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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님의 서재
  • 셋셋 2025
  • 김혜수 외
  • 11,700원 (10%650)
  • 2025-01-30
  • : 1,200


 가볍고, 인상적이고, 길지 않다. '셋셋'은 오랫동안 책을 읽지 않았던 사람에게 딱 맞는 소설집이다. 핸드폰은 어디서든 손에 들고 있을 수 있지만 책 한 권을 손에 들고 펼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조건들이 필요한지. 주변 정리가 되어 있어야 하고, 갑자기 떠올라 처리해야 하는 잡일이 없어야 하고, 커피도 한 잔 준비되어 있어야 하고. 긴 연휴를 앞두고 책을 읽을 여유가 많겠다 생각했더니 누구나 다 그 날을 기다려왔던지 늘 뭔가 일이 있어 연휴가 끝나자 일상으로 돌아와 책을 제대로 펼쳐보았다. 읽다보니 재미있어서 순식간에 다 읽었는데 각각의 매력이 달라 읽을 때마다 기분도 감상도 변했다.  


 " 우리는 머리를 어떻게 감아야 하는지 부모님한테서 배운 적이 없었다. 우리는 눈치껏 알아서 자라고 있었다. 어른이 되어 그때를 돌아보니 헛헛한 마음이 든다. 아이들이 눈치껏 자라면 분명 무언가를 놓친 상태로 자라버린다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그때 놓친 것들은 지금에 와서 다시 찾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다. p27 김혜수_여름방학 "


 두 아이 사이의 미묘한 관계와 2000년대로 돌아간 듯한 그 시절의 감성이 물씬 풍기는 요소들도 재밌다. 내가 어렸을 적엔 'ㄹ'을 넣어 별명을 짓는 게 유행이었는데 동네마다 규칙이 달랐던 건가 도깨비말이 생소했다. 테이블 위에 놓인 '피시카산'을 보며 그래도 뒤쳐지지 않고 잘 따라한다며 우쭐하다 25년 정도 뒤쳐진 생각을 하고 있는게 우스웠다. 추억할 것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여름방학'이 더 재밌지 않을까싶다.


 영화 서브스턴스를 보며 자신은 어떻게 늙어가고 있는가 외모점검을 하게 되었다는 감상을 남긴 사람들이나 기생충을 보고 냄새가 신경 쓰인다는 사람들에 대한 비난을 본 적이 있다. 일차원적인 감상이고 영화가 말하고자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어조였다. 엘라스틴 샴푸에서 나는 냄새가 전지현 냄새일 것이라고 믿던 세희와 은진, 세희에게서 나던 군내가 자신에게도 난다는 사실을 깨닫는 은진을 보면 누군가에게는 그 마저도 인지의 순간이 될 수도 있음을 생각한다.   



 " "이상하다.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p.58 이서희_지영 "


 정말 무서운 문장이었다. 어느 괴담의 가장 소름끼치는 순간이 이렇지 않을까. 이번 셋셋을 읽으며 인상적인 문장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이 문장을 선택하겠다. 이쯤에서 상당히 질겁하고 이 뒤로 또 얼마나 끔찍한 이야기가 이어지려나 싶었던 것과는 다른 흐름으로 무난히 끝을 맺는 내용이지만 이 문장을 보고 확 몰입이 되기도 했고, 전체적으로 종교와 연관이 있는 작품들이 꼽혔나 싶은 생각이 들어 다른 작품들도 유기적으로 살펴보게 되었다. 


 '동물원을 탈출한 고양이'나 '아이리시커피'는 불쾌함이 더 크게 느껴졌던 글들이다. 재미가 없거나 별로여서가 아니라 치매라는 소재를 너무 잘 써서 실제감에 답답한 느낌을 받아서이기도 하고, 가까운 사람이 운영하는 작은 카페에 종종 가서 카페일을 돕기도 하는 터라 읽는 내내 손끝이 차가워지는 불유쾌한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이것들이 더이상은 소설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같은 소설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어지는 '호날두의 눈물'은 그 전까지 다소 심각하고 가라앉은 감상을 전환시켜주는데다 사회적으로 40대 남자가 20대 여자에게 편의점 1+1 커피를 하나 나눠주는 행위가 불법인지 아닌지 논의가 필요한 문제가 제기되어 흥미로웠다. 하도 결백을 주장하길래 가해자의 입장에서 좀 억울할 수도 있겠다 생각했지만 남자 아르바이트 생에게는 1+1 콜라를 나눠주지 않고 가지고 온 것을 보고는 아, 개저씨네 했다. 안타까운 일이긴 하지만 여자친구와 헤어진 것까지 날강두 때문이라니 이건 좀 억까아닌가 생각하면서도 웃으며 읽었다. 


 셋셋을 통해 낯선 이름의 작가들을 만났는데 금방 반갑고 익숙한 이름들이 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사진과 짧은 영상에 익숙해진 바스라진 집중력을 끌어모아주고 긴글이 부담스럽지 않게 적당한 공감과 자극이 오가는 내용들이라 다음 셋셋도 기대하게 된다. 새해를 맞아 독서를 결심한 누군가 요즘 재밌게 읽을만한 책 없는지 물어오면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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