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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님의 서재
  • 여름에 내가 원한 것
  • 서한나
  • 16,200원 (10%900)
  • 2025-08-07
  • : 4,530


 책을 읽다가 잠깐 멈추고 책 날개를 들추었다. 작가에 대해 적힌 소개는 몇 줄 뿐이라 1부를 읽으며 이 사람, 뭐지? 왜 귀엽지? 생각한다. 작가에게 여름은 사랑과 동의어인 것일까. 어떻게 이토록 사랑에 진심일까. 멀거니 타인의 입에 들어갔다 천천히 녹아내리는 사탕을 지켜보는 기분이 든다. 사람이, 연애가, 사랑도 너무 좋아서 어디에든지 걔가 어제, 우리 오늘, 나 내일 하고 적어 올리고 싶어하는 친구 같기도 하다. 달겠지, 싶으면서 누군가의 내밀한 것을 어쩔 수 없이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는 민망함도 있다. 

 오차즈케(69)에 대한 얘기는 제목도 눈에 들어왔지만, 그 내용이 생리적인 거부감을 들게 한다. 찌개 냄비에 숟가락을 담구기를 어색해하지 않던 시절을 보내왔으면서, 아직도 팥빙수는 앞접시 없이 공용으로 퍼먹으면서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와 한 음식을 공유하는 일이 불편해졌다. 먹다 남긴 오차즈케를 맛보면서 상대의 '엄마나 자식(70)'이라도 된 것 같아 좋았다는 말에, 이 대책없는 사랑 중독자에게 머리를 내저으며 나와 타인 사이의 거리감을 헤아린다. 이제 더이상 그렇게 할 수 없고,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은 좋은 일일까, 나쁜 일일까. 

 얼마 전 '복미영 팬클럽 흥망사'를 읽을 때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도 재능이 필요하다는 문구를 봤다. 이 산문집의 내용이 대부분 작가의 삶 안에서 자라나온 것이 맞다면 그 재능이 얼마나 넘치게 가득한 사람인 것일까. 애정이 가는 상대의 싸이월드 " 아이디를 뭘로 해놓았는지, 미니홈피 색깔은 어떻게 설정해놓았는지, 배경음악은 어떤 건지 그런 것을 아는 게 내 인생에는 엄청나게 중요하다고... 91" 말하는 절박함이 신기하고 재밌어 보였다. 1부에서 이렇게 큰 자극을 느끼고 나니 2부는 다소 밋밋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쉽다. 과일이나 음악, 여름에 떠오르는 것들에 대한 단상은 연인들에 비해서는 덜 뜨겁다. 

 " 친구들은 내 집에서 신기하게 움직인다. 내가 이 공간을 쓰지 않는 방식으로 쓴다. 233"는 문장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2부에서 다소 식은 긴장감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타인이 내 공간 안에 있을 때 느끼던 불편함에는 바로 이런 낯섦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섬세함이 예리함으로도 바뀌는구나, 감탄했다. " 나보다 몇 살 많은 사람을 두고, "걔 잘 지낸대? 정헌이 착했는데" 하고 말하는 것은 어린 시절에 만나봤던 사람들끼리만 가능한 특별 대우다. 241" 같은 말버릇도 나도 모르게 입을 벌리게 될만큼 놀랐다가,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는 게 여기도 적용이 되던가 입술을 말아 물었다.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멋대로 거리를 재가는 동안 금새 마지막 장이 되고만다. 여름 저녁 차가운 커피 한 잔을 옆에 두고 잡은 책은 순식간에 다 읽게 된다. 

 비슷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언급되고 있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헤어질 결심],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하이퍼나이프], [행인] 같은 것들이 하나씩 겹쳐질 때마다 어쩌면 우리가 그렇게 다른 사람은 아닐지도 모른단 생각을 했다. 작가가 꽤나 공들여 소개한 [워터 릴리스]를 보고 싶단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모르고 지나친 영화 안에 이렇게 얄궂은 관계(52)가 있다고. 그런데 왜 나는 몰랐었지, 아쉬웠는데 다행이다, 웨이브에 있었다. 같은 것을 공유한 목록이 한 줄 더 채워지고, 그럼 책을 읽을 때보다 83분 정도 더 겹쳐지는 부분이 하나 생겨날 것이다. 누군가를 이해하는 과정, 나를 대신해 여름을 하루 더 좋아해 줄 사람을 알아가는 감각을 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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