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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님의 서재
  • 두 번째 미술사
  • 박재연
  • 18,000원 (10%1,000)
  • 2025-09-24
  • : 3,040


 큰일이다. 이제 내가 직접 미술관을 찾아 발걸음을 옮기는 것 보다, 미술과 관련된 책을 읽으며 그 안에서 풀어내 주는 미술을 함께 즐기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된 것 같다. 미술관을 직접 가본 경험도 많지 않으면서 책을 읽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책으로 작품을 보면 그 작품에 대한 설명과, 어떤 부분을 주의 깊게 봐야 좋은지, 작가는 어떤 의도를 품고 표현했는지, 그 시대는 무슨 영향을 끼쳤는지 알 수 있다. 게다가 전시회를 찾는 수많은 사람들 틈에서 서성이며 밀려나듯 작품을 보지 않아도 된다. 얼마든지 그 작품 앞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전시회를 둘러보다 보면 쉴 곳은 마땅치 않고, 화장실이라고 가고 싶으면 재입장이 불가해 곤란할 때도 있다. 정신없이 서 있다보면 얼마 시간이 안 지난 것 같은데 다리가 아파올 때가 있다. 하지만, 책은.
 물론 직접 작품을 봤을 때 느껴지는 기운, 섬세한 색과 선을 눈으로 담을 수 있는 감상은 사진으로 접하는 것과는 실제로도 표현적으로도 차원이 다르긴하다. 하지만 보는 눈이 없고 배경 지식이 부족한 사람의 입장에선 감상을 보조적으로 도와주는 책을 통해 시선이 풍요로워지고 감상의 폭도 넓어지는 장점을 무시할 수는 없다. 게다가 '두번째 미술사'처럼 흥미로운 이야기까지 담고 있는 책이라면, 문득 책으로 작품을 만나는게 더 잘 맞는 것 같단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정설'에 대한 반기는 문학 수업 시간에 처음 접했다. 하나를 입력하면 하나를 기억하는 학생에게 일제강점기 문학 작품을 수업하던 선생님이 던지신 질문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우리가 비유적으로 해석해서 무조건 답으로 고르던 해방과 억압의 이미지들이 정말 작가의 의도가 맞을까,하고 물어오셨었는데 그런 의표를 찌르면서도 시험 볼 때는 그동안 배운대로 답을 적어내야 한다고 말을 마치셨었다. 그때 처음으로 작가의 의도와 대중의 해석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이 아니고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두 번째 미술사'도 그런 책이었다. 고정된 시선과 주입된 생각을 깨고 새로운 깨달음을 주었다. 

 인상적인 내용 중 하나는 <목을 베는 유디트(152)>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이 작품은 그동안 화가인 "젠틸레스키 자신의 삶-젊은 시절 당한 성폭행과 그에 따른 재판-이 투영된 자화상 같은 작품이라고 해석해왔다.(152)"는 소개를 읽다가, 최근 성폭력 피해자가 가해자의 혀를 깨물어 절단한 사건으로 유죄를 받았던 오래 전 판례가 재심을 통해 정당방위가 인정되어 무죄가 선고된 일을 본 기억이 떠올랐다. 이 작품이 그동안 여성의 원한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지만 오늘날에 이르러 단순한 복수가 아닌 "권력의 전복과 연대의 상징(154)"으로 재해석 되고 있다는 점이 닮았다. 

 책에서 기대한 반전들은 이렇게 강렬한 것들이긴 했지만 가끔은 "달리의 개미핥기 산책(4)"같은 내용이 재미와 놀라움을 주기도 했다. 이미 나와있는 제품의 이미지를 뽑아내기만 하면 되는 것이라 생각했던 워홀의 작품인 <캠벨 수프 캔>이 사실은 밑그림을 떠서 손으로 일일이 색 칠한 것(212)이란 사실도 의외였다. 그동안 편견과 오해의 시선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바로 그런 눈의 장막을 걷기 위해 '두 번째 미술관'이 열렸구나 싶었다. 또, 현재 전시 중인 '오랑주리-오르세미술관 특별전'*과 관련된 오랑주리 미술관(238)에 대한 내용도 만나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작품만이 아니라 확장된 공간까지 담고 있는 내용이라는 점도 좋았다. 

 미술관에 가는 것보다 책을 보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지만, 사실 어느 하나를 고를만큼 예술 앞에서 여유로운 처지는 아니기 때문에 둘 다 가능한 많이 접할수록 좋다. '오랑주리-오르세 미술관 특별전'에 대해서 언급한 이유도 예매해두고 아직 방문을 미룬 게으름 때문이기도 한데, 책을 읽고 나니 더 가보고 싶어졌다. '두 번째 미술관'을 접한 다른 분들도 올해가 가기 전에 가까운 미술관을 찾아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길 바래본다. 기왕이면 책에서 만나고 지금 진행 중인 전시를 찾아본다면 더욱 깊은 인상을 남기지 않을까. 기대했던만큼 만족스러운 독서 경험을 주는 책이었다. 


* 오랑주리-오르세미술관 특별전 : 세잔, 르누아르 
한가람디자인미술관 2025-09-20 ~ 2026-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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