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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nnis Kim의 책과 생각
20세기를 대표하는 전쟁사진가(War Photographer) 로버트 카파(Robert Capa)를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미국의 전쟁사진가로 알려진 그가 헝가리 출신 유태인인 사실도, 그의 이름 로버트 카파가 ‘활동명’이라는 사실도 사실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카파는 헝가리 부다페스트(Budapest)에서 안드레 프리드만 (Andre Friedmann)으로 태어났습니다. 집안이 넉넉치 못했던 그는 독일 베를린(Berlin)으로 가서 대학을 다니며 사진을 처음 접했습니다. 베를린에서 암실 조수를 하면서 사진의 현상 인화과정을 배우고 사진을 익혔습니다.

하지만 독일에 나치당이 정권을 장악하고 유태인들을 탄압하자 그는 거점을 다시 파리(Paris)로 옮깁니다. 여기서 본격적으로 보도사진가들을 만나면서 프로 사진가의 길로 접어듭니다.

프랑스에 있으면서 그는 처음 스페인내전( The Spanish Civil War)에 종군합니다. 프랑코 독재정권에 반대하는 스페인 민병대편에 선 카파는 이 전쟁에서 처음 전쟁사진가로서 명성을 얻습니다.

하지만 전쟁에서 돌아온 그는 평상시에는 파티에 참석하고 클럽에 드나들고 도박을 하며 불안정한 생활을 합니다.

스페인 내전에서 그의 첫 연인 질다 타로(Gerda Taro)를 잃은 것이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녀는 혼자 전쟁을 취재하다 자동차 사고로 목숨을 잃은 것입니다.

첫 연인을 전쟁에서 잃은 직후 카파는 수많은 여배우, 모델 등 많은 여성을 만나도 결코 결혼을 하지 않았습니다.

나치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하자 카파는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합니다. 이후 미국 뉴욕과 영국 런던 그리고 프랑스 파리를 오가며 방랑하는 삶을 삽니다.

질다 타로 이후 카파와 가장 오래 깊은 관계를 가진 여성은 헐리우드 배우인 잉그리드 버그만(Ingrid Bergman)입니다. 남편과 사실상 쇼윈도 부부였던 버그만은 파리에서 카파를 만나 그와 사랑에 빠졌고 남편과의 이혼도 심각히 고려했으나 카파는 버그만의 결혼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또 미국 모델인 제미 하몬드 (Jemmy Hammond)와도 깊은 관계를 가졌으며 그녀의 두 아들들이 카파를 아버지처럼 생각하는 관계였습니다.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1954년 카파가 전장에서 사망하자 제미 하몬드는 충격을 받고 무너졌다고 저자는 전합니다.

스페인 내전에 참전이후 술과 도박 그리고 여자에 빠져 지내던 카파는 제2차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아프리카 전선과 이태리 전선에 종군합니다. 그리고 1944년 6월 6일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종군하여 오마하 비치(Omaha Beach)에 첫 상륙부대와 함께 상륙의 순간을 카메라에 담습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참혹함과 치열함은 그가 찍은 흔들린 사진 한장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카파를 모르던 사람들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1998년작 <라이언 일병 구하기(Saving Private Ryan)>을 기억할 것입니다. 이 걸작 전쟁영화의 오프닝신은 카파의 노르망디 상륙 순간의 사진을 참조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카파는 스페인 내전과 제2차 세계대전에 종군해 유명한 전쟁사진가로 이름을 날렸지만 그 댓가는 혹독했습니다.

10여년 이상 전쟁터에 나간 탓에 그는 외상후 스트레스장애(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를 앓았습니다. 극심한 불안증세, 폭음을 일삼았고, 우울증을 앓았으며 화를 자주 내고 가만히 있지를 못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그는 유태인으로서 이스라엘 독립전쟁(1948)에 종군해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땅에 성립되는 현장을 찍었습니다.

프랑스 파리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카파는 미국의
여러 작가들( 해밍웨이, 스타인백) 과 각별한 사이였으며 라이프(Life)지의 사진가들 그리고 여러 나라의 보도사진가들과도 잘 알고 지냈으며 함께 포커를 치거나 바에서 술을 마셨습니다.

영화감독 존휴스턴과 도박친구였으며 화가 피카소와 마티스와도 친구로 지냈습니다. 그는 남프랑스에 휴가를 즐기러 정기적으로 방문을 해서 이들 예술가/ 배우들과도 잘 지냈습니다.

잉그리드 버그만과 사귀면서 영화 <노토리어스(Notorious),1946>의 셋트장에서 버그만의 스틸사진을 찍기도 해서 히치콕 감독과도 알고 지낸 사이였습니다.

이는 아마도 카파가 전쟁사진가로서의 유명세가 이미 셀레브리티 수준으로 높아진 까닭이어서 인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렇게 화려하지만 불안정하고 경제적으로 늘 쪼달린 삶을 살던 카파는 1954년 일본에서 열린 그의 사진전에 몰린 구름인파를 보고 다시 사진작업의 열망이 생깁니다.

당시 일본의 카메라 업체들이 카파에게 새 카메라와 렌즈를 증정하며 선물 공세를 폈고 카파는 처음 가본 동양의 일본에서 꽤 고무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일본에서 카파는 바로 인도차이나 전쟁 취재를 위해 방콕으로 떠나고 이후 베트남으로 들어가 전쟁을 취재하러 가서 전쟁터에서 사망합니다.

전쟁터에서 죽은 전쟁사진가가 되었기 때문에 그는 ‘전설적인’전쟁사진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남긴 한마디는 사진을 배우는 모든 이들에게 사진을 하는 자세를 알려주는 경구가 되었습니다:

만약 당신의 사진이 충분히 훌륭하지 못하다면, 당신이 (피사체에) 충분히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If your photographs arn‘t good enough, you ‘re not close enough


끝으로 책에 관련한 몇가지 사항을 부기합니다.

이책은 본문 23장으로 구성된 총255쪽 분량의 책으로 2003년 출간되었습니다.

카파와 동시대를 살았던 가족과 주변인물들의 인터뷰와 오래된 신문과 잡지기사를 발굴해서 카파가 살았던 시대를 입체적으로 구성했습니다. 이 글을 쓴 저자가 제2차세대전 전쟁사에 대한 책을 이미 여러권 쓴 전문가인 것도 이 책에 나온 전쟁과 전투관련 서술을 더욱 신빙성있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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