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계 미국인으로 콜럼비아 대학에서 팔레스타인을 연구하는 라시드 칼리디 (Rashid Khalidi)의 팔레스타인 현대사 연구서입니다.
저자가 책 말미에서 밝혔듯 자신의 아들이 팔레스타인 현대사를 처음 접하는 일반독자를 대상으로 책을 써보라고 권유한게 이 책을 집필한 동기가 되었다고 했고, 책은 집필목적을 달성한 것으로 보입니다.
팔레스타인 지역뿐만 아니라 인근의 레바논, 시리아, 그리고 이집트 등 다른 아랍국가들과 이스라엘 사이에 팔레스타인 난민을 사이에 두고 어떤 갈등이 존재했는지 협상의 당사자 중 한명으로 참가한 경험을 토대로 풀어냅니다.
이 책은 현재 아마존에서 현재 진행되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여파인지 몰라도 이 분야 베스트셀러이고, 한국에도 2021년번역이 되었습니다. 이 책의 미국판이 2020년 출판되었고 페이퍼백판이 2022년 출판되었으니, 현재 진행되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별개로 한국에서 번역되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 라시드 칼리디 지음, 유강은 옮김 (열린책들.2021)
이 책의 미덕은 대체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 전쟁의 역사를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서술한 경우가 대부분인 경우에 비추어 팔레스타인의 입장에서 서술된 귀한 경우이기 때문입니다.
유럽에 살던 유태인들이 제1차세계대전이후 이스라엘을 건국하기 위한 운동을 시작하고, 제2차세계대전 이후 1948년 실제 이스라엘을 건국하면서 현재 이스라엘 땅에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몰아내고 민간인들을 학살하면서 비극이 시작됩니다.
저자는 이스라엘 건국을 주도한 시오니즘( Zionism)이 유럽에 살던 유태인이 주장한 것으로 아랍세계에서 아랍인과 같이 살던 유태인들과는 무관한 것으로 이해합니다.
20세기 초 영국의 외무장관이던 발포어( Balfour)의 선언으로 시작된 유태인의 중동이주계획은 제1차세계대전으로 붕괴한 오스만제국(Ottoman Empire)의 혼란한 정세를 틈타 아랍세계의 독립을 선동하면서 이 지역에 풍부한 석유이권을 차지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100여년 이상 지속되온 중동지역의 분쟁과 테러 그리고 전쟁의 원인제공에 영국은 그 원죄가 있습니다.
이 주장은 중동문제에 정통한 전문가 대부분이 공유하는 관점으로 영국의 지식인들도 인정을 합니다.
최초 유럽의 유태인들의 팔레스타인 이주를 인정했던 식민주의 세력이던 영국은 하지만 1956년 수에즈 위기 (the Suez Crisis)를 계기로 주도권을 미국으로 넘기게 됩니다. 그 이전까지 영국과 프랑스는 중동지역의 국경선을 결정하며 헤게모니를 행사해 왔지만 수에즈 위기에 미국이 개입하며 이집트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주도권을 상실합니다.
영국의 현대사가들이 수에즈 위기가 대영제국이 쇠퇴하게 되는 결정적인 분기점으로 보는 이유입니다.
책은 팔레스타인이 겪은 수많은 전쟁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그것보다 유럽의 유태인 시오니즘 추종자들, 영국의 정치가들과 미국의 정치가들 그리고 그들을 후원하고 미국의 중동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의 유태계 백만장자들(대부분 골수 시오니즘 추종자들임)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이스라엘을 건국시키고 이들을 내쫓았는가입니다.
저자는 이들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존재(existence) 자체를 부정하는 철저한 식민주의자들이라고 봅니다.
이들 미국의 시오니즘 추종자들인 유태인들은 팔레스타인 지역은 사람이 살지 않는 빈 공간으로 인식하고, 성경에 나와있듯 원래 유태인이 살았던 팔레스타인에 유태인이 돌아오는 것 ( return to homeland)으로 이해합니다. 이는 유태인들 뿐만 아니라 성경에 기반을 둔 미국의 주류 백인들 사이에서도 거부할 수 없는 종교적 정당성을 둔 것으로 이해됩니다.
하지만 이는 팔레스타인 지역에 수 세대간 살아온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존재, 문화, 역사를 깡그리 무시하는 매우 폭력적이고 제국주의적이며, 식민주의적 관점의 시각입니다.
그리고 이 시각은 무고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전쟁에서 학살되고 난민이 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보는 시각입니다.
이는 미국이 서부개척을 할 때 이 지역에 원래 살고 있던 원주민 (Native American)들의 삶을 깡그리 부정하고 마치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로 생각했던 것과 똑같습니다. 미국을 건국한 백인들은 자신들의 우월한 서양문명을 비문명세계인 원주민이 사는 빈공간에 채워넣는다는 제국주의적 발상을 한 겁니다. 우리에게 알려지지는 않었지만 아메리카 대륙에는 원주민들이 만들었 문명과 문화가 있었지만 이는 ‘없는 존재’로 간주된 겁니다.
