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족도 높은 청소년 소설을 만났다.
흠흠 2011/09/14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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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범기 추락 사건
- 정은숙
- 10,800원 (10%↓
600) - 2011-07-18
: 628
정은숙 작가의 첫 청소년 소설은 내가 올해 읽은 여러 편의 청소년 소설 중 최고의 다섯 권에 당당히 들어갈 수 있겠다. 작가는 이미 동화집 ‘우리 동네는 시끄럽다’에서 전혀 다른 인물들에게 어떤 교집합을 제시하고 그 속에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내공이 막강함을 보여주었다. 그 내공이 이번 ‘정범기 추락 사건’에서 그야말로 꽃을 피웠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열여덟 살이라는 참으로 애매한 시기에 속한, 너무나 다른 배경을 가진 아이들이 울고, 웃고, 분노하고, 선택하고, 인생을 살아간다. 이야기 속에서 나는 그 시절의 내 모습을 보기도 하고, 지금의 나의 모습을 보기도 한다. 또한 책 너머에 있는 미래의 시간 속에서 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하는 상상도 해보게 만든다. 좋은 이야기에서만 만날 수 있는 현상을 한껏 누렸다.
개인적으로 정은숙 작가의 최고 강점은 생생하게 살아있는 인물이라고 보는 데 ‘정범기 추락 사건’에서는 그 장점이 펄떡펄떡 살아 숨 쉰다. 작가의 주변에 모델이 있든, 상상력의 산물이든 방금 오만 인상을 쓰며 지나간 고딩은 기찬이 같고, 버스 정류장에서 재잘재잘 떠드는 여자아이는 유나 같다. 내가 여자이기 때문인지 개인적으로 주인공의 내면을 쉽게 따라갈 수 있는 인물은 열혈 날라리 지영이였다. 가장 마음에 드는 인물은 속 깊은 사차원 일진이. 설사 인물들의 실제 모델이 있었다하더라도 아이들이 마주하는 상황의 디테일에서 작가가 자료 조사를 꼼꼼히 했음을 볼 수 있다. 치열한 프로 의식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청소년 소설을 이야기하면서 ‘성장’이라는 주제를 뺄 수가 없겠지만, 어느 작가의 말처럼 성장해야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것 같은 작품을 만날 때도 있다. 그런 측면에서 ‘정범기 추락 사건’은 ‘성장’을 피해가지도 않지만, 들이대지도 않는다. 아이들은 고민하며 자기 자리를 맴돌기도 하고, 작게 한 걸음 떼어보기도 하고, 범기처럼 겨드랑이에 날개가 솟아오른 건 아닐까 하는 맹랑한 생각 속에 날아오르기도 한다. 작가가 각 이야기의 결말에 들였을 많은 공을 생각하며 기분 좋게 차기작 소식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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