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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평등의 세대
- 이철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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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8-09
- : 2,883
흡인력있고 설득력있는 ‘국산’ 사회과학 서적을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미국의 학계에서 활동하다 한국사회를 분석하기 위해 돌아온 학자답게 주장에 거침이 없고 간명해서 인상적이었습니다.
저자는 현재 한국사회를 설명할 수 있는 공식적이고 이용가능한데이터( official and available data)를 이용해 현재 한국사회에 구조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불평등을 설명하고 실증해냈습니다.
데이터를 이용한 글쓰기의 전범을 한국학자의 글을 통해 볼 수 있는 건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체에 대한 인상은 이제 그만하고 내용을 잠시 살펴보려 합니다.
이글을 읽다보니 저의 경우 386 바로 뒷세대이고 저자도 저와 비슷한 세대로 추정되었습니다.
이책은 박정희 대통령의 ‘영도’하에 한국을 한세대 만에 ‘압축적’으로 발전시켰고, 부동산 폭등을 통해 최초 자산 축적을 한 ‘산업화 세대’와 1987년 ‘민주화 투쟁’으로 정치적 해게모니를 가져왔으며,1997-98년 IMF 금융 위기를 통해 경제적 해게모니까지 장악한 ‘386세대’가 현재 한국의 조직과 노동시장에 일반화된 ‘이중적 구조’와 이에 따른 극심한 불평등의 원인이라는 사뭇 도발적인 주장을 합니다.
이론적으로 한국형 위계를 발전시킨 ‘네트워크 위계’에 의한 386세대의 과대 점거가 노동시장에서 세대간 불평등을 촉발시킨 원인이라고 주장하고 이를 정부에서 나온 공식통계 데이터를 통해 입증합니다.
따라서 이책은 동일한 경험과 기억을 공유한 세대 집단 뿐만 아니라 조직으로서 노조와 공장현장조직, 회사조직, 관료조직 등이 언급됩니다. 따라서 세대론이자 조직론이며 또 큰 의미에서 노동시장의 구조를 조망합니다.
따라서 정치학, 사회학, 경제학 논문이 인용되고 있습니다. 불평등의 원임 중 하나로 386세대의 과다 권력점유를 지적히는 이 글의 입장은 386세대가 집권 중추세력인 현 집권여당에 대해서 이들의 과오를 바라볼 기회를 제공합니다.
386세대가 절차적 민주주의를 권위주의 세력에게서 획득했다고 아무 비판도 없이 ‘신화화’되어야할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1987년 민주화 투쟁이후 30년이 넘게 지났고 이제 이 세대의 공과 과를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할 시기가 됐습니다. 따라서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신선하게 다가온 것 같습니다.
제가 공감했던 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전후 베이비붐 세대에 해당하는 한국의 ‘386세대’는 정부와 국회 그리고 기업의 상층 의사결정층에 과다점유를 하고 있으며 1997년 이후로 거의 20년 가까운 세월동안 사실상 정치와 경제를 장악하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그리고 상층부가 오랜세월 그대로 정체된 가운데 연공제에 기반한 인건비 상승분을 사실상 20대 청년층과 여성들에 기회를 주지 않은체 이들을 단기 계약직에 묶어두면서 유지해왔다는 점입니다. 이들이 정치적 민주화를 외치고 절차적 민주주의를 주장하며 평등한 세상을 주장하던 20대와는 다르게 사실상 ‘노동의 유연화’를 받아들여 현재의 이중적 노동시장구조를 만드는데 방조 내지 협조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학생시절 소비에트식 사회주의를 꿈꾸었던 이들이 신자유주의적 노동의 유연화를 사회안전망의 확충도 없이 진행했다는 사실은 ‘변절’로 불리기에 손색없을 것 같습니다.
둘째, 386세대는 철저한 가부장적 사고방식을 유지해 여성들에게 동일하게 일할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이중적 노동시장 구조하에 철저하게 과실을 향유하면서도 같은 세대의 여성들에게조차 같은 기회를 전혀 주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자신들의 후배 여성들에게도 기회를 주지 않았고, 한국 역사상 가장 똑똑하고 공부도 많이 한 주체적인 이 후배 여성들은 ‘출산파업 ‘과 ‘전투적 페미니즘 ’으로 대항하며 커리어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가임여성 출산율이 1명이 되지 않고 이에 따른 인구감소로 구조적인 경기침체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는데, 386세대는 이 상황을 결정한 당사자로서 책임에서자유롭지 않습니다. 제가 보기에 학생때부터 ‘민족’이니’통일’아니 하는 큰 주제룰 위해 일상의 소소함을 우습게 보고 남존여비에서 자유롭지 않았던 학생투사들의 한계로 보입니다.
회사원으로서 츙격적이었던 부분은 한국 100대 기업의 수익성 관련 자료였습니다.
