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젊은작가상 수상집은 모으는 재미가 있다. 앞으로 계속 모을 듯.
이전에 눈여겨본 작가의 작품이 또 나오기도 하고
여기서 나와 chemi가 맞는 작가를 발견하기도 하고 ㅎㅎ
1. 박상영 - 우럭 한 점 우주의 맛
우럭 한 점을 읽은 날 밤
엄마에게 엄청 화를 내는 꿈을 꾸었다. 어찌보면 별 것 아닌데, 나는 엄청 소리치고.. 그 소리는 소리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답답하다 못해 잠까지 깬..
이전에 자이툰파스타 소설도 좋았는데(기억은 자세히 나지 않는다;;)
내가 악몽을 꾸었다고 남편에게 이야기했더니, 제발 소설 좀 그만 읽으라고 (심각하게)
소설은 자극적으로 적어서 본인은 비소설이 좋다며 (나도 한동안 그랬지만, 소설만의 매력이 있다!!)
그렇지만 한번 더 읽었다.
엄마와의 갈등.. 이 레파토리는 고전 중의 고전일 듯... -_-
p11
쓰레기통에 처넣고 싶은 마음과, 누구의 손도 닿을 수 없는 곳에 소중히 보관해놓고 싶다는 마음이 교차했다.
p14
비극도 희극도 너무 자주 반복되면 하나도 좋을 게 없어서 이 모든 패턴이 지긋지긋하기만 했다.
p15
엄마 암이래! 자궁암! 할렐루야다.
- 암에 걸릴까 말까 항상 노심초사하다가 걸리면, 기다리던 도둑이 온 느낌이려나
p15
대찬 성격에 어울리지 않게 언제나 묘한 포인트에서 수치심을 느끼곤 하는 엄마는, 자신의 병을 몹시 부끄러워했다.
p26
너 외할머니가 암 걸렸을 때도 그랬어. 걷지도 못하는 갓난쟁이가 쪼르르 기어가서는 누워 있는 저희 할머니 뺨을 때리고 그랬다. 떼어놓으면 또 기어가서 뺨을 때리고, 문을 닫아 놓으면 밀고 들어가서 때리고 그랬던 애다, 네가. 그때부터 싹수가 노랬어.
- 아기를 키우고 있는 입장에서, 자꾸 상상되는 귀여운 장면이다. 반복해서 계속 곱씹어서 읽고 상상한다. ㅎㅎ
p48
제국주의.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처음 듣는 단어 앞에서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저 당황한 채로 그의 단호한 얼굴을 바라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뭔가 큰 실수를 저지른 것 같았고 내 티셔츠나 모자에 박힌 성조기가 처음으로 수치스럽게 느껴졌다. 나의 정치적인 무지가 부끄러웠다기보다는(그딴 걸 부끄러워해본 적은 없으므로) 그가 멍청하고 생각 없는 내 본연의 모습에 질색할까봐 그래서 다시는 나를 봐주지 않을까봐 두려웠다. 당시의 나는 어떻게 하면 그가 나를 좋아하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데에 온 신경이 쏠려 있었고, 필요하다면 나의 가치관도 바꿀 준비가 되어 있었다.
- 내 남편과 연애하고 있을 때.. 특히 연애 초반과 오빠가 드물게 화가 나 있는 상태이면 난 이런 생각을 했다. 신기했다. (신기할 게 아닌가...) 나와 같은 생각이 다른 사람의 글에 적혀있는 것이. 자존감이 낮은건가? (자존심인가..) 라는 생각도 들기도 했고, 지금도 그렇지만.
그게 나다. 주인공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내 인생의 중심인.
p70
그와 만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의 삶을 알아갈수록 그가 나와 맞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연했다. 애초에 그는 나에게 뭔가를 맞출 생각이 없었고, 다만 아무도 없는 칠흑 같은 밤마다 순진한 척,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는 어린애인 나에게 뭔가를 가르쳐주고 나와 몸을 섞는 일을 즐거워했을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언제나 나를 바꾸고 가르쳐야 할 대상으로 여겼으나, 불행히도 나는 누군가에 의해 쉽게 바뀌는 성격이 아니었다.
