도 시험만 보고나면 전날 피곤해서 공부를 하나도 못하고 일찍 잠들어버렸는데 운이 좋게 찍은 문제가 다 맞아서 점수가 잘 나왔다며 시험지를 가져와 펼치곤했다.
평소에는 늦게 자면서 왜 시험때만 되면 10시도 안돼서 자버리는지, 어떻게 찍은 문제가 다 정답이었는지, 매번 공부 하나도 못했다고 말하는 친구를 보며 거짓말과 가식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었다. 그 행동에 'EP문화(14)'라는 이름이 붙어있는 줄은 몰랐다. 그와의 관계는 결국 끊기고 말았지만 혹시 알았더라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그 마음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그에게는 이해보다는 자신의 얘기를 들어주며 좋은 말을 해줄 관심과 감탄만이 필요했던 것(자기애적 공급 160)일지라도. 혹시 내가 그에게 매번 긁혔고, 그래서 그를 긁으려 들었던 것(상호주관성 72)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드니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모호한 마음에 이름 붙이기'를 읽는 동안 마음에 걸렸던 상황이나 사람과의 관계를 떠올리고 그때 어떤 마음이었나, 지금 어떤 생각이 드는가 살피는 동안 이상하게 불편하다고 생각했던 외부의 문제보다 그것을 담고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해 좀 더 불만스러워졌다. 그렇게 마음이 좁았나? 그렇게 생각이 미성숙했나? 그렇게 대처가 부족했나? 그렇게 담아두고 잊어버리지 않고 있었나? 자기 자신을 향해 "그 과거(트라우마 내러티브 214), 이제 좀 그만하면 안 되겠니?(215)" 물어보고 싶어진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나 이렇게 자신을 몰아세워 책임을 돌리는 것(도덕적 방어 264)으로 회피하려는 것은 아닐까 점검해보게 된다.
" 도덕적 방어에 익숙한 사람일수록, 관계를 위해 내면의 전쟁을 감내한다. 다음은 도덕적 방어에 익숙한 사람들의 특징인 자기검열과 비난, 감정 억제의 모습이다. 270"
스스로를 점검하는 태도,가 젊은 여성들에게 주로 나타나는 과잉된 배려와 친절, 갈등 상황을 피하려는 사회성의 특징이라고 생각했는데, 책에서도 '착한 딸/이해심 많은 아내/헌신적인 엄마(271)'등 여성의 경우를 예로 들고 있어 정말 그런 경향을 띄고 있는지, 그래서 나 역시 자기검열과 도덕적 방어에 익숙한 것인지 궁금해졌다. 사소한 문제가 있을 때도 사과를 쉽게 하고, 타인의 사과를 받을 때도 마음이나 상황과는 달리 괜찮다고 하거나, 도리어 같이 사과를 하기도 했던 것 같다. 여성 독자에게 특히 더 이런 면모가 있는지, 그렇다면 반대로 남성에게 주로 나타난다는 권위와 전문성에 상관없이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거나 질문하는 태도가 이와 반대 지점에 있는지도 함께 궁금해졌다.
기대 이상으로 자기 자신에 대해 면밀히 따져보며 읽게되는 책이었다. 어떤 것들은 소제목과 내용이 예상했던 것과 다르기도 했지만, 흥미로운 내용이 많았다. 특히 가장 많은 항목을 꼽았던 것은 "일상에서 만나는 반동 형성의 패턴들 242"이었다. 자신이 부끄럽게 여기고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들, 문제라고 의식하지 못한 채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도 사실 불안과 갈등, 스트레스 앞에서 마음과 반대되는 행동을 함으로써 방어하려고 했던 시도라 생각하니 잔뜩 휘저어 탁했던 속내를 가라앉혀 한결 투명하게 살펴본 기분이 들었다. 그리하여 드러난 것들이 다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자기 자신에 대해 어떤 사람일까, 어떤 기분이고, 어떤 생각을 할까, 뭘 좋아하고 싫어할까 같은 질문을 가지고 있는 독자에게 추천한다.
PC버전에서 작성한 글은 PC에서만 수정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