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아가는데 먹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는데 의외로 식문화 연구를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걸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정치나 경제같은 거대담론을 중시해서 정작 일상에서 접하는 식문화를 등한시 하기 일쑤입니다.
아무튼 이 책은 성균관대에서 한국근대소설을 연구하시는 박현수 교수께서 2023년 펴낸 책입니다.
과거의 역사를 서술하는데 사료를 인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소설도 그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기 때문에 역시 좋은 소스가 됩니다.
이 책도 일제강점기 당시 경성의 유명 음식점들의 분위기, 가격 등을 살피는데 식민지 시기에 쓰여진 소설을 인용합니다.
이 시기 서양요리와 일본을 거친 화양절충(和洋折衷)식 요리 그리고 중국요리와 일본요리가 본격적으로 조선에 들어오던 시기이고 아이스크림이나 커피 등도 많이 마시기 시작한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은 그 시대를 대표하던 식당인 미쓰코시(三越)백화점 식당과 조선호텔 식당 그리고 조선인 자본가 박흥식의 화신(和信)백화점 식당을 다룹니다. 일제강점기 인기를 끌던 정식(定食)이 생긴 이유, 그 가격대 그리고 서양인들이 주로 묵었던 조선호텔의 프렌치 코스요리에 대해 알려줍니다.
그리고 제가 주목했던 곳은 방적회사 가네보의 가네보 푸르츠팔러로 생소한 과일디저트 전문 카페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두 곳은 시인 이상과 소설가 이태준의 아지트였던 낙랑파라 카페 그리고 조선공산당이 1925년 창립총회를 연 중식당 아서원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책을 보시면 되고, 제가 찿은 공통점은 이 식당들이 대부분 1920-30년대 운영되었던 곳이고, 위치도 일본인 거주지역과 가깝거나 관청가, 외교가와 가까운 지역에 몰려있었다는 것입니다. 주고객층이 아무래도 조선주재 일본인이거나 조선의 부유층, 그리고 외교사절등으로 조선에서 거주하는 서양인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종로에 있었던 조선인 상대 국밥집이나 설렁탕집 그리고 냉면집의 음식가격은 상대적으로 낮았고 이 식당들은 대로변이 아닌 골목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지금은 사라져버렸으나 종이신문 전성기에 인기있던 신문연재소설의 삽화를 보는 건 남다른 감회를 일으킵니다. 특히 한국근대의 소설가들이 신문사 기자로 재직하면서 신문연재소설을 쓰는 경우를 보는 건 매우 특이한 사례같습니다. 일제강점기 당시 지식인들의 직장이 아마 대부분 교사나 신문기자 혹은 잡지사 기자 등이어서 그런 것 같고, 외부 필자를 구하기 어려워서 기자가 소설도 쓰고 했던것 같습니다.
끝으로 이 책은 경성의 본정( 명동), 종로, 황금정( 을지로), 장곡천정(소공동) 일대의 유명 음식점을 다뤄서 1920-30년대 당시 경성의 경관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일제시대 서울의 도시모습을 보게됩니다. 예를 들어 미쓰코시백화점은 지금도 신세계백화점으로 그 모습 그대로 있고, 중식당아서원 자리에는 롯데호텔이 들어섰습니다. 이 책에 나온 설렁탕집 이문 식당은 아직도 영업 중이고, 화신백화점은 이제 없어지고 삼성종로타워가 자리잡고 있죠. 서울이라는 도시의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읽어볼만한 책입니다.
이 책과 관련하여 책을 몇가지 더 소개합니다.
이 책이 일제강점기의 경성을 다루었다면, 해방이후 이촌향도(離村向都)로 상징되는 산업화 시대 서울의 발전상을 마찬가지로 당시 발표된 소설을 통해 알아본 연구서가 있습니다.
서울탄생기, 송은영 지음 (푸른역사,2018)
그리고 이책의 낙랑파라와 관련해서 언급된 소설가 박태원이 대해서는 조이담 선생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 해설서를 추천합니다. 이 책은 개정판이 나왔지만 저는 초판으로 읽었습니다.
구보씨와 더불어 경성을 가다, 박태원. 조이담 지음( 바람구두,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