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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님의 서재
  • 오후엔 모두 남남이 되기로 해
  • 오영은
  • 15,300원 (10%850)
  • 2025-11-12
  • : 1,185

 
귀여운 글이라 읽을 때마다 어느 순간 사르르 풀어진 얼굴 근육에 다시 힘을 주게 된다. 다른 사람이 이야기를 할 때 끼어들면 예의가 아니라고 하지만 '오후엔 모두 남남이 되기로 해'를 읽는 동안은 나도 모르게 끼어들어서 공감하고, 혹시 이런 상황이나 이런 느낌은 아니었는지 물어보고 싶어졌다. 얼굴을 마주하고 한 대화가 아니라 책을 읽는 시간이라 그나마 예의를 차리고 책장을 덮을 수 있었다. 마주하고 나누는 대화였다면 이렇게까지 솔직하고 소소할 수 없었겠지만 함께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었다면 얼마나 재미있었을까 하는 아쉬움을 품었다. 

자연스럽게 튀어나온 [섹스 앤 더 시티(38)]의 에피소드를 보며 아, 요즘은 캐리를 모를텐데 하고 염려했다. 급식이 아닌 도시락(107)을 말하는 온도에서 아무렴 어때 그럼 나같은 사람이 읽으면 되는 걸 하고 마음을 바꿨다. 자연스럽게 퍼져나가던 오지랖을 갈무리하고 아무도 묻지 않는 나의 이야기를 하나씩 덧붙이며 책을 읽는 동안 즐거웠다. 여유롭게 잘 그리는 허세(18)가 나에게도 통했는지 문득 만나게 되는 자연스럽고 편안해보이는 그림들도 마음에 들었다. 읽다 얼마나 몰입했는지 수영장 그림(186)에서는 나도 모르게 이런 내밀한 공간을 그려도 되는걸까 놀라기도 했다.   

외모에 대한 사적인 생각(118)을 읽다보니 요즘 보고 있는 흑백요리사의 전 시즌을 보고 남긴 글이구나 싶었다. 벌써 새로운 시즌을 보면서 지난 시즌의 글을 읽고 있자니 그 사이에 벌어진 시간이 확연히 느껴졌다. 이번 시즌도 보고 있으시려나, 그럼 이번에도 잘 관리한 준수한 외모의 셰프 대신 우직한 인상의 셰프를 우승 후보로 꼽으시려나 궁금해졌다. 하나 고백하자면 외모와 실력에 대한 글을 읽으며 저자와 반대로 생각했다. 부지런하고 열정적인 사람들은 대개 자기 자신도 잘 관리한다고. 게으르고 나태한 사람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생각이라 한 사람 몫의 근거를 더한다. 

글을 쓰는 지인이 있어 작년부터 올 초까지는 지인의 에세이를 기다리지 않는 척 기다리고 있었다. 책을 하나 낸다는 것이 갈수록 부담인 일일 것이라 기다리던 책은 언젠가의 일로 접어두게 되었지만, '오후엔 모두 남남이 되기로 해'를 읽으며 기다리던 마음이 조금은 채워진 기분이었다. 일기든, SNS든 어떤 기록도 잘 하지 않아 비워둔 일상을 나도 이렇게 기록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책을 읽으면서 누군가의 사소함이 다른이와 나눌 수 있는 편안함과 공감이 될 수 있다는 매력에 푹 빠진 탓이다. 

어떤 사람일까, 하는 궁금함이 일어난다. 누군가를 더 알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인간적인 호감과 함께 더 많이 알면 오히려 거리가 생길 것 같아 덮어두고 지금의 좋은 인상만 남기고 싶단 망설임이 있다. 아마 그래서 '다정한 무관심이 필요한 순간'이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따뜻하고 친근한 호감을 품고도 어느 정도는 상대방과 거리를 두어야 함을 알아버린 차가운 도시의 어른들이라서, '오후엔 모두 남남이 되기로 해'하는 말을 앞에 두고도 당신과 나 사이에 침묵조차 달가운 거리를 음미한다. 어느 날 또 이렇게 반갑게 만나 밀린 이야기를 나누자고 다음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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