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가 압도적이다. 알수 없는 객관적이어보이는 화자가 그녀와 그녀의 어긋남과 만남을 주시하고 있고, 그녀들(혜서와 애영)이 만난후 데이터가 끊긴 줄거리를 드문드문-그가 받은 데이터를 기준으로- 이야기 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그녀들이 왜 움직이기 시작했고, 만나게 되었는지 그 사이에 생략된 내용들을 매우 궁금하게 만든다.
이야기는 트랙-얼굴-공사-좌표-첼로-동선-루프로 이어지고 있는데
각각 혜서의 서사-애영의 서사-애영과 진혁의 과거 서사-혜서의 서사-애영과 진혁의 서사-애영의 서사-애영과 혜서의 서사로 이어진다.
혜서가 우연히 진혁의 노트북에서 트랙을 발견하게 되고, 트랙이 무엇을 뜻하는지 궁금하여 진혁이 로그인 된 채로 남겨두고 간 계정으로 그를 추적하다가, 어째서 긴 휴가를 내어 암스테르담으로 떠나고, 나중엔 회사까지 그만두고, 암스테르담에 더 남는 결정을 하게 되는지 좀 과도하거나 의아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프롤로그에서 이미 마음 속에 올라와버린 여러 궁금증과, 혜서가 자기 자신의 행동에도 의문을 품으며 진혁의 자취를 계속 추적하고 찾아보는 과정에서, 나도 의아함은 어느새 잊고 계속 설득되어 넘어가는 사람처럼 혜서의 진로를 흥미롭게 따라가고 있었다. 알려줄 것만 슬쩍 슬쩍 알려주면서 더 궁금하게 만든다. 마치 초점 잡히지 않은 카메라 속의 화상을 보며 여러 추측을 하고 궁금해하며 점점 초점을 맞춰가는 느낌.
애영의 등장이 신선하게 느껴진 것은 암스테르담이라는 지역배경외에도 레익스 미술관의 관내도서관이 딸린 '(현대미술)예술가들의 레지던스'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인물들이 다양했고, 신선하게 다가왔다. 가브리엘, 이반, 마레나, 다미안 인물들의 묘사가 실존감있게 느껴져 생생했다. 애영의 안락사가 전혀 예상되지 않을 만큼. 오히려 그녀의 안락사 계획이 확실해서 생동감있는 예술가과의 에피소드들 속의 그녀가 더 안타깝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이야기는 전혀 신파로 가지 않고 깔끔하다. 그게 좋았다. 다만 가브리엘을 통해서 인종차별, 세상이 당연시 여기는 어떤 부당함, 책임지지 않는 남자들, 아이에 대한 생각, 프로그램에 대한 애영의 생각이나 행동을 이끌어내는데, 그럼 애영에게 보여진 가브리엘이라는 퍼즐을 모으면 어떤 인물일지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약간은 도구처럼 느껴졌다. 마레나도 마찬가지이다. 인물 묘사는 생생히 느껴졌지만 인물들의 행동이나 서사는 약간 의아한 면들이 있었다. 그들이 애영과 만난지 얼마 안되는 인물이기도 하고 애영이 그리 사교적인 타입도 아니라고 느껴진 탓일 것 같기도 하다.
공사, 좌표, 첼로 장에 가면 비로소 작가의 메세지를 서서히 마주하게 된다. 세상의 여성에 대한 당연시 되고 있는 부당한 차별들이 혜서와 애영의 서사에서 언급된다. 아마도 혜서와 애영이 만나서 금방 통하는 이유는 이 부분에 대하여 비슷한 대역의 주파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어떤 인생의 길, 경로, Data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보게 한다. 다미안 선생의 입을 통해 전해준 정보는 여러갈래의 생각으로 이끌었다. 시선을 추척하여 개인화된 Data를 축적하고 그것을 다음 미술 작품을 만들 때 활용한다는 것은 현재 Big data가 쓰여지고 있는 트렌드를 정확히 읽어내어 반영한 것 같다. 독자는 이야기를 다 읽고 에필로그까지 읽으면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어떤 AI같은 존재의 관점에서 씌어졌다는 것을 눈치채게 되는데, 그는 사용자(인간)이 남긴 Data를 기반으로 관찰, 추정하여 자신의 관점을 설득력있게 제시한다. 그것이 매우 새롭고 기발하고 그럴싸하다고 느껴진다. 또한 Data가 누락되어 간접적으로 엄마와 아이를 교통사고로 죽게 한 것도 아이러니하다. 스캐너에서 얼굴이 지워지지 않아 얼굴이 공개된 인물도 아이러니하다. 더이상 인간만이 Data를 만들고 남기는 것이 아니라 Data가 누락되거나 덜 삭제된다는 이유로 그것이 인간의 삶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소설의 큰 맥락을 좌우하는 아이의 죽음도 직간접적으로 그로 인한 것이다.
안락사에 대한 부분도 독자에게 새로운 경험을 주는 부분이다. 마레나가 애영의 안락사 이야기를 듣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안락사 심사관은 안락사가 오히려 자살을 막는 것이라고, 고통을 줄이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지막을 보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한다. 독자마다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 다르겠지만 안락사에 대한 관점이 좀 더 확장될 수 있게 하는 것 같다.
엄마와 아이간의 묘한 애증 같은 묘사도 돋보인다. 작가님이 분명 남자분인데도 여성들이 느낄만한 일들을 공감가도록 잘 묘사한 것 같아서 흥미로웠다. 진혁에 대한 부분은 좀 아쉽다. 진혁이 겁이 많고 숨기려하고 뭉뚱그리는 스타일이라는 것, 자신만을 위한 것만 선택하며 살아온 사람이라는 것 외에 어떤 개인 서사가 있었으면 싶었다. 에필로그에서 소개된 샌드섬에서 사라진 그의 신호는 그의 죽음을 암시하는 것 같고, 그를 너무 나쁘게 묘사하지 않은 것도 좋았지만, 어딘가 아쉬웟다. 암스테르담에 남기로 결정한 혜서와 안락사로 죽기로 계획해 놓은 애영이 앞으로 어떤 변화를 맞이하고 서사를 이어갈지 조금은 흐뭇한 느낌으로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