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테일님의 서재
  • 탐욕스러운 돌봄
  • 신성아
  • 16,200원 (10%900)
  • 2026-03-01
  • : 5,850

 " 하지만 '이 세상에 부모 마음 다 같은 마음'이라 해도 모든 부모는 부모이기 전에 시민이고 개인이다. 자식 또한 부모의 분신이 아니라 고유한 타인이다. 우리는 아이와 좋은 이별을 맞기 위해 사랑한다. 사랑을 줄 수 있지만 생각을 심을 수는 없다. 부모이기 전에 각자의 '나'들이 먼저 자신을 들여다보고, 타인을 돌보는 그 마음을 돌이키기를 제안하고 싶었다. 7"

 책을 읽기 전에 자극적인 기사들을 보고 가지고 있던 요즘 아이와, 부모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다. 혹시 모를 사고나 다툼으로 항의가 들어오는 일이 많아 더이상 소풍같은 야외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 운동회 때 생기는 소음 때문에 민원이 들어온다는 것, 틀렸다 졌다는 것에 자존감에 영향을 주고 아이들이 상처를 받기 때문에 시험을 없애고 등수를 지우고 잘한 것도 따로 불러 칭찬해준다는 것 등 고리타분 하지만 전과는 다른, 요즘의 교육 현장에 대한 낯섦과 의문이 있었다. 가정에서의 돌봄과 교육은 점차 방만해지고, 상처와 실패 하나 없(어야 할)는 무균 상태의 환경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자존심에 사사로운 상처가 나면 그 벽 앞에서 스스로를 포기해버리거나 타인과 외부를 향해 과도한 분노를 표출한다. 세상이 이렇게 변화하기까지 우리가 무엇을 놓쳤고 무엇을 오독하였는가 '탐욕스러운 돌봄'을 통해 알아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읽었다.  

 '탐욕스러운 돌봄'에서 만나게 된 돌봄의 범위는 예상보다 넓었다. 단순히 양육의 관점에서 봤던 것이 오히려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로 우리 사회 전반적인 돌봄을 마주하고 있었다. 특히 2부에서는 이주노동자, 의료돌봄, 다문화, 난민, 장애인, 성소수자, 재해 생존자, 노동자 등 사회의 틀 안에서 연대와 도움이 필요한 모든 이들에 대한 돌아봄과 돌봄을 함께 이야기 하고 있다. 더 나아가 서울과 비서울이라는 우리나라의 중앙집권현상에 대해서도 꼬집는다. 우리가 바꾸고자 하는 세상이 이렇게도 작고 넓고 내밀하면서도 전체적인 모든 것이었다니, 아이양육에서 개인, 집단, 사회, 환경 까지 모든 곳에서 일어나는 탐욕의 부작용을 말하고 있는 그 확장이 달가우면서 탐욕스럽게도 느껴졌다.

 책의 곳곳에서 저자는 자신도 역시 아이를 남 부럽지 않게 잘 키우려 애쓰는 보통의 양육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입시 컨설턴트에게 조언을 구해 학습 로드맵을 얻기도 하고, 맘카페를 통해 학습 정보를 얻으려 등급올리기에 노력한다. 직접 학원이나 센터에 아이를 '라이딩'해주고, 다른 양육자들의 입성을 통해 수준을 가늠하고, 다른애의 성취를 은근히 살피며 위치를 짐작한다. 아이가 아직 글을 모를 때(44)는 문구를 바꿔 알려주어 자연스럽게 관심을 돌리도록 어르기도 한다. 이 평범함에 마음을 붙이고 이해를 도모하다가도, 평범을 의심하기도 하며 천천히 책을 읽었다. 그 의심이 저자와의 거리감을 만들었는데, '평범'으로 인식할만큼 비슷하면서도 어느 순간의 다름이 큰 간극을 만들기도 해 읽는 동안 좋은 자극이 되었다. 특히 "불행히도 한국의 아이들에게는 박물관으로 소풍 갈 권리가 없다(133)"는 박물관과 아이에 대한 일화에서는 저자가 과잉된 반응을 하는지, 스스로가 차별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 여러번 되새겨보게 되었다.  

