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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서재
  • fin
  • 위수정
  • 13,500원 (10%750)
  • 2025-10-25
  • : 1,985
책을 읽는 동안 마음 한편이 오래도록 눌린 것처럼 남았다. 화려한 무대 뒤에서 각자의 고립과 흔들림을 안고 살아가는 인물들의 모습이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이다. 배우와 매니저라는 익숙한 인물 구도는 이 작품에서 조금 다른 결로 펼쳐진다. 서로를 빛나게 하거나 끌어올리는 관계라기보다, 각자에게 깊이 내려앉은 감정이 충돌하고 엇갈리는 순간들이 더 또렷하게 드러난다.

작품의 중심에는 오랜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온 배우 기옥과, 그의 곁을 지키며 실무와 감정을 함께 감당해 온 매니저 윤주가 있다. 마지막 공연이 끝난 뒤, 기옥은 상대역 태인과의 불편한 사건으로 마음이 뒤틀리고, 이튿날 태인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마주한다. 술에 취한 태인을 집까지 데려다준 상호는 예기치 않은 조사에 휘말리고, 각 인물의 내면에서는 드러나지 않았던 감정의 결들이 하나씩 겉으로 떠오른다. 질투, 의무감, 연민, 책임감 같은 감정들이 서로를 향해 복잡하게 흘러가면서, 인물들은 자신이 지나온 시간과 지금 서 있는 자리를 다시 바라보게 된다.

작품 곳곳에는 ‘fin’이라는 단어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연극의 마지막에 스치는 익숙한 표식이지만, 여기서는 단순한 종료가 아니라 어떤 전환점을 암시하는 장치처럼 쓰인다. 하나의 장면이 닫히면 또 다른 장면이 열린다는 뜻처럼, 삶에서도 겉으로는 끝처럼 보이는 시점이 새로운 방향을 향하도록 만든다. 인물들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그 전환의 순간을 통과하며, 어둠과 밝음 사이에서 조금씩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나는 이 소설을 통해 인물들의 감정이 서서히 쌓이고 번지는 과정을 따라가며, 서로에게 직접적으로 닿지 못하는 마음들이 얼마나 큰 흐름을 만들 수 있는지 다시 느꼈다. 활자는 같아도 독자마다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다른 빛을 받듯, 이 이야기는 시간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로 다가올 것 같다. 어둠으로 내려앉은 장면이 다음 막의 조명이 되기도 하고, 멈춘 것 같은 순간이 또 다른 움직임을 예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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