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테일 2025/05/18 16:52
테일님을
차단하시겠습니까?
차단하면 사용자의 모든 글을
볼 수 없습니다.
-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 홍세화
- 19,800원 (10%↓
1,100) - 2025-04-11
: 11,138
이 책을 이제 읽게 되다니. 한번 들으면 잊혀지지 않을, 그리고 워낙 유명한 제목을 가진 이 책을 사실 살면서 한 번은 읽게 되리란 예감은 있었다. 그게 지금이었다니, 잊혀지지 않는 제목이 결국 책 앞으로 나를 이끌 줄 알았다며 책을 펼쳐든 욕심에 변명을 달았다. 무슨 노래와 함께 들어야할지 읽기 전부터 사실 그 고민이 앞섰다. 출판사 소개글에 어떤 노래와 함께 이 책을 읽을 것인지 물음이 있었다. 책을 읽기 전에는 막연히 프랑스나 택시와 관련된 노래여야 할까 싶다가 책을 읽으면서는 '지금도 마로니에는 피고 있겠지 ...'하는 노래가 대체 어떤 곡이길래 궁금해 들어봐야 하나 싶었다. 읽고 나서는 글쎄, 모르겠다.
'갈 수 있는 나라, 모든 나라. 갈 수 없는 나라, 꼬레.' 떠나올 적 영영 돌아가지 못하리란 것을 모른채 모국을 잃어버린 망명자의 신분이 된디아스포라의 비애와 자조적 애수가 담겨 있었다. 그 상실이 얼마나 절절한지 그러나 얼마나 유려히 쓰여졌는지, 순식간에 살이 베여 아픈지도 모른 채 생채기를 바라보는 기분이 들었다. 지난 세기에 쓰여진 글이 지금까지도 회자될 수 있는 이유를 몇몇 대목에서 이해할 수 있었는데 자본주의, 자본의 논리에 대해 지적한 내용이 인상깊었다. '주는 것은 곧 마이너스니까 손해 보는 것, 더 나아가 패배하는 것이라고 인식하여 되도록 주진 않고 마냥 받으려고만 하는 것(168)'이란 관점이 현대사회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혐오, 누구도 손해보지 않으려는 관계맺기를 꿰뚫는다.
"너희 나라에 꾸데따는 일어나지 않니?"
나의 갑작스럽고 또 엉뚱한 질문에 그는 어리둥절해하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글쎄, 일어날 수도 있겠지. 알제리를 포기하려는 드골에 반대하여 그를 죽이려는 기도도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런 일이 일어나려면 미친 장군이 있어야 하고, 또 일이 벌어져도 바로 시민들이 모두 들고일어날 테니 몇 시간이나 지탱할 수 있을까?" (110)
그리고 또 하나 책을 읽다 문득 멈춰선 일화였다. 그가 건너 들었던 프랑스의 모습이 지난 24년 12월 한국에서 실제로 일어났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 벌어져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난 것은 유감이지만, 마치 이를 지켜본 듯한 삐에르와의 대화를 그가 떠올렸다면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는 깨어있는 지식인의 모습과 구시대의 사회적 인식의 한계가 번갈아 드러나며 묘한 느낌을 받았다. 과연 과거 세대에 비하면 현 세대의 2030층은 미성숙하다. 개개인은 과거에 비해 인격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주체는 약하고 대다수가 고등교육을 받았음에도 의식이 심어질 바탕조차 다져지지 못했다. 대신 사회적 인식은 전에 비해 향상되었는데 여성의 역할과 권리에 대한 변화를 책을 읽으며 느낀 불편함으로 확인했다. 다른 하나 재미있는 감상을 한 부분은 '오오까의 밀감(277)'과 '개똥 세 개(303)'이다.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이야기인데 명료하고 재미있는 내용이 마음에 들었지만, 갑자기 끌려나와 심한 추궁을 받아야 했던 나오스까에게 많은 생각이 머물렀다. 겁에 질린 채 거짓말을 지어낸 스스로가 수치스럽지 않았을까. 사실은 거짓된 판이었음을 밝힌 오오까의 사과를 받으면서, 그는 세번째 개똥을 입에 넣은 기분을 느끼지 않았을까. 개똥 세 개가 있다면 그 세 개를 다 자기 입에 넣어야 할 사람은 짧고 명료한 이야기를 두고 한동안 곱씹었다.
2000년대 초반 즈음 똘레랑스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번졌던 기억이 난다. 오래 전 일이라 확실하진 않지만 아마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로 인한 여파가 아니었나 짐작해본다. 그때 주워들어 박힌 인식으로 똘레랑스=관용 이라 단어 암기가 되어 있듯 했는데, '관용이라기보다 용인이며 화이부동(400)'임을 강조하는 의미를 이제 다시 천천히 알아갈 수 있었다. 확실히 '차별과 혐오의 한국 사회를 다시 한 번 각성시킬'만한 울림을 가진 책이었다. 물론 다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아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저자가 친절히 낙오된 독자를 다시 이끌어 줄 것이다. "그럼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똘레랑스란...(403)"
PC버전에서 작성한 글은 PC에서만 수정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