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이렇게 스펙타클한 학창시절을 보내지는 않았겠지만
소설의 인물들 중에 어느정도 비슷한 캐릭터는 친구로 한명씩은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내 추억인듯 내 추억이 아닌듯 한 경계선에서 읽게되는 책이다.
'어린시절'의 밝고 명랑함을 느껴지다가도 한번씩 훅훅 치고 들어오는 '사건들'
뒤에 평론을 읽다가 이 부분은 이해를 했다.
정세랑의 소설은 '장르적' 이라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고
내가 읽은 작가님의 책이란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밖에 없어서 딱히 뭐라고 정의내릴 수는 없는데 읽는 내내 내가 느꼈던 것을 해소해 주는 한줄평이기는 했다.
물론 지구인~ 을 읽었을 때도 느낀 '시니컬하게 웃긴' 문장과 말투들은
이번에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휴가지에서 읽으면 좋을 것 같고
친구들에게 가볍게 선물하기도 좋을 것 같고
영상화되어도 좋을 것 같다
나는 인생의 가장 내밀한 진실을 비빔국수를 통해 배웠다.
실향민들은 우리 집에서 열심히 국수를 비볐다.
태어난 곳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거대한 비극앞에서 묵묵히 그토록 리드미컬하게 국수를 비비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자랐다. - P7
"가족이라고 해서 무조건 사랑할 필요는 없어. 하나도 안 사랑해도 돼."
민웅이가 아니면 누구도 글허게 말하지 못했을 것다. 그런 말을, 사람을 구하는 말을 아무렇게 하는 민웅이었다. - P27
두 사람은 했다.
함께 잠들지 않았으므로 잔 것이 아니고, 서로 사랑하지 않았으므로 사랑을 나눈 것이 아니다. 그냥했다.
어쩌다 하다 말았다에 가까울 짧고 허망한 행위를. - P110
사실 불운은 늘 기분 나쁘게 도사리고 있었다.
잠시라도 잊으면 말도 안되게 끔찍한 짓을 저질러 우리를 환기 시킨다. 아주 가까이에 있어 이만큼 널 흔들어 놓을 수 있어. 쉽게 죽일 수도 있어. 그런 식으로 난데없이 공격받으며 살아가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는 그런 불운으로부터 비롯된 존재이기도 하다. - P140
연고가 없다는 데에서 오는 편안함이 있다는 걸 찬겸이를 통해 알게 되었다.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 어떤 풍경 이상의 심상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 거기서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것. 그 지역의 문제와 사건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 우리는 부지런히도 찬겸이네 집들이를 다니면서 지역 특산물을 먹고 찬겸이네 휑한 집에 필요한 물건들을 들여놓았다. - P195
‘이제 하주라고 부르지 마, 그거 내가 아니잖아.‘
이번에도 수긍했다. 주연이를 하주라고 부르는 건 부르는 나나 불리는 주연이나 둘 모두에게 잔인하다는 걸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이제 그만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주연이가 내 양 귀를 잡고 냄비를 들듯 끌어당겼다. 한 손을 옆으로 뉘어 눈을 가리더니, 일부러 큰 소리를 내며 입을 맞쳤다. 놀라서 크르륵, 거품 품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나랑 입술이 똑같았으니까. 얇고 모양 없고.‘
그건 석달 후면 아무렇지않아질 작별인사였다.
하주의 작별인사였다. - P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