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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우주의 문법
- 백승주
- 16,920원 (10%↓
940) - 2025-10-22
: 870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우리가 매일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말’의 세계가 얼마나 기묘하고 넓은지, 그리고 때로는 잔혹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언어는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도구이지만, 동시에 영역 밖의 존재를 배제하고 공격하는 방식으로도 작동한다. 저자는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오래 가르쳐온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국어의 결을 ‘타자의 시선’에서 다시 보여준다.
하나의 영토, 하나의 민족, 하나의 언어라는 오래된 삼각형적 사고가 얼마나 강력하고 폐쇄적인지를 예리하게 짚어낸다. 제주어를 비롯한 지역 언어를 예로 들며, 누군가는 이 삼각형 안에 있는 언어만을 ‘정상’으로 보고, 그 외의 언어들은 열등하거나 불필요한 것으로 판단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심지어 작은 회사 안에서도 직무에 따라 말의 사용 방식이 미묘하게 다르고, 우리는 그것을 바탕으로 타인을 분류하고 경계를 긋기도 한다.
말은 늘 소리로만 존재하는 줄 알았는데, 책을 읽다 보니 언어는 우리가 누구를 안으로 들이고 누구를 바깥으로 밀어내는 방식이기도 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흥미로운 지점은, 저자가 갑자기 ‘인어’나 ‘주머니고양이’ 같은 존재들을 끼워 넣으며 다른 우주 이야기를 시작할 때다. 이 허구의 우주들은 오히려 더 정확하게,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의 세계를 비추는 거울처럼 느껴진다. 문법적 규칙을 넘어서는 숨겨진 뉘앙스, 억양, 미묘한 감정 같은 것들—우리는 그것을 ‘문법 밖’이라며 무시해왔지만, 사실 그 모든 것이 언어의 실체라는 것을 저자는 반복해서 보여준다.
언어가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언어는 지정된 의미나 규칙을 넘어서,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전체를 비추는 프리즘이다. 성별 규정, 권력 관계, 타자성, 연대, 배제… 우리가 어떤 단어를 택하고 어떤 억양으로 말하는지에 따라 이 모든 것이 형태를 드러낸다.
이 책은 내가 매일 쓰는 말의 세계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그 말들이 어떻게 나와 타인의 경계를 그으며 또 때로는 연결하는지를 끝없이 질문하게 만든다. 책을 덮고 나면 ‘말’이 아니라 세계를 다시 바라보게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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