유럽출신 유태인들이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을 세운 것이나 영국의 청교도들이 미국을 건국하고 이후 독일 등 동유럽 출신 이민들이 미국의 중서부를 개척하는 모든 과정이 제국주의적 팽창과 식민주의 그리고 서구우월주의 ( Eurocentrism)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서구인들이 비서구 유색인종들에게 행한 폭력과 학살 전쟁을 보면 이들이 진정 선진문명을 이룬 이들이 맞는지 회의적입니다.
최근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보면 벤자민 네탄야후 수상을 비롯한 이스라엘의 극단주의적 시오니즘 추종 군부세력이 사실상 가자지구( Gaza Strip)의 팔레스타인인들을 무차별 학살(massacre)하는 인종청소(ethnic cleansing)의 지경에 으른 것으로 보여집니다. 학교와 병원을 폭격해서 이 지역에 사람이 살 수 없도록 하고 있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합니다. 서구언론에서 절대말하지 않는 것 중 하나가 이스라엜군이 팔래스타인에 가하는 절대우위의 불균형적 군사적 타격 (disproportionate strike)입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지 못하도록 공중폭격과 포격을 민간안이 밀집한 시가지에 무차별적으로 퍼붓습니다. 네탄야후 총리는 이번 전쟁으로 전범으로 기소되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저자가 일하는 콜럼비아 대학을 비롯한 미국 대학가에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학살공격에 대한 시위가 일어나는 등 그 폭력과 잔인함이 이미 임계치를 넘어선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하바드, 유펜 그리고 콜럼비아 대학 총정이 사임을 했고, 그 배후에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골수 시오니즘 지지자인 유태인 백만장자들이 압력을 가한 사실이 드러나는 스캔들이 있었습니다. 미국이 민주주의 사회라는 사실이 무색합니다.
이 책을 보면 미국을 비롯한 주류 서구사회가 지칭하는 테러리스트라는 낙인이 과연 온당한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경우는 미국의 지원을 받은 막강한 군사력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의 주거지와 난민캠프가 무차별 폭격을 당하고 탱크가 들어오는 상황에서 이들은 자살폭탄테러나 암살 이외에 저항할 방법이 없는데도 말입니다.
끝으로 한국의 최근 우려되는 상황에 대해 언급하려 합니다.
과도한 친일로 일관하는 윤석열 대통령이 올해 광복절을 앞두고 뉴라이트계통의 역사학자인 김형석씨를 독립기념관장으로 임명해 군인출신이며 보수인 이종찬 광복회장과 갈등양상을 보였습니다.
이분의 발언이 문제적인 것은 일제강점기 당시 한국인들은 ‘일본인’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인식때문입니다. 일제의 식민통치를 정당화시켜주는 무서운 발언으로, 전형적인 식민주의자적인 인식입니다.
앞에서 이스라엘의 유태인 시오니즘 추종자들이 팔래스타인 사람들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유태인들은 이들의 국가수립의 권리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대화상대로 인정되지 않아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영국 미국 이스라엘과의 대외관계에서 제외되고, 협상에서 배제되어 왔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김형석 신임관장의 한국인 국민 존재 부정발언은 그가 친일이고 극단주의적 식민주의자라는 자기증명입니다. 자기나라 국민의 존재를 부정하고 식민지 일제의 정책을 정당화하는 주장이 친일이 아니면 도대체 뭐가 친일일까요?
최근 용산 대통령실이 용산 총독부라고 불리는 것도 신임 독립관장 임명과 관련해 볼 때 사실로 보는 것이 마땅합니다.
개인적으로 식민지 모국에 부역하던 엘리트들의 전통이 청산되지 않은 체 남아있다가 때를 만나 활개를 치는 것으로 봅니다. 친일파를 우대했던 이승만 정부와 미군정의 역사적 후과가, 역사적으로 단죄되지 못했던 친일파에 대한 후유증이 21세기 들어 나타난 것입니다.
일제강점기 조선출신 지식인들에 대한 연구서 한권 소개합니다.
제국대학의 조센징, 정종현 지음 (휴머니스트,2019)
위의 책에서 일제시대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한 엘리트 중 특히 법조인들은 일제로부터 사상검증을 받은 ‘검증된’ 친일파라는 역사적 사실이 나옵니다. 다른분야는 시험에만 합격하면 임용이 보장된 것과 달리 판검사 임용은 시험합격은 물론이고 추가적으로 그 사람이 ‘친일’임이 증명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바꿔말하면 친일이 아니라면 조선인은 결코 일제시대에 판검사 임용이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