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트 밀레트의 저서 <성의 정치학(Sexual Politics)>은 남녀의 사적인 관계를 권력과 지배라는 정치적 문제로 확장한 래디컬 페미니즘의 책이다.
남녀 관계를 가부장제를 권력관계로 규정하며 제2물결 페미니즘의 포문을 열었으나 학술적·이론적 관점에서 이 책은 여러 가지 비판을 동시에 받고 있다.
1. 내용상의 비판
1) 생물학적 결정론에 대한 과소평가
밀레트는 성별(Gender)이 전적으로 사회화의 결과라고 주장한. 그러나 인간의 심리와 행동에 미치는 호르몬, 생물학적 메커니즘, 진화심리학적 요인들을 완전히 배제했다는 점에서 현대 과학 및 심리학계로부터 극단적인 사회적 결정론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2) 보편적 가부장제 개념의 오류 (본질주의)
역사, 인종, 계급, 문화적 배경의 차이를 무시하고 '모든 남성은 지배자, 모든 여성은 피지배자'라는 도식을 전 세계 모든 사회에 보편적으로 적용했다. 이는 백인 중산층 여성의 경험을 일반화하여 다양한 계급과 인종의 여성들이 겪는 다층적인 억압(교차성)을 담아내지 못했다는 비판을 유발했다.
3) 이분법적 대립 구도와 권력의 단순화
남성과 여성의 관계를 지배와 피지배, 억압자와 피억압자라는 일방향적 권력 구조로만 해석했다. 미셸 푸코 등의 권력 이론가들이 지적하듯, 권력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모세혈관처럼 작동하며 복잡하게 얽혀 있다. 밀레트의 분석은 이를 지나치게 단순화하여 남성 내부의 취약계층이나 여성 내부의 지배 권력을 설명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4) 프로이트에 대한 자의적 해석
밀레트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의 주범으로 맹렬히 공격했다. 그러나 프로이트가 제시한 개념(예: 남근 선망)을 은유나 심리적 방어기제가 아닌, 문자 그대로의 '남성 우월주의적 주장'으로만 비판함으로써 정신분석학의 임상적·이론적 깊이를 오독했다는 학계의 지적을 받았다.
2. 서술상의 특징에 대한 비판
1) 편향적인 문학 텍스트 발췌 (확증 편향)
1부와 3부에서 D.H. 로렌스, 헨리 밀러, 노먼 메일러 등의 문학 작품을 인용하여 남성의 공격성과 여성 혐오를 폭로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자신의 논지를 증명하기 위해 가장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성 묘사 구절만 의도적으로 발췌했다는 텍스트 분석상의 치명적인 약점을 보이고 있다. 작가의 전체적인 문학적 맥락과 예술적 의도를 거세하고 평면적으로 비판했다는 평가를 받는 부분이다.
2) 정치적 팸플릿에 가까운 선동적 어조
이 책은 철저하게 중립적인 학술 논문의 형식을 띠기보다는 가부장제에 대한 고발과 선언의 성격으로 일관한다. 문체가 대단히 격정적이고 단정적이어서 대중적인 파급력은 컸으나, 학술적 엄밀성과 논리적 객관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3) 방대한 담론의 성긴 결합 (방만성)
문학비평에서 시작해 역사, 정치학, 정신분석학, 사회학을 종횡무진 넘나드는 서술 방식을 취하고 있는 바, 학제간 연구로서의 신선함은 있었지만, 각 학문 분과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이 부족하여 여러 분야의 이론을 가부장제 폭로라는 하나의 결론에 맞추기 위해 파편적으로 짜 맞추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 책은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슬로건을 확립하며 성차별의 구조적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공로를 인정받긴 했지만, 동시에 방법론적인 편협성과 극단성으로 인해 논쟁의 중심에 서 있는 저작이기도 하다. 어쩌면 조금은 한물 간 페미니즘의 고전으로 남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