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폴라 일지
테일 2025/02/05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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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폴라 일지
- 김금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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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0) - 2025-01-30
: 26,360
'나의 폴라 일지'를 두고 두 가지 궁금증이 일었다. 하나는 진짜 남극에 갔다고? 다른 하나는 작가 김금희가 맞나? 다소 싱거운 이 질문의 답은 둘 다 맞다. 였다. 그럼에도 의문을 가졌던 것은 뭔가 쉽게 연상하기 어려운 조합이었기 때문이다. 펭귄이나 북극곰, 고래, 끝없는 눈과 빙산 혹은 오로라 같은 이미지로만 알고 있는 극지방에 대한 로망이 나에게도 있었다. 알고보니 남극과 북극으로 나뉜 모든 로망의 혼합이었지만 그래도 세종기지의 대원을 모집하는 글을 몇번이고 훔쳐보며 이런저런 궁리를 해보기도 했다. 가진 재주라곤 평범하기 뿐이라 유일한 방법은 조리 분야 지원 뿐이었는데 자격증과 경력이 요구되는 높은 난이도에 좌절됐다. 그런데 그런 남극엘 갔다니 대단하고 부러웠다.
처음 한동안은 이 모든 준비과정과 낯선 세상에서 맞이한 어색함, 20년차 월동대장에게 남극생활 2일차에 조언을 건네는 등의 실수들 마저 자랑처럼 느껴졌다. 이런 점들이 어려웠어 하고 말할 뿐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원하던 곳에 도달했다는 작가의 기쁨이 숨겨지지 않고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반드시 2인1조로 다닐 것, 비펭귄인간 하며 지칭하는 말들도 뉴요커의 'the city' 발언처럼 어쩐지 그들만의 호칭처럼 여겨졌다. 질투에 사로잡힌 사람의 마음을 녹인 것은 중간 부분이 자꾸 벌어지길레 펼쳐보니 들어있던 엽서였다. 펭귄은 귀여웠고, 그 뒤로 일렁이는 바다의 빛은 조금 쓸쓸했는데 책 안의 긴 이야기들보다 엽서에 담긴 짧은 글귀 안에서 이 경험을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전해졌다.
그 뒤로는 괜한 부러움은 접어두고 그저 흥미롭게 읽어나갔다. 낯을 가리고 스몰토크를 어려워한다고 몇번이나 강조했지만 나였다면 아마 이렇게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만큼 적극적이었다. 식생팀에 참여하거나 안을 따라 옆새우 채취를 나서는 등 MBTI가 E세요? 싶은 활발함이었다. "드디어 결심하셨군요!"(111) 고장난 벽시계의 건전지를 갈아끼우듯 눈앞에 놓인 일을 어찌나 씩씩하게 해내던지 이래서 남극까지 갈 수 있었구나 싶어졌다. 힘이 들어 어떤 사람들은 굳이 가지 않는다는 까마득한 산도 오르고 고래까지 봤지만 하지만 자신의 전부인 문학(p255)을 주제로 한 북토크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조금 아쉬웠다. 문학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토록 강렬하고 열정적인 답이라니.
책을 다 읽은 건 집이 남극처럼 추운날이었다. 한동안 조금씩 천천히 남극의 이야기를 읽어오다 갑자기 현실로 내쳐진 듯한 끝맺음이 어떨떨했다. 사태를 삶아 썰어넣은 국물에 마른 찬밥과 가래떡을 살짝 말려 직접 썰어두었던 떡국떡을 몇 줌 넣어 떡국도 국밥도 아닌 것을 끓여 훌훌 먹고는 책의 마지막 몇 장을 읽다가 얼마 있지 않아 몸이 굳고 어깨가 아파와 전기장판 안으로 도망쳤다. '완전한 사육'처럼 느껴졌다는 저녁 6시의 어린이 목소리를 떠올렸다. "벌써 저녁 시간이 되었어요. 하는 일 멈추고 식사하러 오세요. 밥은 먹고 지내요" (71) 낭랑한 목소리에 어딘지 위화감이 드는 어조 때문에 나는 그게 '오징어게임'의 안내방송처럼 생각됐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다정한 안부처럼 느껴졌다. 어떤 일이 있든 '밥은 먹고 지내요'.
머나먼 곳의 이야기로 가득한데 지역번호가 032로 되어 있어서일까 특별함은 금새 사위어버리고 말았다. 오히려 비일상 가운데 에필로그로 짧게 정리된 일상이 더욱 강렬하게 남았다. 그래서 '나의 폴라 일지'가 더 인상깊게 다가왔다. 남극에서 마주한 자연과 경이 같은 것이 아니라 생활과 가족이 삶의 어떤 순간에 배제되지 않은 채 얽혀 인생이란 것의 의미를 곱씹게 해주는 것 같아서. 지구의 모든 펭귄과 비펭귄인간의 안녕을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추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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