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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의아이님의 서재
  •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 천명관
  • 12,600원 (10%700)
  • 2014-08-04
  • : 2,401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의 여덟 편의 이야기 속 등장인물들은 자주 그렇게 되뇌인다. 그들은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이 땅에서 성실히 살았으나 어느 순간 바닥 모를 추락을 거듭하는 패배자들이다. 이야기는 패배와 추락을 주제로 한 옴니버스 구성처럼 느껴진다. 그들은 다양한 직업을 가진 우리 이웃(?)들이다. 실직한 회사원부터 소설가, 편집자, 일용노동자, 귀농인, 대리기사, 판매원까지. 성실한 그들이지만 누구도 고통과 소외감, 고독에서 비껴가지 못한 채 무기력하고 무능하다.-그들의 무능은 사용 회수를 넘겨 닳은 기계와 흡사하다. 가진 것 없어 닳아버린 육체는 쉽사리 고장나고 망가진다. 그들은‘아무데도 갈 데가 없’는 사람들이지만‘어디로도 가야’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세상은 갈수록 인색해져 가난한 늙은이에게 더는 아무것도 내어주지 않는다- 113쪽

 

 

「우이동의 봄」할아버지의 푸념이다. 그들은 불친절하고 불안한 세상에서 일하고 사랑하고반박자씩 어깃장을 놓는 삶과 대면한다. 「전원교향곡」정환은 더 이상 무엇도 할 수 없다고 느낀 순간, 개를 물어뜯으며 삶과 싸우기 시작한다. 모든 것이 불타는 광경 속에서 정환은‘물속에 가라앉은 듯 마음은 한없이 편안’해지고‘이상하게 자꾸만 눈물이 흘러’내린다. 어떻게 된 일일까? 정환의 대책 없는 선택에 오히려 마음이 놓인다. 우리의 두려움과 불안이 한치 앞을 모르기 때문이라면 삶의 끝, 추락의 밑바닥이 다만 죽음이란 것은 묘한 위안이다. 여덟 이야기에는 치열한 삶만큼 뜨거운 죽음이 준비되어 있다. 춘래불사춘 春來不似春, 삶이 그러하듯 인생의 봄 또한 공평하게 오지 않는다.

「봄, 사자死者의 서書」는 여덟 편 이야기 속 죽음을 애도하는 상여소리다. 사내는‘회사를 십년 넘게 다니는 동안 언제나 아슬아슬한 기분이었고 언제나 일탈을 꿈꿨지만 한번도 대열에서 벗어나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왜? 그는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그리고 뭐가 잘못된 건지 알고 싶지만 그걸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지 알지 못’한 채 죽음을 맞았기에‘때늦은 함박눈이’그를 애도한다. 한번 빠진 삶의 함정에서 다시 살아나오지 못한 사내. 사내를 보낸 그 차가운 봄을 위로하고자 함인가? 꽃비가 흩날리는 또 다른 봄이야기가 시작된다.「우이동의봄」할아버지는‘평생 그렇게 깐깐하고 지독하게 살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말년의 삶은 군대를 갓 제대해 막노동하는 손자만 바라보는 처지가 되었다.’나는 공사장 노동자 처지 때문에 좋아하는 여자에게 말 한번 건네기 어렵다. 무역회사에 다닌다고 거짓말하는 내게‘거짓말해 버릇하면 못쓴다. 그건 도둑질보다 더 나쁜’거라고 추궁했던 할아버지는 어느 봄 서로에게 한 큰 거짓말을 고백한다. 그 봄 나는‘속내를 알 수 없지만’할아버지가‘다른 세상을 꿈꿔 본 적이 있었던 것’인지 궁금해졌고 할아버지는 시한부 삶을 훌쩍 너머 살고 있는 자신의 시간을 생각하며 웃었다.

 

 

‘백발이 하얗게 날리는 할아버지의 주름 깊은 얼굴 뒤로 꽃비가 우수수 쏟아져내렸다.’-219쪽

 

 

불면증을 앓는「파충류의 밤」수경은‘아침에 피우는 담배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그보다 더 좋은 것들은 이미 오래전에 다 지나가버’린 고립된 삶을 살지만 이웃 소년의 고통에 반응하며 그의 삶에 접속하는 순간 달콤한 잠의 세계로 빠져든다.

삶에서 죽음으로 나아가는 태생이 패배자(?)인 우리는 모두의 죽음은 막을 수는 없지만 누군가를 위기에서 구할 수는 있겠다. 그러니 모든 이들이 한번쯤 자신의 삶에서 아름답게 흩날리는 꽃비를 기대할 수 있어야하지 않겠는가? 삶에서 필요한 꽃비는 무엇일까? 되살아나는 관계 공동체? 삶의 함정에서 구해 줄 사회안전망?! 그 무엇이건, 꽃비를 기다리며......

  

p.s 불편하다. 이 책은. 상여소리로 시작하는 소설이 즐거울리가. 호상도 아니고 실직자의 동사다. 여덟 이야기의 첫 이야기다. 마지막 이야기. 빳빳한 젊은 시절을 보냈으나 손자에게 얹혀사는 시한부 할배 이야기다. 의사가 말한 시간을 훌쩍 넘겨 '살아있다'. 그리고 그 주름진 얼굴 뒤로 꽃비가 흩날린다. 작가의 의도건 편집부의 의도건 마지막 봄 이야기는 겨울 날 얼굴에 내리는 한 줌 햇살같다. 그리고 또는 그래서 우리는 살아간다. 뭐, 살아가니 햇살이 오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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