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이유 없이 불안할까
테일 2025/04/11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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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왜 이유 없이 불안할까
- 하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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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 - 2025-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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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도,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속으로 당당히도 난 별로 불안감을 느끼거나 그런 것 때문에 불편하지 않은데 공감을 할 수 있을까 염려했다. 일상은 대체로 무난하게 지나가는 것 같고 때때로 느끼는 압박은 약속시간에 늦을지도 모른다거나 요즘 살이 좀 찐 것 같다는 사소하고 고만고만한 것들이다. 그런데 책에서 '불안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위험한 사람(p17)'이라고 예를 들어 8차선 도로를 그냥 건너는 것과 같다고 하자마자 내가 그동안 가졌던 불안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불안이라고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 뿐, 내게도 불안이 있었던 것이다.
사실 나는 중요한 일정이 있다고 생각되는 날 전날에는 잠을 못잔다. 잘자고 좋은 상태로 다음날 일정을 소화해야 된다는 생각에 자야한다는 압박감이 들고, 그럼 잠이 잘 오지 않고, 잠이 안온다는 압박감에 다음날 내 상태에 영향이 미칠 것을 걱정하고, 결국 초조해져서 더 잠이 안오는 것이다. 장시간 산에 오르거나, 고속버스 같은 대중 교통을 이용해야 하거나, 기대되는 영화를 보러갈 때도 화장실이 가고 싶어지면 어쩌지? 걱정하는 것도 일상의 사소한 불안들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사실 저자가 가장 기본으로 생각하는 '잘 먹고 잘 자는 생활리듬(p77)'이 깨지는 불안상태였던 것이다. 왜 나는 불안의 이름조차 몰랐던 것일까.
책을 읽으면서 소름끼치게 내 이야기야! 라고 공감한 것이 '집에 손님이 오신다(p30)'였다. "예를 들어 집에 손님이 오신다 그러면 불고기 굽고 있는 반찬 차려서 대접하자 이럴 수도 있는데, 손님이 뭘 좋아할지 몰라서 고기도 차리고 회도 차리고 반찬도 열개쯤 새로 해서 놓는 거예요. 그러면 준비하다 지쳐버리고 다시는 손님 부르지 말아야지 싶어지죠." 이걸 과잉 반응으로 인한 불안이라고 하는데 정말 집에 누가 오는게 싫은 이유가 청소하다 지쳐서인 나로써는 내 몸이 100의 스트레스를 겪는다는 이 상황에 진심으로 공감했다. 책에서도 MBTI에 대한 얘기(p38)가 나오긴 하지만 그동안 내향적인 면이 있어서 그런가 생각했던 손님싫어 현상에 다른 이유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동안 타인과 어울림에 있어 두드러지는 내향적인 면이나 짜증을 느낄 때면 죄의식이 생기곤 했는데 '기분이 태도가 되지 말자'는 말을 마음속에 새기고 태도를 바꾸려고 노력했었다. 하지만 이런 반응이 단순히 내가 덜 된 사람이라서만이 아니라 " 내 몸이 '너 오늘 여기까지야' 하고 나에게 보내는 위험 신호 p43"였다고 생각하니 불편한 마음이 좀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보면 예민하고 짜증 많은 사람인 것 같은데 어느 정도는 맞지만 그런 면을 남에게 드러내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기도 하다는 걸 함께 밝혀둔다. 책에서도 " 성격 문제와 같이 고치기 어려운 것으로 생긴 불안이라고 보지 말자는 것입니다. 불안은 지금 내 상태에 대해서 내 몸과 마음이 신호를 보내는 것일 뿐입니다. p74" 라니 성격보단 체력 문제인 것으로.
나이에 따라 불안의 양상이 달라진다는 것도 인상적인데 중년기에 겪을 불안에 대한 영화배우 안성기 씨의 이야기(p60)가 공감됐다. 늘 주연만 맡아서 들어오던 배역이 어느 순간 조역으로 달라지면서 처음엔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비슷하게도 최근 영화 '서브스턴스'를 보고 그동안 나이듦에 대해 느꼈던 압박과 불안이 떠올랐었다. 여성은 젊고 날씬하고 예뻐야만 한다는 강박을 꿰뚫는 영화인데, 거울 앞에 서서 화장을 덧칠하다 지우는 데미 무어의 모습에서 강렬한 공포와 슬픔을 느꼈다. 인생의 주연에서 조연으로 젊음에서 나이듦으로,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자신을 받아들이기 시작해야 하는 요즘이라 이 불안을 '올 게 왔다(p64)'고 인정하고 성숙해질 수 있을지 책을 붙잡고도 한동안 심란했다.
이 한 권의 책으로 모든 불안에서 완벽하게 벗어났다!고 할 수는 없다. 저자도 불안은 '완전히 없애는 것이 아니라 정상범위 안에서 잘 관리하는 것(p8)'이라 표현한다. '난 왜 이유 없이 불안할까'를 통해 내 안의 불안을 인지하고, 조금 낮은 기준으로 불안의 원인을 바라보는 계기를 만들었다. 저마다 가지고 있는 불안이 다른 것처럼 책을 통해 다른 것들을 얻어가게 될 것이다. 교양 100시리즈는 처음 접하는데 말미에 필사를 할 수 있는 부분도 있어 더 마음에 들었다. 짧지만 알찬 도움을 챙기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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