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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헌 작가 그림
불안이 사람들을 서로 떼어 놓기 때문에 모여서 함께 불안해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불안은 공동체를, 우리를 만들지 못하게 한다. 불안 속에서 사람들은 각자 고립된다. 그러나 희망은 우리의 차원을 포함한다. 희망하는 행위는 동시에 '히망을 전파하는 것', 불꽃을 옮겨 붙이는 것, '자기 주변에서 불꽃을 키우는 것'을 의미한다. 희망은 혁명의 발효제이자 새로운 것의 발효제, 즉 새로운 삶의 시작이다. 불안의 혁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불안해하는 사람은 어떠한 것의 지배 아래 자기 자신을 던져 넣은 사람이다. 다른, 더 나은 세상을 희망하는 행위는 행위 안에서만 비로서 혁명 가능성이 생겨난다. 오늘날 혁명이 가능하지 않다면 그것은 우리가 희망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불안 속에 고집스럽게 머물기 때문이며, 삶이 '살아남기'로 위축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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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자기 안에서 힘을 만들지 않는다. 희망의 중심이 '자기'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희망하는 이는 타인을 향해 나아간다. 희망하는 이는 '자기'를 넘어서는 일을 신뢰한다. 따라서 희망은 믿음에 가깝다. 절대적인 절망 앞에서도 나를 세우고 심연 속에서 서 있는 힘을 주는 것은 초월성을 지닌 타자의 존재다. 희망하는 이는 자기 자신의 힘으로 서 있는 것이 아니다. 하벨은 이러한 이유로 희망이 그것의 근본을 초월적인 것에 두고 있다고, 즉 희망이 먼 것에서 온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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