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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님의 서재
  • 거절불안
  • 박한선
  • 19,800원 (10%1,100)
  • 2026-06-17
  • : 1,630


 " 단지 의학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이 얼마나 부끄럽고, 서툴고, 어설픈 존재인지, 그러면서도 그걸 얼마나 열심히 포장하며 살아가는지에 관한 안타까운 이야기이다. 61" 

최근 다른 나라들에 비해 특히 한국사회에서 연인 사이에 높은 빈도의 연락을 유지한다는 특징을 꼬집는 말이 나오는 것을 보게 되었다. 연인 간 하루에 몇 번이나 연락을 하는지 간단한 질문으로 시작된 그 문제제기는 처음엔 결과에 놀라게 되고, 다음엔 문화 차이라며 부정하게 되고, 마지막엔 건강한 관계란 어떤 것일까 생각하게 만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인사를 건네고, 점심에 뭘 먹었는지 이야기하고, 퇴근 무렵 사소한 일상을 나누다 잠들기 전 잘자라는 말을 하는 것이 일상적이라 여겨졌었는데, 누군가를 아끼고 애정을 쏟고 관심을 계속 가지고 있음을 표현하는 방식이 연락빈도로, 상대방이 일상을 공유하고 답을 해오는 것에 예민한 통제형으로 나타나는 것일 수 있음을 알게되자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마침 김영사의 신간 '거절불안'에서 [읽씹이 내 존재에 대한 거부로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란 질문을 통해 읽씹과 관계집착 같은 핵심어가 눈에 들어와 어떻게 하면 건강한 관계를 쌓아갈 수 있을까 고민했던 것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되었다. 더불어 거절에 상처받는 마음을 들여다보고 제안과 나 자신을 분리하기, 다른 사람의 제안을 거절할 때 겪게되는 부담과 회피를 마주하여 거절이 관계 끊기가 되지 않도록 마음을 다지고 생각을 환기하는 계기로 삼아보고 싶었다. 

인류학과 교수이자 정신과 전문의인 저자는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진화의 관점에서 탐구하는 '진화인류학자'라고 한다. 생소한 분야여서 진화인류학이란 것이 뭘까 생각해보다보니 인류가 경험과 시간을 통해 진화해 온 결과물이 인간의 현재인지, 추구하던 방향에 이르기 위해 진화해 온 과정이 현재인지 궁금해졌다. 마음과 행동 양식을 전에 생각해보지 못했던 방식으로 이해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아 기대되었다. 다행히 '거절불안'은 재밌다. 책머리에 앞서 "전문가들이 보기에 아쉬운 부분이 있을 것(6)"임을 밝혀두는데 반박과 지적 불안에 대한 방어 심리가 나타난 것은 아니신지 생각하고는 웃었다. 사실 잘 모르는 일반 독자 입장에서 봤을때 "복잡한 이론을 쉽게 전달하기 위해 유머와 비유, 단순화를 적극 사용"한 '거절불안'은 때로는 조금 깊이 들어가나 싶기도 하지만 대체로 웃으면서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저자는 교수인데 강의도 이렇게 재미있게 할까 궁금해질만큼 낄낄 웃으며 읽다보니 어느새 책이 후루룩 넘어가 있다. 보통 이렇게 심리를 다루는 책을 읽을 때 종종 내가 이런 유형 아닐까? 의심하고, 맞아! 몇 년 전에 이런 일이 있었는데 내 마음은 이랬구나! 마음 읽기를 하는 등 과몰입에 바빠지는데 그럴 틈이 없이 살짝살짝 치고 들어오는 농담이 웃겼다. 생각하기로는 강의도 이렇게 하신다면 졸거나 딴짓하는 학생이 없을 것 같지만 사실 그건 불가능한 일이겠지. 몸 담고 계신 학교에 들어갔다면 열심히 수업을 들었을텐데 받아주지 않아서 못갔으니 아쉽다. 

