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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님의 서재
  • 나를 균열내기
  • 신유진
  • 15,300원 (10%850)
  • 2026-06-15
  • : 11,560

 
" 당장 떠날 수 없는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숨 쉬는 것뿐이다. 숨을 내뱉는다. 지금 내가 뱉어내야 하는 것은 숨만이 아니다. 그 숨을 꼭 쥐고 있으려 하는 '나'라는 자아, 그것을 함께 비워야 한다. 내 안에서 내가 천천히 빠져나갈 때까지.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텅 빈 나는 폐허가 아니다. 모든 것을 다시 받아들일 수 있는 '투명한 방'이다. 51" 

이상한 책이다. 평소에 생각이 많은 편이라고 스스로를 규정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따져보니 진짜 생각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동안 해왔던 생각들은 지금 이렇게 가벼운 것들, 그날 밥은 무엇을 먹을지, 미리 준비해두어야 할 것은 없는지, 어디를 가고 싶다거나, 누가 보고 싶다거나 하는 일상적인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가끔은 저 사람은 왜 저럴까, 나는 왜 이런 행동을 했을까, 조금 먼 미래에는 이런 점을 고치고 더 먼 미래에는 어떤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그것도 깊지는 않다. 그런데 '나를 균열내기' 속의 생각은 다르다. 저자는 이런 생각들을 평소에도 하면서 살고 있을까, 궁금해질 정도로 달랐다. 그동안 내가 복잡하게 머리를 굴리던 것들은 대부분 잡생각이고, 뭔가를 생각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사고의 흐름에 붙여야 했구나 싶었다. 왜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까, 마치 내일 점심은 뭘 먹을까 같은 생각은 좀처럼 해본 적도 없을 것처럼 멋있게. 

'나를 균열내기' 안에서 어떤 사람과는 부엌에서 마주하고 마르그리트 뒤라스, 누군가와는 옷장을 뒤져 방 안을 난장판으로 만들기도 하고 프랑수와즈 사강, 함께 외국어를 배우기도 아고타 크리스토프, 집도 나가고 아니 에르노와 에두아르 루이, 같이 늙어가는 처지도 되고 다니엘 페나크, 지금도 좀 더 책의 매력을 잘 살리는 '전략'적 글쓰기를 염두에 두게 되기도 밀란 쿤데라, 연극을 관람하고 장 뤽 라가르스, 사강과 함께 어질렀던 집 안을 둘러보며 정리하기도 하고 조르주 페렉, 내가 왜 그녀 대신 그라고 쓰기를 하고 있는지 설명해주기도 하고 엘렌 식수, 얼마 전 읽었던 바바라 몰리나르의 <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를 다시 찾아보게 만들기도 했다. 왜 이렇게 늘어놓냐면, 이 중에 당신의 마음을 흔들 주제나 이름이 분명 튀어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나는 이 만남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왜 사강을 사랑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한번은 모어를 두번은 적어(외국어 64)를, 말을 가르치는 곳에서 일을 했던 경험 탓인지 아고타 크리스토프를 통해 들여다 본 언어가 인상적이었다. 당연한 수순처럼 모어는 미성년을 대상으로 했고, 적어 분야는 성인이 대상이었다. 재밌게도 미성년들은 모르는 모어의 단어를 적어를 이용해 물어보는 일이 잦았는데, 물론 모어를 통해 문학적 감각을 배우는 곳이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실제로 그네들에게 있어 내가 규정하는 모어와 적어의 경계나 구분이 매우 흐릿해져 있었다. 프랑스어를 배운지 20년이 넘은 저자가 그럼에도 적어가 자연스럽지 않고, 그 기간만큼 모어의 울타리가 무너지고 있음을 고백할 때(65) 그 아이들을 떠올렸다. 모어와 적어를 그들이 기억하는 가장 어린 시절부터 동시에 쌓아가던 잘 교육받은 아이들은 어느 한 곳에 속한다는 감각을 느낄까? 그 안에 세계가 공존하고 있다면 그것은 상처없이 확신된 존재의 증거가 될까? 