- 슬픔..
p88 엄마 탓
나는 자꾸만 그녀가 내 모든 문제들의 원인인 것만 같았다. 살가죽만 남은 채 다 죽어가는 사람을 앞에 두고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나 자신이 혐오스럽지만 그 생각을 멈출 수는 없었다.
p89 사과
단 한 번이라도 내게 사과를 해줬으면 좋겠어. 그때 내 마음을 짓밟은 것에 대해서. 나를 이런 형태로 낳아놓고, 이런 방식으로 길러놓고, 그런 나를 밀어내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에, 무지의 세계에 놔두기로 결정한 것에 대해서, 제발 사과를 해줬으면 좋겠어. 그게 엄마의 본심이 아니었다는 것도, 누군가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지만, 알지만, 나는 엄마를, 당신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아.
2. 김희선 - 공의 기원
허풍쟁이 연사의 말장난 같다. 읽는 중간중간 나오는 회사이름이나 사람 이름이 진짜인가 googling 하게 되고
3. 백수린 - 시간의 궤적
사람 간의 관계는 당사자들의 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프랑스의 어학원에서, 구지 여기까지 와서 한국인과 절대로 어울리지 말아야지라고 마음 먹었지만(나와 비슷), 비 때문인지 우연히 친해진 언니와 달라진 상황으로, 달라진 마음으로, 그 마음에서 나온 무의식에서 나온건지 의미 없는지 모를 말로 인해 틀어진 관계.
내 친구는 말했다. 현재의 나와 함께 하지 않는 사람과 멀어져도 된다고. 그렇게 위안을 주었었지...
p156
어떤 이와 주고 받는 말들은 아름다운 음악처럼 사람의 감정을 건드리고, 대화를 나누는 존재들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낯선 세계로 인도한다.
p158
언니에게도 그런 바보스러운 면이, 인간적인 면이 있다는 사실이 나를 덜 외롭게 만들었다.
p161
나는 용감한 게 아니야. 단지 그런 척하는 거지. 척을 하다보면 그래지기도 하니까
p162 밤에 우리에게 소리치는 남자을 만났을 때
저들은 불행한거야. 불행한 인간들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아름다운 밤을 포기할 수는 없잖아
p166
서른이 넘은 나이에 아직도 미래를 걱정하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자신을 한심해하고 있던 내게 어느날 언니가 "우리는 전부를 걸고 낯선 나라에서 인생을 새로 시작할만큼 용기를 내본 적 있는 사람들이니까, 걱정마. 넌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스스로 원하는 걸 찾을 줄 아는 사람이야"
-아이를 낳았지만..
p168 나는 갓 결혼한 여성들이 정착에서 오는 어려움을 토로할 때마다 아이를 낳으면 해결될 거라고 반복적으로 조언하고,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서 한국 드라마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엔 그들이 알고 있는 프랑스 거주 한국인들의 흉을 보며 끝나는 그 모임에 마음을 붙이기 힘들었다.
p179 그런 마음도 전보다는 많이 옅어졌다. 아마도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조언해 준 것 처럼 나에게도 아이가 생겼고, 그 덕분에 이제는 이곳에도 나의 삶이 생겼다고 느끼기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아이가 나를 이곳에 뿌리내리게 만드는 유일한 존재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나는 때때로 견딜 수 없을 만큼 큰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 여러 글에서 보았기도 하고, 나도 내가 중요한 사람이라
난 4개월 된 아기가 낮잠자면 내 시간을 갖는다. 책을 보거나, youtube를 보거나, 운동을 하면서.
아이와의 생활이 나의 유일한 생활이 되지 않는다. 그럴수도 없거니와.
모든 사람은 다중인격을 갖고있지 않은가. 엄마로서의 나. 취미생활을 즐기는 나. 직장에서 일하는 나.
