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지의 힘
테일 2025/05/13 18:51
테일님을
차단하시겠습니까?
차단하면 사용자의 모든 글을
볼 수 없습니다.
- 검지의 힘
- 이선주
- 13,500원 (10%↓
750) - 2025-04-30
: 800
" "너, 나 좋아하냐?"
유익표는 상대를 모욕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p14"
가만히 읽으려고 했는데 참지 못하고 웃음이 터졌다. 쉽게 마음을 열고 웃어주지 않으려 했는데 금방 웃어버려 왠지 모르게 자존심이 상했다. 걱정했던 익표와 여준이는 학폭이 아니었고 3년 동안 삐지고 달래던 사이가 회복됐으니 안심이었는데, 어른의 색안경도 함께 빠지는 장면이었다. 애들은 잘못이 없다. 어른이 문제였다. 하지만 익표의 잘못은 분명했다. " 애들은 유익표가 하는 말은 다 거짓으로 들었기 때문에 유익표가 나와의 사이를 인정하자 우리 둘이 아무 사이 아니라고 확신하게 됐다. 뜻밖의 효과였다. p127" 익표야, 대체 어떤 삶을 사는거니?
매번 웃음이 터지는 것은 아니지만 '검지의 힘'은 정말 재밌다. 게다가 그 안에 감동도 가득하다. 이렇게 짧고 잘 읽히는 글 안에 재미와 감동, 게다가 현실적인 고민들까지 다 채워넣은 이 장르를 어떻게 안 좋아할 수가 있을까. 막상 청소년 시기에는 반드시 읽어야 할 현대문학과 고전 명작, 머리 터지는 SF, 자극적인 추리소설 같은 것을 읽느라 몰랐던 것이 아쉽다. 살짝 유치한 것 같으면서도 어설프게 요즘 유행하는 말 같은 걸 끼워넣지 않은 덤덤함도 매력이다. 정말 추천해주고 싶은데 주변 아는 청소년중에 책을 좋아하는 청소년이 드물다는 것이 안타깝다.
" 슬정아가 웃었다. 슬정아처럼 잘 안 웃는 애들의 장점은 한번 웃을 때마다 상대방에게 뿌듯함을 안겨 준다는 데 있다. 내가 웃겼어, 하는 뿌듯함. 성적이 오를 때보다 남을 웃길 때 더 큰 희열을 느낀다. p43" 책 읽다가 깜짝 놀랐다. 광대 역할을 하느라 전에는 몰랐는데 나중에 깨닫고 보니 남들 얘기에 웃어주는 역할이 추구미였다. 이루질 못해서 그렇지. 웃기는 애는 우스운 애 되기도 쉽다는 씁쓸한 현실과 웃기는 애보다 웃어주는 애가 더 매력있게 보인다는 사실을 다 웃기고 나서 알았다. 잠깐의 뿌듯함 때문에 지은 수치의 산이 백두산은 아니어도 동네 뒷산 만큼은 된다. 남은 생은 평탄화 작업 하는데 써야지.
'검지의 힘'에서도 이별이 나오는데, 하지와 영인의 이야기를 읽다가 며칠 전 사거리 횡단보도 한 가운데서 우연히 친구를 만났다고 반가워 펄쩍 뛰어오르며 소리를 지르던 여고생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사람은 언제 늙고 어른이 되는가 했더니 그 모습이 풋풋하고 예뻐보이면 그때 되는가보다 싶기도 했다. 요즘은 길다가 학생들이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면 그게 그렇게 예뻐보인다. 어두운 골목길에서는 좀 무섭고. 나에게도 그런 친구들이 있던 때가 있었다. 하교할 때 헤어져놓고 동네 길목 어딘가에서 마주치기만 해도 반가웠던 얼굴들, '야'하고 뛰어가 온몸을 내던져 서로를 안으며 반겼던 투명함.
그렇게 세상 영원할 줄 알았던 친구들과 어느새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지금이 책을 읽으며 차례대로 '강물처럼 흘렀다'(3. 우정은 강물처럼 흐른다). " 초등학교 3학년에 만나 고등학교 1학년까지 나의 부모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했던 친구가 떠나간다. 나비와 함께 나의 일부도 떠나보낸 듯 공허했다. 그러나 따라갈 수는 없다. 친구는 그곳에서, 나는 여기에 남아 각자의 인생을 꾸려 갈 것이다. p123" 하지와 영인의 이별을 아름답고 성숙하게 보여주었지만, 현실에서는 아무런 준비도 예감도 없이 지나고보니 평범했던 그 날이 마지막 만남이 된 인연들이 많다. 자연스럽게 정리된 인연들이었지만 맛있는 것 사주고 좋은 말 해주고 꼭 한 번 안아줄 걸 아쉬웠다. 그저 가끔 마음으로나마 '친구의 미래에 영광이 함께 하기를, 나는 하늘의 구름처럼 온몸으로 친구를 축복(124)' 할 수 밖에.
청소년도서를 좋아하는데 가끔은 읽다가 지칠 때도 있다. 아주 작은 부분이 계기가 되어 잊고 있었던 과거가 떠오를 때다. 조금 기분 나쁘고 말았던 혹은 그때는 별 생각 없던 사소한 일들이 기억도 나지 않고 있다가 단 한 장면을 통해 떠오른다. 다른 책들을 읽을 때 개인적인 경험이나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청소년도서를 읽을 때 되살아나는 것들은 어쩐지 그중 가장 예리하고 연약한 부분을 찔러온다. 그때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어쩌면 다른 소설들이 그냥 검지라면, 청소년도서는 특별히 힘이 센 검지라서 가끔 부주의하게 '검지의 힘'을 써버렸는지도 모르고. 하지만 찔릴 것이 두려워 읽지 않기엔 너무 재밌고 매력있는 책이다. 검지의 힘을 옮길 때처럼 간절하게, 이 매력을 전달하고 싶다. "(읽어) 줘!"
PC버전에서 작성한 글은 PC에서만 수정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