 " 사유가 필요하다. 어른이 먼저 사유하고, 아이들에게도 사유하는 법을 알려주어야 한다. 과거를 돌아보고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하며 다음 세대의 삶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소통할 때, 갈등을 해결하고 올바른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다. 70"

 대체로 강하고 분명한 어조로 현상을 짚어내고 가감없는 비판을 해 자연스럽게 공감과 이해를 이끌어냈지만, 한편으로는 실망스럽기도 했다. 캠핑장에서 열린 체육대회 때 공정하지 못한 방법으로 1등을 한 아이에 대해 불만을 품었음에도 그 집 부모와 운영진이 친해보여서 항의도 하지 못하고 의욕을 잃고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32)는 시작이었다. 코끼리코를 열번 돌아야 하는데 여덟번 돌았으니 잘못됐다, 재대결을 하자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하는 용기라니. 부모를 등에 업고 남의 자리를 빼앗는지도 모르고 만들어진 영광을 얻어가는 아이들에 대해 지적하는 한 편, 잘못을 보고도 잘못이라 말하지 않고 침묵과 외면으로 상황을 피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앎을 실천으로 옮기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높은 것인가 이해하지만 아쉽기도 했다. 

 " 사실 사춘기를 향해 가는 요새 딸아이의 가장 큰 특징은 '동시대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대의 사회, 문화, 예술, 풍습 등을 아우르는 전반적 경향에 조응하는 태도를 동시대성이라 한다면, 지금 아이는 매우 수행적으로 동시대성을 체현하고 있다. 164"

 읽기 전에 예상했던 양육의 돌봄은 3부, 특히 4부에서 깊게 다루고 있는데 문득 예전에 어떤 드라마를 보다 아역배우가 학교에서 두부한모라고 자신을 놀리는 친구와 싸운 일을 말하는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았던 일이 떠올랐다. 이와 비슷한 충격을 '탐욕스러운 돌봄'에서도 만났는데, 기생수(기초생활수급자, 75)라는 줄임말과 다문화가정의 아이를 두고 NPC(Non Player Caracter,72)라고 표현한 것이었다. '동시대성'을 체현하고 있는 예비 사춘기 아이를 통해서 요즘의 흐름을 파악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언뜻 세대가 함께 어우러짐을 말하는 것 같지만, 이러한 표현들이 어른도 아니고 아이들의 세계에서까지 등장하게 된 것에 대한 바탕 또한 드러낸다. 가정환경을 두고 비꼬는 표현, 다른 사람을 동등한 인격체로 보지 않는 자기중심적이고 비인간적인 시선이 타인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를 따져보던 어른의 셈법에서 나왔음이 분명했다.   

 "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아이들은 전부 다르다. 누군가의 자식이기 이전에 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세계와 영향을 주고받으며 자신만의 역동을 만들어낸다. 155" 

 '탐욕스러운 돌봄'에는 나의 아이를, 또다른 개인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키워나가야 할까, 어떻게 교육하고 돌보고 존중하고 성장시켜 결국 나라는 세계와 분리하여 전혀 다른 우주를 가진 존재로 인정하고 사회구성원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내밀하고 개인적이면서도 보편적이고 사회적인 이야기라 읽는 내내 함께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초반 무기화 되어버린 자존감과 페미니즘(25)의 유사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만 해도 좀 더 거칠게 부딛히는 면들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돌봄 문제에 대해 오래도록 고심해온 흔적들이 느껴질 때마다 거친 면들이 조금씩 다듬어지고 좁았던 시선을 넓게 확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좁은 돌봄의 의미를 넓혔을때, 그리고 결국 그 넓힌 세계가 다시 처음의 돌봄을 위한 밑바탕이 되는 것임을 다시 깨달았을 때 책을 덮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