- 틀어짐
p175 "좋은 남편이야. 철이 조금 없어서 그렇지 너를 사랑하는 건 알잖아"
지금 나는 그때 언니가 나를 달래주기 위해 그렇게 말했따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때는 언니가 내 남편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아는 듯이 말하는 것이
싫었고, 나를 조금은 무시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일었다.
p177
"언니, 아직도 그 사람한테 연락해?"
"응. 나 사실 지난주에도 또 걔한테 전화했다. 바보 같지?"
"그건 나쁜 거 아닐까. 언니는 남의 가정을 망가뜨리고 싶어?"
김봉곤 - 나도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관계가 끝났나보다.
4. 이주란 - 넌 쉽게 말했지만
내 스타일이 아닌 글. 처음 1-2 page는 별거 없이 집에서 쉬는 브이로그를 보는 느낌이고, 그 이후에는 W니 K니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은 배경설명을 자질구레하게 늘어놓는,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느낌이랄까
5. 정영수 - 우리들
결국은 바람피는 사람들 이야기이다.
책에 대해서 식견이 있고, 서로를 존중하는 배려, 말투와 생각이 드러난다고 하지만 결국은 바람피는 사람들의 끝장난 이야기다.
이런 일도 있구나~할만한 재미있는 이야기이지만, 전혀 편들어주고 싶지 않다.
마치 홍상수 영화 같은 느낌. 잔잔하고, 누군가는 어렵고, 30-40대 이후에 공감이 된다는 내용이지만, 감독이 홍상수.
6. 김봉곤 - 데이 포 나이트
한창 인터넷을 달군 귀여니 같은 글. 시드니 셀던 같은 글. (정형적인 인물이 나온다)
시크한 남자와 그에게 들러붙는 남자.
7. 이미상 - 하긴
충격적인 내용이다. 자녀 교육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어보면 좋을 것 같은 글.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은 보통 해설이 별로인데, 이건 해설도 재밌다. 이것이 등단작. Wow. 앞으로가 기대된다.
- 줄거리 (full stroy)
우리 부부는 지식인 부부. 내 아이 이름은 김보미나래. 이름은 거창하게 한글이름으로 지었지만,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뭔가 발달이 부진하다. 말도 없고, 학습능력도 떨어지고.
고등학생이 된 딸. 그래도 대학에 보내려고 유명 입시강사가 된 친구에게 상담을 하고 미국 에코 공동체에 보낸다. 거기서 생활하면서 녹화한 영상을 짜집기해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어 상을 받고, 대학에 보내려고. 그런데 처음 보낸 날부터 느낌은 쎄했다. 나와 딸 옆을 지나가는 알몸 남자가 나무에 매달려있는 깡통에서 무언가를 꺼내간다. 나중에 보니 콘돔이 가득 들어있는 깡통...
한국에 돌아온 딸이 찍어온 영상을 그냥 호수... 거머리.. 죄다 자연. 그리고 갑자기 딸이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가보니, 딸은 출산을 했다. 얼굴이 검은 아기를. 아내가 대신 육아를 전담하고, 딸은 밤마다 밖으로 나간다. 어느날 방에 오줌냄새가 가득해 출산 후 요실금인가 했는데, 책상 서랍에는 임신테스트기가 가득하다. 한강 어느공원 화장실에서 임신테스트기를 나눠주는 요정이 된 딸.
p321 명분
"나래는 명분 쪽으로 가야겠네"
"명분?"
"몰라? 대가리파, 노력파, 명분파?"
p333 수준
'억대 연봉' 할 때 상상하는 액수가 니들 위치고, 니들 수준이야. 직장 다니는 것들은 상상의 지평이 좁아터져서 도통 십 억을 못 넘겨.
- 지금 내가 얼마를 버는데....그런 돈 가까이 벌어봐야 상상이라도 하지.
p341 외상이 있기를
보미나래는 상담센터를 전전했다. 외상 경험의 징후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아내는 믿지 않았다. 무의식에 박혀 있을 상처를 발굴할 치료자를 찾아다녔지만 정작 발굴된 건 아내에게 박혀 있던 인종차별주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