어쨌든 과몰입을 할 틈이 없다고 하긴 했지만 '나'에 대해서 집중하는 것이 또 인간의 특성이라 체크리스트 만들 듯이 회피형 기질이 없다곤 말 못해, 분리불안이라고 하는게 연락빈도수와 겹치는 게 아닐까? 그래도 난 저정도는 아닌데, 하고 진단내리기 당연히 해봤다. 변명하자면 연락 집착에 대해 궁금했던 것이 "성인 분리불안장애(102)"와 연결되는 면이 있어서 더 유심히 보고 생각하게 되었다. 처음 예상했던 상대방의 일상을 다 파악하겠다는 의도가 담긴 것과는 조금 다르지만, 이런 경우도 있겠구나 싶었다. 
다른 하나 '거절하기'에 대한 어려움이 이 책을 마주하게 만든 이유 중 하나였는데, 체면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의외였다. " 체면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순간은 거절할 때다. 한국인들은 거절을 못 한다고 하지만, 이는 착각이다. 우리는 거절의 예술가다. 소리 내어 말하지 않을 뿐이다. 누군가를 모임에 초대하지 않는 것으로 거절하고, 메시지를 읽고도 답하지 않는 것으로 선을 긋는다. 145" 이 은근한 표현이 통하지 않을 때, 상대방이 기어코 확실한 거절의 말을 들어야만 물러설 것 같을 때 이 거절은 당신을 공격하거나 차단하려는 것이 아니란 신호를 보내기 위해 "거절은 하되 관계는 유지하는 고난도 정서적 줄타기(190)" 위에서 얼마나 노력해야 했는지, 한국인은 그냥 거절이 아니라 소리 내어 해야 하는 거절을 못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었을테다. 

" 거절불안은 현대 사회의 특이한 현상이나 최근에 발견된 일시적 문제가 아니다. 인간적 본성의 일부다. 인류는 수백만년 동안 남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받아들여지길 원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거절당할까 봐 항상 두려워하기도 했다. 덕수궁 돌담 앞에서도, 유리 건물 회의실에서도, 새벽 두 시 이불 속에서 단톡방을 확인할 때도, 장소와 시대는 바뀌었지만 떨리는 심장은 같다. 209"
다수와 함께 있는 상황에서 나만이 소외되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 무시로 인한 민망함과 뭔가 실수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지나고나면 공격 당해 상처 입었다는 분노와 고통이 남는다. 이 경험이 두고두고 우리를 거절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게 하는데, 책 초반에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뇌는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실험한 극악무도한 과학자 부부의 사이버볼 게임(13)이 나온다. 소외를 경험할 때 우리 뇌의 ACC(전측 대상피질) 신체적 고통에 반응하는 부분에서 이 사회적 고통을 동일하게 처리하는 현상을 확인했다고 한다. 그런데 같은 상황에서 타이레놀(진통제)을 먹은 사람들이 훨씬 유하게 반응(240)하는 결과가 나왔다고 하니, 정신적 고통, 소외감, 외로움, 무력감이 갑자기 밀려올 때 인터넷에 괴롭습니다 쓰지말고, 갑자기 누구 나랑 만날 사람 구하지말고, 먼저 진통제 하나 먹어보는 것은 어떨까 싶어졌다. 

" 그러나 여기에 놀라운 역설이 숨어 있기도 하다. 거절불안은 상처이면서 동시에 우리를 더 깊은 인간으로 만드는 통로다. 거절의 쓰라림을 아는 사람만이 타인의 외로움을 알아본다. 배제의 아픔을 겪은 사람만이 주변부에 선 이들의 침묵을 들을 수 있다. 인정받지 못한 갈증을 품어본 사람만이 무조건적 사랑이 얼마나 급진적인지 깨닫는다. 만약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완벽하게 받아들여졌다면, 수용이라는 단어조차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373"
인류가 오래도록 새겨온 이 생존 본능이 여러 요인들로 인해 심각해지고 지나친 몰입으로 증상화되는 부작용도 있지만, 저자는 완치해야할 대상으로 보지 않고 함께 가야하는 명암으로 보았다. 내 불안, 내 고통을 해결해주고 저 사람은 왜 저럴까 해답을 주길 원했다면 이 평화로운 대답에 실망이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 찾았어요! 해결법 찾았어요!'하고 소리치는 영상에 <거절불안 극복하는 5가지 방법> 제목을 붙여 그럴싸한 몇가지 방법을 내놓는 것보다 더 솔직했다고 느껴졌다. 무엇보다 웃으면서 읽는 과정에서 얻은 재미가 그럴수도 있는거구나,하는 받아들임의 범위를 넓혀준 것이 좋았다. 우리가 겪는 사소하고도 질긴 불안 앞에서 섣불리 이 책을 거절하지 말고 읽어보길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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