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이 요즘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독서를 하고 있는데 꽤 좋더라고 하며 연락을 했다. 그러냐며 반색을 했지만 내심 찔렸다. 언젠가부터 독서 양이 현저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한가로운 시간에 독서만이 올바르고 내세울만한 취미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난 시간 독서를 멀리하고 무엇을 했냐하면 또 그만 못한 것들로 시간을 보낸 것 같아 찜찜함이 남는다. 지인이 읽고 있는 책이라며 '어떻게 분노를 다스릴 것인가?'라는 책 제목을 알려주었는데 책 제목을 보고 요즘 심리적 압박을 받거나 분노 조절이 잘 안되십니까 농담을 하다 그때 마침 책방에 놓아두었던 이 책이 떠올랐다.
" p.233 [이유 없이 화나요.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까요?]
[감정의 브레이크가 있다고 생각하고 밟아봅시다. 살짝씩 밟다 보면 속도가 줄어들 거예요.] "
사실 파란대머리 캐릭터인 정신과 의사 캘선생과는 구면이다. 2023년 제목을 떠올리면 햄버거를 먹고 싶어지는 책 1위로 선정된(내가) '나는 왜 내 마음이 버거울까?'를 통해 알게 되었는데 묘하게 킹받는 그림이면서 누구나 할 법한 고민들을 간결하고 명쾌하게 답변해주는 내용이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마찬가지로 돌아온 캘선생은 여전히 킹받는 그림이면서 전보다 더 가벼워졌다. 가벼워졌다는 것이 얄팍해졌다는 게 아니라, 마치 요즘 저당, 제로 식품이 유행하는 것처럼 맛은 그대로 살리고 20% 더 가벼워졌어요! 하는 느낌이다.
"하루 한 장 상담"이라는 형식에 맞게 한 쪽에 질문 하나와 그에 대한 답이 담겨있다. 어찌보면 인스타그램 무물을 책으로 보는 것 같다. 예를 들면, p.88 [입사 이틀 차, 적응하는 게 너무 힘드네요.] 하고 상담 내용과 함께 답변으로 [이틀... 아직 매우 부족...] 같은 내용이 그림과 함께 있는 것이 전부다. 짧게 다양한 내용을 답변하는 데다가 분량도 약 350 쪽에 달하는 책이라 순식간에 술술 읽히게 되다보니 읽다가 약간의 정신없음을 느꼈다. 말을 줄였는데도 말이 많다고 느껴진다. 텍스트가 수다스러워보일때 쯤 짤막하다고 한꺼번에 다 읽지 않고 하루에 조금씩 분량을 나눠서 읽기로 했더니 훨씬 나았다.
지인이 읽고 있던 책을 다 읽고나서도 다스려지지 않은 분노가 남아있다면 재미와 가벼움으로 남은 잔여물을 정리할 수 있도록 '오늘 하루 꽤 나쁘지 않았어'를 추천해줄 생각이다. 지난 제목도 참 마음에 들지만 이번 제목도 잘 지었다고 생각이 드는 게, 매일 하루를 정리하면서 좋았던 날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아 지쳤더라도 무사히 오늘이 어땠었는지 되새겨볼 여유가 남았다면 '꽤 나쁘지 않았'던 날로 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센스있는 변신이 반가웠던 캘선생과는 다음 책으로 또 만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