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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nnis Kim의 책과 생각
부제처럼 1980년대 전두환, 노태우로 대표되는 신군부(新軍部)정권이 국민동원을 위해 어떻게 시간을 정치 자원(Resource)로서 활용했는지를 연구한 저서입니다.

책은 신군부가 철폐한 야간통행금지 폐지에 따른 사회적 효과 및 노동시간에 대한 영향, 그리고 KBS에서 실시한 ‘국민생활시간조사’와 이에 따른 텔레비전 편성시간 조정, 국가에서 강요한 국기하강식 의례를 다룹니다.

그리고 신군부 정권의 가장 큰 정치적 이벤트인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위해 국민의 의사와 관계없이 일방적으로 서머타임을 실시하거나 대통령령으로 임시공휴일을 지정하는 등 ‘남에게 보이기 위한’정책을 임의적으로 집행했습니다.

박정희 군부독재정권이나 전두환의 신군부 독재정권이나 모두 공통적으로 ‘통치’의 대상인 국민의 시간을 통치자가 국민의 뜻과 상관없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에 균열이 생긴 건 1987년 민주화운동 이후 노동자와 민주화세력이 신군부 정권에 도전해 노동절을 국가공휴일로 지정하는 등 목소리를 높여 단순히 ‘근로’의 의미만 강조하던 독재정권의 노동자 배제를 바꿨습니다.
국가의 기억정치의 수단인 국경일 지정에 국민의 목소리가 반영되기 시작된 시기가 1980년대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1980년대까지 양력 기준의 국가지정 기념일과 음력기준의 명절로 두가지 시간체제가 경합했습니다. 전통적인 음력기준 명절이 국가기준의 양력 시간체제와 맞지 않아 국민들의 불만이 팽배한 상태였으나 독재정치체제의 통치자들은 이런 국민의 불만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구한말이래 ‘근대화’라는 명목으로 서양력인 양력이 도입된 이후 이전부터 국민들의 생활시간을 규정하던 음력과 이에 따른 세시풍속과 명절이 쉽게 없어지지 않았고, 이런 두가지 시간체계는 1980년대까지도 지속되었습니다. 국가가 기념하고 의례를 거행해야 할 시간( 정치적으로 필요한 시간) 과 국민의 생활시간의 불일치는 오랜 이력을 가지고 있고 1980년대 이후 4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흐릿하게나마 아직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책과 관련하여 시기는 다르지만 시간정치의 흐름을 일제강점기 중심으로 정리한 연구서가 있어 소개합니다.

이창익,시간의 연대기: 잊힌 시간형태의 기록 (테오리아,2025)

이책이 1980년대 텔레비전이 시간정치에 매우 중요한 매체였음을 밝혔던 것처럼 위의 ‘시간의 연대기’에서는 시기에 따라 ‘시포’, ‘싸이렌’, 그리고 ‘라디오’가 시간을 알리고 국가의례를 알리고 행동을 규제하는 시간정치의 수단이었음을 밝힙니다.

시간을 통해 국민 ( 그리고 신민)을 통제하려 했던 기본적 속성은 시기에 따라 수단만 다를 뿐 동일했던 겁니다.

‘시간’이 통치자의 통치수단으로 인식되었다는 사실은 실제로 있었던 일임에도 설마 권력이 그렇게 미시적인 부분까지 통제하려 했을까 하는 점에서 무척 놀랍습니다.

미시정치 생체정치(bio-politics)의 기제로서 작용하는 시간정치의 일면을 잘 볼수 있었던 저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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