의사결정자인 회사 상층부가 1950-1969년 출생의 경우 자본 수익율이 마이너스에서 0에 이르러 사실상 돈을 벌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상층부의 출생년도가 1970년대 이후일 경우 자본수익율이 반전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사실상 무능이 입증된 치욕스러운 자료였습니다.
이 자료는 이들의 의사결정이 지난 20여년간 변화한 외부 환경에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충격적입니다.
386세대를 학창시절부터 지켜본 바와 이글의 데이터와 그 주장을 보면 공감되는 측면이 많습니다.
저자는 데이터에 근거해서 386세대가 처음 김대중 대통령에 의해 발탁되어 정치권에 입성하고 1997년 금융위기를 통해 경제계를 접수한 이후 이들이 ‘민주적이며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로 한 약속을 사실상 저버렸다고 주장합니다. 저는 이 주장에 수긍합니다.
상황논리에 말리고 정치적 기회를 놓치지 않는 이 세대의 특성상 1998년도 노사정이 합의한 ‘노동유연화’를 지지한 사실은 이 세대가 단체로 변절한 첫 케이스로 생각합니다. 언행일치를 알고 20대 학생시절 한 발언과 주장을 생각하면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사안인데 386새대 정치인들의 ‘권력의지 ‘가 자신들의 가치와 반대되는 합의를 가능하게 한 것으로 봅니다.
잘 알파시피 지금도 정치권에 ‘극우’정치인으로 활동하는 중견이상 정치인들 중 학생 시절 지하에서 사회주의이론가였던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대단한 변신이죠.
따라서 386세대가 현재 이룬 승자독식 (winners take all)은 예상가능한 상황이기도 합니다.
소위 한강의 기적을 통한 성과의 과실을 최초 자본 축적을 경험한 산업화세대와 그 자녀인 386세대만 누리고 그 아래 세대들이 누리지 못하는 건 너무 덧없습니다.
40년간 밤새 일해 서구 국가들이 200년에 걸쳐 이룬 경제성장을 이루고 먹기 살만해 졌는데 그 과실이 다시 30여년만 특정 세대만 누리고 다른 후배 세대는 그 과실을 전혀향유하지 못한체 미래조차 유보하고 있는 상황은 너무 슬픕니다.
젊은 세대는 먹고 살기가 힘들어 자의반 타의반 출산 파업을 감행하고 있지만 정부는 아직도 확대재정에 인색하고 학교는 학생을 내몰라라 합니다.
어르신들은 상황도 알지 못한체 젊은이들에게 결혼 안한다고 훈계 합니다.
어르신 세대인 산업화 세대와 현재 집권층인 386세대는 현재의 이런 불합리하고 슬픈 상황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또한가지 주목할 부분은 동서양의 차이에 관한 것입니다.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유교적 위계 조직에서 ‘참신한 아이디어’로 현재의 상층권력을 무시하면 상층부에 의해 제거 대상으로 낙인찍히는 반편, 서구에서는 관행과 전통을 무시하고 참신한 아이디어로 상층권력에 도전할 경우 상층권력을 해체하고 본인이 그 자리를 차지할 기회가 생긴다는 겁니다.
따라서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 지식은 출세와 권력을 가지기 위한 ‘수단’으로 기능할 뿐 그 지식의 질과 참신함을 ‘평가’하는 기제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서구에서는 참신한 아이디어와 색다른 지식에 대해 주장하고 권위에 도전할 기회가 주어지는 대신, 그 아이디어의 독창성(originality)과 사회에 대한 기여도(contribution)을 면밀히 따지는 ‘평가’시스템이 발전했습니다.
이책에서 경제불황에서 벗어나고 기업이 수익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새로 젊은 인재들을 채용해 조직에 활력을 더하고 위의 서구식 앎의 체계를 도입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 방법 이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어 보입니다.
이 책은 재가 평소에 생각하던 한국사회의 상황을 데이터로 확인해주는 역할을 해 반가웠습니다.
제 커리어 내내 불황이 아닌 적이 없었는데 이러다 정말 한국이 구조적 불황으로 빠지는 것이 아닌지 걱정입니다.
노인인구는 늘어나는데다 출생은 감소해 실제 인구감소가 현실화되어 더욱 그렇습니다.
이 책은 코로나 발발 이전의 상황을 다루었자만 ‘혁신’이라는 포장 아래 노동을 갈아넣어야 하는 택배 기사들의 상황을 추가하면 별반 달라진 것도 없어 보입니다.
끝으로, 눈만 뜨면 나오는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의 주장을 언급하고 싶습니다.
저는 인공지능과 로봇은 인간을 도와주는 구실을 할 뿐이지 대체를 할 수 없다고 봅니다. 기계는 단순반복 작업을 잘할 뿐 교육과 같이 의사소통의 하며 감정을 교감하는 일을 전혀 할 수 없는데 교육계가 인공지능을 도입해 원격수업을 하겠다는 황당하고 몽상적 주장을 해 무척 당혹스럽습니다.
사람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누어질 수 없는 존재이고 로봇과 대체가 될 수도 없는 존재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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