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홍콩배우 양조위
테일 2026/02/26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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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홍콩배우 양조위
- 주성철
- 25,200원 (10%↓
1,400) - 2026-02-13
: 8,970
왜 지금 양조위일까. 책을 보고 가장 많이 떠올린 생각이다. 그는 항상 그로써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지금이 '마지막'이란 수식을 붙인 채 그에 대한 두툼한 책이 한 권 나올만한 어떤 기점일까 의아함이 깔렸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봄 햇살이 슬며시 새어 들어오(214)*'는 계절이기 때문일까. 하지만 그 배경이 어떠하든 영상 속 그의 눈빛에 매료되어 빠져들 듯, 책장 사이를 읽어내리게 될 것이다.
언제 이렇게 홍콩영화와 배우들을 사랑했었나 스스로에게 의문을 품을만큼 익숙한 얼굴들을 만난다. 요즘은 중화권이라하면 주로 대만영화를 접하게 되는데 어린시절엔 아마 한국영화보다 홍콩영화를 더 많이 봤던 것도 같다. 명절이면 낮시간대에는 주로 성룡이 나오는 영화가 매번 배정되었던 것 같다. 주말 밤시간대에는 이연걸이나 장국영이 나오는 영화가 자주 등장했다. 이상하지, 양조위는 그보다 조금 더 자랐을 때 등장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가 가진, 더 나이가 든다해도 훼손될 것 같지 않은 소년스러운 웃음과 동시에 섹시함이 묻어나는 상반된 분위기를 소화할 수 있을 때가 되어서야 그를 바로 보게 된 듯 하다.
<아비정전>의 흥행 실패와 <동사서독>의 제작비 고갈로 후반 작업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두 달 만에 완성한 영화가 <중경삼림>(1994)이라니(173-6), 흥미로운 뒷 이야기를 읽으며 어떤 흐름 위에 선 사람을 보는 듯 했다. 특히나 '그 에스컬레이터' 위에 서보기 위해 일부러 홍콩에 다녀와 본 적이 있던만큼, 그리고 '그 홍콩'이 이제 거의 사라져가고 있음을 느끼는만큼 3부 8장의 이야기는 각별했다. 그때 당시의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가 '두 인물이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걸어 내려오던 그 길의 시간을 단숨에 지워버린 기계장치(179)'로 편리함 이면의 상실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지금은 네온과 함께 사라져가는 과거와의 길고 지난한 이별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책은 재미있게도 양조위를 말하지만, 양조위보다 그 주변 인물들에 더 많은 이야기를 담는다. 그의 우상으로 꼽히는 주윤발(70)이나, 오랜 시간 동안 홍콩사람들의 도파민을 책임졌을 연애담, 친구이자 동료인 장국영, 가장 좋아하는 감독이자 기꺼이 페르소나가 되어 연기한 왕가위(71), 2000년 이후의 홍콩영화를 보여준 유위강 감독 등의 등장이 가볍지 않게 풀어진다. 거기다 시대와 영화를 읽는 저자의 시선마저 깊이 있어 그냥 흘러넘겼던 영화의 장면이, 이를테면 <화양연화>에서 분위기만으로 암시한 관계가 왜 <색, 계>에서는 파격적인 형태로 드러났는지(316), 97년 <해피 투게더>에서의 떠남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209) 먼 시간 속의 관객이자 독자에게 전달한다.
문득 '마지막'이라는 수식이 마음을 찌른다. 저자 역시 "<마지막 홍콩배우 양조위>라는 제목으로 양조위와 멸종 위기에 처한 홍콩영화에 대해 쓰다 보니 괜히 비장해졌는데,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현실의 양조위는 정작 이를 반길까 싶다.(396)"며 같은 가책을 느끼고 있었다. 요즘은 명절에 티비에서 방영해주는 특선영화 같은 것에 그리 관심을 두고 있지 않기도 하지만, 어린시절 처럼 홍콩영화가 편성되는 것도 드물어진 듯 하다. 그처럼 자연히 홍콩영화의 현재와 미래를 헤아리지 않게 되었지만 그래도 아직 이렇게 우리가 사랑했던 영화와 배우, 그리고 지나간 과거의 편린이 흩어지지 않고 남아있어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을 붙잡아두고 싶어진다. 아마 그 마음을 애정과 함께 담아 이 책을 쓰지 않았을까 싶다.
" 누군가 <마지막 홍콩배우 양조위>는 표지가 전부라고 얘기하면 기쁠 것이다. 나 또한 그렇게 느낀다. 13"
책의 표지를 두고 '이 책은 표지가 사기다. 어떻게 이 책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느냐'고 주접을 남겼던 기억이 있다. 가끔 이렇게 작가의 의도에 그대로 순응한 자신을 보면 놀랍고 재밌다. 저자는 그 시절 430 우주선에 탑승해 어른으로 가는 시간을 거슬러 온 홍콩사람인가 싶게 인물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수상하다. 하지만 그만큼 세세하고 친절한 인도자이다. 없던 사연도 짐작하게끔 만드는 눈빛을 가진 잘생긴 배우를 적당히 흠모해왔다면 책을 읽으면서는 점점 더 궁금하도록 만든다. 자신이 사랑하는 배우를 향한 관심을 모을 수 있다니 성공한 팬은 행복할 것이다. 정말이지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그**'에 대한 긴 팬레터였다. 덕분에 읽는 동안 즐거웠다.
*춘광사설(1997) 영제 Happy Together(해피 투게더)
**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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