잘 돌보아지는/교육받은/만들어지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떠올리다보니 '돌봄'과 내 안의 불씨에 대해 화두를 던졌던 레일라 슬리마니(123)의 질문들을 다시 보게 되었다. [내 안의 불씨를 확인하기 위한 체크리스트 132]의 질문들을 들여다보면 생각에도 말문이 막히는 순간들이 온다. 내가 외면한 것들, 미적지근한 삶의 온도는 타인 뿐 아니라 자신의 삶에 대해서도 '이만하면 됐다'는 태업을 미필적 고의로 행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고개를 돌렸던 자리에는 양심이 죄책감과 뒤엉켜 부채를 쌓아두고 있었다. 더불어 언제나 어려운 이해보다 쉬운 비난이 가깝도록, 사건의 한 면만을 보는 일에 익숙해진 시선을 그대로 놔두지 않는다는 점이 불편하게 다가오는만큼 매혹적으로 느껴져 <달콤한 노래>에 대한 궁금함이 커졌다. 

<달콤한 노래> 안의 루이즈가 품은 두려움은 자신이 속한 곳에서 "일원이 아니라 언제든 같아 끼울 수 있는 부품에 불과하다는 사실(125)"이다. 마치 무대 위에 오른 배우가 "마지막 대사를 내뱉고 나면, 온 마음을 다해 연기한 인물이, 그의 세상이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리는 것이 두려워 도망치고 싶(136)"어지는 것처럼, 루이즈도 자신이 이 가정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이 교체/삭제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극단적으로 방어한다. 이은경의 <어른이 되는 법>에 "어른다운 관계 형성은 상대방이 너무 멀어지면 버림받을까 봐 두렵고 상대방이 너무 가까워지면 빠져들까 봐 두려운 마음이 들어도 거기에 휘둘리지 않고 관계에 헌신하는 능력에 달려있다. 언뜻 보기에는 이런 두려움이 상대방의 행동에서 비롯된 것 같지만 사실 이런 두려움은 망상이다. 우리에게 상처를 준 것은 이미 사라졌는데도 여전히 우리를 자극한다." 는 내용이 있다. 루이즈가 품은 두려움 중에는 극복되지 못한 상처도 섞여있었으리라. 

" 막을 쓰고, 나를 접어두는 이유는 두렵기 때문이다. 타인의 시선, 나에 대한 평가, 물론 그런 것들도 두렵지만 내가 진짜 두려운 건 나 자신인지도 모른다. 내가 정말 어떤 사람인지, 얼마큼 울퉁불퉁하고 모난 사람인지 스스로도 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오직 모르는 것만을 두려워한다. 6" 

저자에게 있어 생각은 스스로를 균열내는 자극의 과정이었다. 이 균열은 낡은 의식을 벗어내 새 의식의 몸으로 다시 성장하는 탈피와 같다. 타인의 내면에서 퍼올린 조각들이 단단히 다져진 것을 보고 자신을 돌이켜보니 그동안 성숙된 사고를 위해 내면을 닦기는 커녕 몸의 살을 찌우려는 생각 밖에 하지 않았던 셈이라 무엇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에서 부터 시작해보기로 했다. 그 길을 좇다보니 거기엔 먼저 자신이 있었다. 나를 알기 위해 어떻게 해야할지 익숙하지 못해 어색한 시작에 따라해보기라도 하고 싶어서 저자는 그동안 스스로와 어떤 식으로 마주했을까 궁금해졌었는데,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을 만나는 과정이 자신을 마주하기 위한 것과 다르지 않았겠구나 싶었다. 깊게 생각하는 것이란 무엇인지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 따라해보고 싶은 나를 균열내는, 균열내보자는 신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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