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시대의 도시건축
Dennis Kim 2025/12/30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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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이신 남상문님께서 2025년 펴내신 책입니다.
잡지 < 바람과 물>,< 건축과 사회>에 연재하셨던 글을 모아 책을 내셨습니다.
이 책은 서구에서 발전한 건축사조인 모더니즘 건축( Modern Architecture)과 이후 20세기 건축에 큰 영향을 미친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에 대한 소개를 합니다.
하지만 효율성과 경제성 그리고 건축기술을 중시하는 모더니즘 건축물들은 20세기를 풍미한 건축이 되었지만 건물의 냉난방에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되는 이유로 현재와 같은 기후위기 시대에 애물단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개인의 자유와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신자유주의적 사상은 건축물에도 영향을 미쳐 각 가정의 집들이 단절되고 외부와 고립되었고, 고립된 공간의 온도조절을 위해 전기로 작동되는 냉난방 시설이 들어설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개인이 아닌 공동체를 생각했다면 굳이 공간을 고립시킬이유도 없었고, 공간이 고립되기 않았다면 자연채광과 통풍이 가능해 굳이 냉난방 설비가 필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전기를 쓰면 자연훼손이 덜할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지는데, 전기 생산은 결코 친환경적이지 않아서 문제입니다.
전기를 발전하려면 발전기를 돌려야 하고 여전히 한국에서 전력생산은 석유를 태워서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수력과 풍력과 있지만 아직 생산량이 미미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전기를 보존해서 쓸수 있는 배터리인데, 이것 역시 환경파괴를 동반합니다. 우선 주요 원재료인 리튬이나 니켈이 중금속으로 인체에 해로운 물질인데다, 이 광물들은 주산지가 특정국가 ( 예를 들어 아프리카의 콩고)에 몰려있어 환경오염과 노동력 착취문제가 생깁니다.
전기가 사실상 지구상의 네트워크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어 전기가 갑자기 끊긴다면 ‘재앙’이 일어나는 환경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블랙아웃(blackout)’이 일어나면 전기로 제어되는 모든 것이 멈춥니다. 교통도 통신망도 냉난방 시설도 모두 멈추는것이죠. 동일본 대지진 당시 지진으로 원자로 냉각수 시설이 망가지자 원자로가 열폭주를 시작해 녹아내려가는 지옥같은 장면도 보았습니다.
아무튼 지나친 전기의존과 네트워크 의존은 대안을 생각해 점차 줄여가는 방향을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도시라는 공간은 또한 사람만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생물들도 같이 사는 것이기에 이들과의 공존도 고려해야 합니다.
전세계적으로 도시화가 지속되는 가운데 서식지를 잃은 야생동물들이 도시와 그 주변으로 모여드는 건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최근에는 늘 주위에 있던 쥐나 참새 비둘기 뿐만 아니라 좀 더 큰 동물들 예를 들어 멧돼지나 곰도 도시와 마을 주변에 출몰합니다.
최근 일본에서는 기후변화로 따뜻해진 겨울에 겨울잠을 자지 않고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 출몰해 주민들을 ’먹이감‘으로 인식해 습격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한국에서도 아파트 단지에 배고픈 멧돼지들이 나타나 현관문을 부수는 등 난동을 피우다 사살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결국 이 모든 문제들은 산업화와 도시화로 서식지를 잃은 야생동물들이 살기위해 저지른 일들이니 지금과 같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발전을 지속할 수가 없고 뭔가 대안을 찿아야 합니다.
서울의 경우 한강의 재자연화를 통한 생태회복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고 주변의 산들을 훼손하지 않는 방향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미 산림청이 지나치게 소나무만을 인공조림해서 대형산불을 경험한 만큼 산을 그대로 두는 것이 한 방법일 수 있습니다.
한강은 콘크리트로 덮혀 접근이 불가능한 상태이고 재자연화가 되지 않으면 강수위가 계속 낮아져서 홍수 예방도, 뱃길 운항도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옛날처럼 한강에 배를 띄우려면 우선 강변의 콘크리트부터 없애야 할겁니다.
끝으로 책에서 나오는 공간과 장소에 대해 언급하려고 합니다.
공간(space)은 건축용어로 물리적으로 아무것도 없는 빈자리를 말합니다. 반면 장소(place)는 사람이 나를 둘러싼 환경에 관여하는 과정에서 삶의 의미와 가치를 획득한 삶의 터전을 말합니다 (p147).
따라서 어떤 장소의 ‘상실’은 그곳에 살아온 이들의 ’삶의 상실‘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장소는 만들어지는 과정도 더디고 오래걸릴 뿐만 아니라 가격을 매길 수도 없습니다.
어려서 살던 집과 동네가 모두 사라져 상실감을 느끼는 것도, 일제시대때부터 있었던 익선동 카페골목의 오래된 좁은 골목을 보는 것도 모두 시간이 쌓인 흔적을 보기 때문입니다.
장소는 삶이 얽힌 일종의 생태계이기 때문에 모두 없애고 빌딩을 지어 팔 생각을 할 것이 아니라 보존방안을 찿아야 합니다.
시간의 두께가 없었다면 요즘 핫플이라는 익선동도 을지로도 그리고 해방촌도 모두 생겨나지 않았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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