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함
대한민국 최고 문화 사상가이자 국문학자, 문학평론가, 석좌교수 그리고 초대 문화부 장관까지 역임하며 '시대의 최고 지성'이라 칭송받는 이어령. 암 투병에도 펜을 놓지 않으셨던 의연한 집념으로 말년까지 왕성히 집필 활동을 하시던 중 지난 2022년 작고하시며 대한민국 각계각층에서 애도의 물결이 끊이지 않았다.
이 책은 수백 권의 저서와 인터뷰에서 엄선한 저자의 88년 삶의 기록이자 어록집이다. 마음, 인간, 문명, 사물, 언어, 예술, 종교, 우리, 창조와 같은 9개의 주제로 분류해 명언을 담아냈다. 압축된 문장 속에 삶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과 묵직한 울림, 특유의 위트까지 녹아 있는 '인생의 지침서'라고 할 수 있다.
거시적 안목으로 깊고 넓게 삶을 사유하는 '영원한 어른'의 충고와 위안을 느낄 수 있다. 수많은 저서 중 어떤 책부터 읽어야 할지 고민스러운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마음에 드는 글귀를 골라 원문 도서부터 시작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색인에 모든 명언의 출처가 정리돼 있다. 방대한 자료를 일일이 검토하고 발췌하는 고된 작업 끝에 선생의 인문학적 혜안을 이 책 한 권으로 집약해 접해볼 수 있는 점이 참 감사하다.
돌멩이
(전략) 헤세의 말투를 빌려 이야기하자면 아무리 보잘것없는 돌멩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위대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엔 그와 똑같이 생긴 돌이란 하나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생긴 모양, 빛깔, 그 질감과 무게... 만약에 그 돌이 이 지상에서 사라진다면 어느 것으로도 그 자리를 메울 수는 없다. 이 천지에 하나밖에 없는 것이므로 그렇게 돌 하나하나는 완성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 존재의 의미도 남이 모방할 수 없는 독창성으로 충만해 있다. p.54
디지로그
(전략) 저녁노을은 왜 이렇게도 아름다운가. 다가오는 어둠 속에 아직 빛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빛과 어둠이 엇비슷하게 존재하는 아름다운 세상. 그것이 한국인이 오랫동안 참고 기다렸던 그 공간이다.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만나는 기분 좋은 시간, 한국인의 시간이다. - 두고 보라.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대립하는 두 세계를 균형 있게 조화시켜 통합하는 한국인의 디지로그 파워가 미래를 이끌어갈 날이 우리 눈앞에 다가오게 될 것이다. p.95-96
전화
연애편지의 낭만을 빼앗아간 산문가. p.132
등불
등불이 전깃불과 다른 점은 방의 어둠만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영혼까지 밝혀주는 데 있다. 그 증거로 등불은 시를 낳았지만 전등은 시가 아니라 전기세만 낳았다. p.147
한국말
아인슈타인은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기자의 물음에 "더 이상 아름다운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을 수 없게 되는 것"이라고 답했다. 나에게 누군가 똑같은 질문을 한다면 나는 "더 이상 아름다운 한국말로 글을 쓸 수 없게 되는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p.165
'한국인 이야기'의 저자답게 한국인으로서 자국 문화에 대한 사랑, 긍지, 자부심도 충만히 녹아 있어 다음 책은 이 책부터 읽어보고 싶어졌다. 대표작 중 하나인 '축소지향의 일본인'과 '하이쿠의 시학'도 꼭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