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비인
테일 2026/06/29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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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비인
- 성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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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 - 2026-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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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기대가 높은 작가의 신간이라 책을 앞두고 야무지게 읽어야지,하는 각오 비슷한 것이 생겨났다. <혼모노>를 읽었을 때 마치 장면이 보이는 듯 해 영상으로 만들어지기 좋은 이야기라는 감상이 먼저 찾아왔었는데, 기담집인 '인비인'에 작가의 그런 장점이 잘 녹아있다면 얼마나 무섭고도 재미있을까 싶었다. '사람의 마음'은, 그래서 참 보는 입장마저 민망하게 하던 속내는 <혼모노>에서 더 진하게 느껴졌다면 '인비인'은 읽고나면 소금으로 입을 헹구고 삼베주머니에 팥과 결명자를 넣어 따뜻하게 데워 눈을 씻어내고픈 생각이 드는 불온함이 컸다. 단순히 기담을 만들어내기 위해 기괴하거나 섬뜩한 소재를 끌어온 것이 아니라 '인비인', 인간 아닌 인간으로 기술의 산물, 영적인 존재 그리고 사람일 수도 있는 시대와 현실을 담아내려 장기간 고심한 흔적이 엿보이는 점이 좋았다. 그래서 오독의 소지를 다소 줄일 수 있을지 몰라도, 독자의 몫으로 확장될 감상의 여지를 닫을 수 있는 작가의 말이 매 단편 뒤에 이어지는 것도 그 의도를 충실히 전달하고자 하는 의지로 보였다. 다만 그것이 답으로 받아들여질지 질문으로 받아들여질지는 모르겠지만.
책을 읽다 뭔가 걸리는 듯해 보니 중간을 조금 넘긴 부분에 엽서 하나가 끼워져 있었다. 뭘까,하고 들여다보니 한면은 사람 형상인데 사람은 아닌 덩어리(34)들이 나뭇가지에 얽힌 그림이었다. 주변엔 온통 벌레 같은 것이 작게 그려져 있는데 요즘 슬슬 러브버그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탓에 엽서에도 그게 반영되었나 싶게 러브버그 떼로 보였다. 엽서의 뒷면에는 '사랑하는 독자님께'로 시작하는 짧은 인사말이 적혀있었는데, 그 중 작가가 어느 독자에게서 전해들었다는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의 말은 메가박스 상영관 통로에 종종 붙어있는 문구였다. 워낙 인상적이기도 하고 영화를 보고 나오는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역시 그 문장을 사진으로 찍어둔 적도 있어 익숙했다. 그 문장을 전해들었다는 말에 '인비인' 단편들 안의 주요 인물 직업을 영화 감독으로 두곤 했는데 영화관을 자주 찾지는 않으신가 싶었다. 어쩌면 씨지비나 롯데시네마를 주로 이용할지도 모르고. 넷플릭스 보는 대신 <혼모노> 읽으면 된다는 말로 큰 반향이 있었으나 정작 본인은 확고한 넷플릭스 이용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요즘 자금사정이 좋지 않아 위기에 처한 메가박스중앙의 상황이 궁금해지는 책이 '인비인'이다.
" 나는 그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결연했고, 어딘지 모르게 닮아 있었다. 그게 부끄러웠다. 그들의 비슷한 외양이, 깨끗한 두루마기와 수치를 모르는 태도가 견딜 수 없었다. 79"
처음 시작엔 조급하게 왜색이 짙은가,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읽을수록 큰 오해였고 문제 의식을 강하게 가지고 있는 작가구나 싶었다. 특히 요즘 사회 전반으로 수치를 모르는 군상들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는 듯해 심란하던 차에 이렇게 대놓고 '예민하고 어렵겠지만 이 문제를 다루고 싶었다'고 말하는 면이 좋았다. 너무 내면으로 골몰해 들어가지 않고, 말초적인 관심만 자극하지 않으면서 세상과 교류하고 있다는 균형이 보인다. 장면이 그대로 펼쳐지는 듯한 특유의 감각과 이런 소재, 이런 주제로 틈틈이 써왔다는 기담집을 흡족하게 읽고 나니 그가 우리에게 찾아온 새로운 이야기꾼이 아닐까 싶어졌다. 예전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김영하 1999>를 읽고 난 뒤에 느꼈던 강렬한 감각이 되살아나는 듯 했다.
" 감독님, 감독님은 소속이 어디예요? 어리둥절해진다. 소속. 내게 소속이 있던가. 한참 고민하는데 큐가 말을 잇는다. 모르겠죠? 근데 사람들은 매번 물어보잖아요. 소속이 어디냐? 학교는 어디 나왔냐? 직장은 다니냐? 소속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근데 속해보니까 그래요. 찐따들이어도요, 모이면 단단해져요. 그리고 되게 웃긴 게 그 안에 있으면요. 나도 조금 쓸모 있어지는 것 같아요. 186 윤회 (당한) 자들"
이 단편을 쓸 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쓸모를 느끼기 위해 서울의 한 지점으로 모여드는 일이 생길 것이란 걸 알았을까. 수치(79)를 모르는 사람들이 자신이 어딘가에 속해있고, 그 소속이 그들의 무지성에 가까운 비논리를 단단하게 만들고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조롱과 혐오마저 오락거리로 소비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는 걸. 하다못해 학생들마저 상대방을 조롱하기 위해 혐오 표현을 공식적인 자리에서 거리낌없이 사용하던 날에, 저들 스스로가 주변의 어른들마저 아무도 이를 지적하거나 계도하지 않은 채 함께 단단해져 갔다는 현실이 참담하고 차가웠다. '인비인'이 달리 있는 것이 아니지, 모여 있을 곳을, 제 쓸모를 그런데서 증명하는 행위를 이대로 방치하는 것은 또다시 어제를 모욕하고 오늘은 기만하며 내일은 훼손하는 게 아닐까.
의도와 다르게 감상이 뻗어나갔을지 모르지만, 그가 내놓은 문장 안에 현실을 꿰는 시각이 담겨 있어 가능했던 감상일테다. 기담집을 몰입해서 흥미롭게 읽은 것도 있지만 현실도 괴담 같아서 자꾸만 서로 얽혀갔던 것 같다. 또 보고싶겠지, 다음이 기다려지겠지 싶은 작가의 매력과 재미가 넘치는 신간 '인비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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